제가 사는 곳은 명왕성!
한국 음식을 파는 식당은 없고, 식재료를 구입하는 데에 있어서도 애로사항이 꽃피는 곳이죠.
물적 자원만 빈약한 곳이 아닙니다.
인적 자원도 빈약해서, 시어머니/친정엄마 찬스 같은 것은 꿈에나 그려볼 뿐, 택배로 반찬 배달 같은 것은 다른 행성의 이야기, 따끈한 국과 밥이 나오는 무료 학교 급식은 선진 대한민국에서나 가능한 일...
그리고 저는 그러한 명왕성에서 풀타임 돈벌이를 하면서 두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 아줌마 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한 번 더 리마인드 시켜드릴께요 :-)
이제 제법 가을 바람이 쌀쌀하니 따끈한 국물이 생각나더라구요.
잔치국수를 만들어 먹기로 했어요.
바쁘니까 일을 최소한으로 줄여서 만드는 야매 잔치국수를 보여드립죠 :-)
일의 순서를 잘 정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일단 고기 양념을 먼저 해둡니다.
다른 재료 준비할 동안 양념이 고기에 잘 스며들겠지요...
국물도 먼저 끓이기 시작합니다.
고명을 볶는 것보다 국물을 끓이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니까요.
과학적 연구 결과가 엠에스지의 무해성을 밝혀냈다고 합니다.
저는 실증적 지식을 신봉하는 (인문사회)과학자 이므로 안심하고 쇠고기 다시다, 멸치 다시다를 육수 만드는 재료로 사용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습니다.
(사실은 맞벌이 야매 주부라서 멸치 머리 따고 내장 빼고 달달 볶다가 물 부어서 육수내기 싫은 이유를 잘도 포장한 것이지요 ㅋㅋㅋ)
(그런데 이렇게 만든 음식 먹고 저희 아이들은 건강하게 잘 자라주더라구요 고맙게도 :-)
고명을 볶을 때에도 시간과 화력 안배를 조금 신경쓰면 일이 훨씬 수월해집니다.
저희집은 하이라이트 방식 전기 렌지 쿡탑이라서 당근을 완전히 익을 때까지 볶지 않고 80퍼센트 정도만 익었다 싶을 때 불을 끄고 놔두면 완전히 익어요.
그 동안에 호박을 썰면, 당근을 볶는 시간도 절약하고 다음 볶을 재료 준비도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어요.
고명을 차례대로 볶고, 양념간장도 얼른 만들고...
삶아둔 국수에 따끈한 국물을 부으니 그럭저럭 잔치국수의 형상으로 보이고, 온가족 한끼 식사가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개굴굴님이 소개하시어 광풍을 일으켰던 경상도식 매운 쇠고기국도 끓여보았어요.
정석대로 무를 삐져서 써야 하지만...
저희집 가족들 사이에는 익힌 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풍조가 만연해 있어서...
경상-명왕성 스타일로 가기로 했습니다.
무를 손톱만큼 잘게 써는 거죠 :-)
이렇게 잘게 썰면 시원한 무즙이 많이 잘 빠져나와서 국물이 시원해지고, 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골라내거나 남기기 어려우니 다 먹게 되어요 :-)
다른 모든 것은 불편하거나 귀하지만 쇠고기 만큼은 명왕성에서 흔하고 값이 싸서 듬뿍 넣었어요.
참기름을 넉넉하게 두르고 무와 쇠고기를 넣고 달달 볶아요
(또, 또, 또 뭘 자꾸 달달 볶으려고 하는지 원... ㅎㅎㅎ)
명왕성에서는 부지런한 자만이 콩나물을 먹을 자격이 있습니다.
명왕성 국제시장 마트에는 매주 목요일 오후에 새로운 농산품이 들어오는데, 목요일은 저녁까지 수업이 있고 금요일에도 각종 회의가 있는 저는 국제시장을 갈 수 있는 시간이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 아침입니다.
그 때 가면 귀한 콩나물은 다 팔리고 숙주나물이 뀡대신 닭 처럼 진열대에 남아 있어요.
다행인 것은 쇠고기국에 숙주나물을 넣어도 맛은 좋다는 점이죠 :-)
명왕성의 파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크기 비교하시라고 식칼 옆에 두어봤어요 :-)
한국에서 즐겨 먹는 대파는 명왕성에서는 구하기가 힘들구요,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사는 대도시 한인마트에 가면 팔더군요.
저 쬐그만 파 한 단에 천 원에서 천 이백 원 정도 가격이랍니다 ㅠ.ㅠ
한 단 다 넣어봐야 한국의 대파 두 개 분량도 안될 것 같아요.
그래도 어쨌든간에...
닭의 모가지를 어찌 해도 새벽은 오는 것처럼, 명왕성의 콩나물과 대파의 사정이 좋지 못해도 매운 쇠고기국은 끓게 됩니다.
대한민국의 강력한 매운맛에 단련되지 못한 혀를 가진 명왕성 어린이들을 위해 다소 덜 빨간색입니다.
저는 제 국그릇에 이걸 한 숟갈 넣으면 되니까요 :-)
고춧가루를 베트남산 피쉬소스 (한국의 멸치액젓과 흡사해요) 에 불려놓은 것인데, 이게 아주 유용한 양념이랍니다.
더 매운 쇠고기국을 먹고 싶을 때 한 숟갈 넣으면 맛의 완성!
겉절이 김치 담을 때 (예전에 제가 담은 유채 김치 보셨죠?) 푸성귀만 소금에 절이면 냉장고에 늘 있는 이 양념으로 버무리기만 하면 되고요.
각종 야채무침 반찬 만들 때도 아주 편리해요.
고춧가루 피쉬소스 양념은 많이 만들어서 냉장고에 늘 넣어두었다가 필요한 만큼 덜어내서 깨소금, 식초, 설탕을 더 넣고 섞은 다음...
오이를 넣고 무치면 아주 맛있는 오이무침이 되어요.
피쉬소스의 깊은 맛 덕분에 오이소박이를 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다음번 글에서는 명왕성의 오이에 대해 소개해 드릴께요.
껍질은 플라스틱만큼이나 견고하고 속살은 소금이 닿기만 하면 흥건하게 녹아나는, 그래서 요리하기 쉽지 않은 채소입니다 :-)
새댁 시절에, 나는 분명히 오이무침을 만들었는데, 다른 반찬 몇 가지 더 만들고 돌아보니 오이냉국이 되어서 나를 놀래키던 오이... ㅎㅎㅎ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니, 이번 주말에는 쇠고기를 든든하게 구워먹었습니다.
이제 힘내서 또 열심히 일하러 가야죠 :-)
내가 할 수 있는 옳은 일도 찾아서 하고요 :-)
옆에서 옳은 일 하시는 분들에게 고맙다고, 더욱 힘내시라고, 응원도 하고요 :-)
명왕성 어린이들은 아직 상추쌈을 잘 못만들어 먹기 때문에 채소를 함께 구워서 고기와 함께 집어먹도록 하고 있어요.
구수하고 따끈한 된장국물도 떠먹게 하고요.
모두들 추운 날씨에 몸과 마음 따뜻하시길 된장국과 함께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