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때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는 이번에 생까고 완전 개겼습니다.
엄마한데 일이 많아 못 간다고 거짓말하고^^
예전부터 명절 때 미리 돈으로 인사하고 해외로 내뺀 전력이 많아
그저 그런갑다 합니다.
지금이야 돈이 없어, 시간이 없어 못가지
여전히 여행을 기대하고 삽니다.
지난 설에 문득 왜 울아버지 제사를 며느리가 지내지?
올케한데 절에 올리자고 왜 일년에 세 번씩이나 올케가 이 고생을 하는지?
엄니 눈치 보는 올케가 짠했습니다.
그래서 그 꼴 안 보려고
명절이고 기제사고 안 가야겠다고 불편하고도 편한 다짐을 했습니다. ㅎ
그러면서 소주와 나름 안주를 만들어 마셔주시고^^
80년대부터 지금까지 쭈욱 이어온 소주에 대한 기억를 잠시 해봅니다.
그때는 지역마다 소주가 정해져 있었어요.
서울 - 진로 (서울내기 다마내기라고 좀 얄미워 한 소주^^)
부산 - 대선(증류를 가장 거칠 게 한 소주, 거의 마도로스용 소주)
강원도 - 경월 (군인들은 월경이라고 불렀시요)
제주도 - 한라산 (지금도 한라산이 도수 조절해서 나오지만 그 때 그맛은 아니여)
대전 - 선양(젤 니맛도 내맛도 없는 소주)
전라도 - 보해와 보배(맛이 기억이 안나요)
마산 - 금복주(두꺼비 볼 때마다 술 취하면 이렇게 되구나 상상^^)
지금은 전국구이고 대기업에서 통폐합하여 처음처럼(신영복 선생님 글씨입니다)
참이슬 좋은데이 뭐 비슷비슷한 소주들을 생산합니다.
사진에 보이는 진로가 요즘 엄청 잘 팔리는 소주,
진로이즈백 입니다.
초록색 병에서 연파랑으로 디자인도 샐쭉하니 신선합니다.
저의 30년 넘는 소주사에서 가장 맛있는 소주는8~90년대 나온 한라산이고
지금 나오는 것 중에서는 저 진로가 가장 낫습니다.
증류 노하우가 축적됐는지 진로가 잘 만들었어요.
가끔 앞차가 술유통 화물차일 때 음냐
내가 마신 소주가 저 차 몇 대는 되겠군 쩝
그랬습니다. ㅎ
작은 수첩이라고 크기 비유하는 게 겨우 500원짜리 라이타^^
저 수첩은 기억이 마구 새고 있는 50대 후반의 저를 보면서
2천원 주고 산 수첩입니다.
"느림의 정도는 기억의 강도에 정비례하고
빠름의 정도는 망각의 강도에 정비례한다"
쿤데라 소설 보다 저 수첩에 적은 내용입니다.
하도 글씨를 못 적어 제가 적어 놓고도 못 알아볼 때가 많습니다.
택배가 되돌아온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손으로 적은 시절이라 택배아저씨가 글자를 못 알아보는 바람에^^
우울한 긍지
쿤데라식 표현이지요.
2차 대전 때 체코 지식인들이 노동판으로 죄다 몰리면서
나온 표현입니다.
의사 토마스가 유리창닦이로 살아가고
지금 사는 우리의 현실은 아파트 경비원, 주차장 관리, 택배, 택시기사, 가사도우미, 청소부
영역을 구분 안하고 우울한 긍지는 없지만 우울한 자괴감만 남아 있습니다.
빵과 장미, 켄 로치 감독의 영화제목이기도 하지만
프랑스혁명 때 나온 말입니다.
빵은 말대로 생존 조건이고
장미는 문화예술, 인권, 복지 기타
내 삶에 장미가 있는 한 우울한 긍지는 남아있습니다.
사람은 그려요.
정치가 일상이다.
일상이 정치이다.
이 두 명제를 곰씹어 보면 참 다릅니다.
정치가 일상인 사람은 정치인이고
일상이 정치라는 것은 우리 삶 깊숙하게 파고든 현상을 들어다보면
연결고리가 정치로 이어집니다.
전철역 종점에 다다르면 직원들의 휴식공간이 보입니다.
낡은 소파, 구닥다리 운동기구 그 옆에 빨래가 널려 있고
화장실은 여자남자 구분이 없습니다.
저는 그게 일상이 정치 장면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도 소주 한 병 마셔주신 날에 들쭉날쭉 수다 떨고 갑니다.
요즘 듣는 음악 중 좀처럼 깔쌈한 걸 못찾아 오늘은 쉬어 갑니다.
여전히 저는 에릭 크랩톤의 행적을 따라 다니고
늦은 밤 노약자석에서 껄렁거리면서 앉아 락과 블루스를 듣는 약자도 노인도 아닌 ㅎ
어중간한 중년의 가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