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면 아이들이 고대하는 일이 있습니다.
다름아닌 고구마 수확~
며칠 더있다가 캘까 했는데 아이들이 하도 졸라대서 기냥 캐버리기로 했습니다.
새벽부터 일어나 언제 농장에 갈거냐 보채는 아이들에게 미리 귀띔을 해주었습니다.
올해는 아빠가 모종을 잘못 심은데다 가뭄이 심해서 고구마 캐는 일이 별로 재미 없을지도 몰라~
그래도 아이들은 즐겁습니다. 땅을 파면 무언가가 자꾸 나와서인지......
어쨌거나 가급적 아이들을 농장에 데려가는 이유는 어려서부터 내가 먹는 먹거리가 어떻게 생산되는 것인지를 살펴보고
또 자연속에서 놀면서 무언가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는 기회를 가지라고......
작년보다 두배의 면적에 고구마를 심었는데 넝쿨만 봐도 올해 작황이 어떨지 짐작이 가더라구요.
일단 고구마캐기 편하라고 넝쿨을 걷어다가 닭들에게 먹이는 사이 아내는 아이들과 고구마를 캐고......
자연순환농업의 좋은 점이 그렇습니다. 버릴것이 거의 없다는 점.
산과 들에 지천인 풀을 베어다가 먹이고 심은 채소들을 먹이고
그걸 먹고 내놓는 닭똥은 훌륭한 거름이 되어 다시 밭에 뿌려지고......
고구마 몇개 캐고나면 다시 맨땅에 호미질~ 을 반복한 결과
달랑 밤고구마 반상자에 호박고구마 한상자~
아이들에게는 조금 힘든 작업이 되었을 터이니 모처럼 숯불구이로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구이통은 드럼통을 잘라 직접 만든 것인데 아랫쪽에 불을 피워 숯이 되면 수시로 그걸 집게로 꺼내서
윗부분의 숯통에 보충합니다. 그러면 일정하게 숯의 온도가 유지되면서 고기굽기가 편하더라구요.
제 머리에서 나오기 힘든 작품이 모처럼 나왔습니다.
힘든 노동을 끝낸 후에 먹는 밥맛은 꿀맛입니다. 아이들은 고기가 구워지기 무섭게 들이 붓고......
올해 처음 밭에서 따온 배추를 먹었는데 ㅋ~ 배추속이 달착지근하니 올해 김치맛이 제법 좋을 것 같습니다.
정작 점심을 먹을때는 몰랐는데 사진으로 보니 아이들도 참 많이 컸습니다.
초등6년생인 딸아이는 벌써 처녀티가 나는데...... 그렇긴 한데......
우찌나 왈가닥인지 도망치는 쥐를 쫒아가 발로 밟아 쥐꼬리를 잡고 흔들며 쥐를 무서워하는 지 엄마에게
들이 밀기도 하고......
하는짓은 꼭 저를 닮았는데 다행히 머리는 천만다행으로 할아버지를 닮았습니다.
작은녀석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 외할아버지와 판박이......
숙취에 고생하던 어느날 점심에는 아내가 홍합과 콩나물을 넣어 라면을 끓여 주더군요.
속이 시원하게 풀리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엊그제는 숙주나물을 넣어 라면을 끓여주는데
이게 또 콩나물과는 또다른 아주 묘한 시원함이 있네요.
가을이면 아내가 꼭 해야하는 곶감말리기~
올해는 너무 일찍 시작을 해서 날씨가 거시기했는지 곶감은 죄다 곰팡이가 슬어 닭들 간식으로 주고
나머지는 홍시로 익혀 먹는 중인데 역시나 홍시도 맛이 별로 입니다.
가을의 백미는 표고버섯입니다.
올해는 심한 가뭄에도 물을 주지않고 자연재배를 고집했는데 예상외로 실한 녀석들을 많이 수확할 수 있었습니다.
첫 수확에 매일 10키로 이상씩 며칠간 수확을 하고 어제는 20키로 가량 수확~
아내의 입이 귀밑에 걸렸습니다.
매년 드시던 분들이 사전예약을 하고 또 올해는 가뭄이 극심해서 일찌감치 주문을 마감했는데 생각보다 발생량이 많아
재고가 많이 남을 것 같아 아내는 더 신이 났습니다.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아내에게 표고는 매우 중요한 천연조미료거든요.
햇빛에 잘 말렸다가 내년 봄 표고가 나올때까지 유용하게 쓸 수가 있습니다.
천하장사에 술깨나 드셨던 장인어른이 언젠가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자네 장모 아니었으면 난 벌써 죽었을거야~'
힘든 농사일에도 가족들 먹는 것에 소홀함이 없었던 장모님은 가공식품같은 손쉬운 먹거리들을 멀리하셨다는데
아내와 처형들이 요리하는 방식이 꼭 장모님을 닮았습니다.
실제로 장인어른과 함께 당대의 해파리클럽(사람도 술이 과하면 해파리가 됨)을 이끌던 멤버들은
이미 다 떠나셨는데도 아직 장인어른만 독야청청 건재하시는 것을 보면
한때 그 뒤를 이어 강력한 해파리클럽의 멤버로 활동했던 저 또한
아내의 요리방식 덕분에 남들보다 쬐끔 더 오래살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 봅니다. (110세정도?)
정작 진짜 음식은 구하기 어렵고 먹을 수 있는 물질들만 넘쳐나는 이 시대에 말입니다.
*10년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운게 15년쯤 되었는데 다시 끊으려고 하다보니 20일이 거의 다된 지금도
금단현상에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중입니다. 두서없다 성의없다 질책에 앞서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머리통을
두들기며 썼다는 점 널리 해량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넙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