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울 집옆 전봇대에서 까치가 막 울어 댑니다.
수돗가에서 걸레를 빨고 있다가 까치 소리에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반가운 손님이 오실려나~~>
그날저녁..
멀리 서울사시는 시이모부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질부인가? 어른들 안녕하시고 모두 잘 계시지>
<네..이모부님 그간 별고 없었는지요>
소소한 인사를 끝내고 나니 이모부님이 그러신다.
처형한테 우리 낼 모레 내려 간다고 ..
우리란..어머님의 자매분들 내외시다.
서울이모부와 구미이모부내외..그리고 시골작은 이모부내외.
서울이모부님은 막내이모부님이신데 이모님께서 먼저 좋은 곳으로 가시는 바람에
지금은 혼자 살고 계신다.
막내이모님 계실때만하여도 형제들끼리 친목계를 들어 해마다 이집 저집으로 놀려
다니셨는데 막내 여동생을 먼저 보낸 언니들은 더 이상의 이런 일이 의미 없다시며
친목계를 해체하여 그동안 뜸하게 지내셨다.
서울살이가 참 버겁게 느껴지시면 그냥 툴툴 털고 이곳으로 내려 오시던 서울 이모부님은
참 서운하게 생각하셨지만 처형들의 마음을 알기에 달리 무슨 말씀이 필요했겠는가?
그 이모부님께서 처형들을 들쑤셔 모임을 주선하였나 보다.
<낼 모레 내려가니 뭐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자네들 먹는것으로 주게나>
<네..이모부님 운전 조심하여 내려 오세요>
시어머님의 자매들 내외분이시니 연세가 만만찮다.
모두 70을 훨씬 넘기신 어르신들이시다.
살아오신 세월보다 짧게 느껴지는 사실 날들..
보고싶음에 모이자고 하신 이모부님의 마음도 조금 알 것 같고..
혼자 해 드시는 맛없는 밥 보단 이렇게 형제들 모여 떠들고 드시는
시골의 먹을거리도 생각이 나셨을테고..
그러한 어른들이시니 뭘 대접하여야 하나하는 무거운 임무 하나가
맡겨진 느낌이다.
그렇게 시골의 바쁜 와중에 이모부님들은 내려 오셨다.
그런데 올해는 우리집으로 모이시지않고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사시는 작은 이모님댁으로
모이셨다고 어머님 아버님을 모시고 우리도 그쪽으로 오라는 연락이 왔다.
작은 이모님께서도 연세가 있으시니 그래도 내가 할 일이 더 많겠지만 우리집에서 모이지않으신다니
옹졸한 마음에 내심 걱정 하나가 덜어지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시골 사시는 작은 이모부님께서는 우리의 바쁜 일정을 알고 계시니 서울이모부가 우리집으로 모이자고
하였을때 그러셨단다.
<큰 처형네는 이질부가 지금 한창 바쁠때이고 365일 어른 모시고 사는 이질부 꼭 우리까지 보태어야하냐시며 작은 이모님네로 모이시자고 했다고..>
살면서 내가 참 시집살이가 힘들구나하고 느낄 때..
시집 식구 어느 한 사람이라도 내 속마음을 알아줄 때
그때가 이때가 아닌가 싶으면서 눈물이 난다.
그저 며느리이니 넌 당연히 우리에게 이렇게 하여야고가 아닌
그 며느리를 조금이라도 생각하여 주는 이런 마음이 고마워서
또 하루를 버티며 사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이모님댁에 어른들을 모셔 두고는 건너 강가에 배 한 척으로 매운탕집을 운영하는
아저씨 댁으로 가 매운탕거리를 사가지고 왔다.
잉어와 붕어외 다른 고기 몇 마리를 덤으로 주셨다.

고기를 푹 삶아 뼈를 발라내고 삶아 낸 물에 시래기와 토란 고사리를 된장과 양념장으로
조물 조물 무쳐서 넣고 푹 끓이다가 발라낸 고기살을 넣고 파 청량고추를 넣어 한 번 더 끓이다가
소금과 국간장으로 간 맞추어 미나리를 넣어 살짝만 끓여 불을 끈다.




그렇게 얼큰한 민물매운탕 한 솥을 끓여 작은 이모님네로 향하였다.

그날저녁..
서울 이모부님은 그러셨다.
팔당호 주변 매운탕보다 백배는 맛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