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K는 의무귀가일이라 집에 왔고 아침부터 도서관 간단다.
주변 모든 중, 고등학교 기말시험이 코앞이라 도서관은 꽉 찰 테고 아이는 한 잠이라도 더 재워야겠고.
할 수 없이 새벽부터 도서관 자리 잡아 주기에 나섰다.
도서관 줄 대신 서 주며 ‘소금꽃 나무’를 다시 읽었다.
도서관 자리잡아주기가 이제 매월 넷째주말 행사가 되나보다.
토요일에 이어 일요일도 하루 종일 도서관서 보낸 녀석이
‘소화가 안 돼 점심을 못 먹었다’고 하기에 준비한 저녁밥상이다.




바지락 살을 넣고 끓인 순두부찌개.
호박잎고추장무침, 끓는 물에 호박잎 데쳐 적당한 크기로 잘라 다진마늘, 다진고추 넣고 초고추장에 무쳤다.
근대는 잎을 끓는 물에 데쳐 된장과 참기름 다진 마늘 넣고 무쳤다.
#2
“한진중공업 다닐 때,
아침조회시간에 나래비를 쭉 서있으면 아저씨들 등짝에
하나같이 허연 소금꽃이 피어 있고 그렇게 서있는
그들이 소금꽃 나무 같곤 했습니다. 그게 참 서러웠습니다.
내 뒤에 서 있는 누군가는 내 등짝에 피어난 소금 꽃을
또 그렇게 보고 있겠지요. 소금꽃을 피워내는 나무들.
황금이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들
그러나 그 나무들은 단 한 개의 황금도 차지 할 수 없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는 아시겠지요?“
[김진숙, 소금꽃 나무]
K에게
너도 읽어 보았다는 ‘소금꽃 나무’ 표지에 나오는 글이다.
땀으로 하얗게 변색된 작업복 등짝을 보고 김진숙씨는 어찌 소금꽃을 떠올렸을까?
쭉 줄 서서 조회를 하는 아저씨들을 보며 어떻게 나무 같다고 생각했을까?
나이 마흔 넘은 어느 날 밤 울었었다.
책을 보며 눈물 콧물을 훔쳤었다.
김진숙씨의 ‘소금꽃 나무’였다.
‘배를 만드는 한진중공업이라는 곳을 다니다 오래전에 해고되었다’는
그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용접을 하다보면 용접 똥이라고 하는 불꽃이 튀고 옷에 구멍을 내기도 화상을 입기도 한다고 했다.
스무 살 갓 넘은 처녀가 용접공으로 그 큰 배 만드는 공장에서 용접을 하는데
당연히 용접 똥이 튀고 어떤 땐 옷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며
그럴 때 놀라 화들짝 ‘앗 뜨거’ 하며 뛰다 보면 목으로 들어간 용접 똥은
어느 새 밑으로 죽~ 하고 흘러내려 길게 화상자국을 냈다고 했다.
함께 일하던 아저씨들은 웃으며 그냥 꾹 참고 용접 똥을 손으로 눌러야지
팔짝팔짝 뛰다보면 용접 똥은 가슴이며 배며 허벅지며 주르륵 타고 내려
오만 군데 화상을 입히는 거라 했다며 ‘그렇게 인생을 배웠다’고 강연을 시작했었다.
용접하는 중간에 용접 불꽃이 튀어 옷 속으로 들어오면 얼마나 뜨겁고 놀라겠니.
팔짝팔짝 뛰는 거야 당연한 거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더 많은 곳에 상처를 남긴다며 조용히 용접 똥을 찾아 옷으로 꾹 눌러 끄는 것에서
‘삶의 고통도 그와 같은 것이라 깨달았다’는 그의 말뜻에서 감동이 밀려 왔었다.
K야
살면서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닥쳐도 호들갑 떨지 마.
호들갑 떤다고 고통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
그저 묵묵히 용접 똥을 찾아 꾹 눌러 끄듯, 고통의 원인을 찾아 너의 행동을 선택하면 되.
너를 앞세우지 말고 항상 상황 자체를 무심히 바라보면서 선택하는 거야.
굳이 당장 너의 고통이 아니라도
누군가 고통 받고 있다면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렴.
고통 받는 사람들의 외침을 네 심장 소리처럼 듣거라.

#3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유대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가톨릭교도를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도였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 마르틴 뇌밀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