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호박전
오늘처럼 화창하면 화창해서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네 생각이 난다 .
그래서
너와 함께한 모든 날들이 좋았다 . ㅋㅋㅋ
네 곁의 버섯버무리 따위야 그저 구색일 뿐 .
#2. 뻔뻔한 놈
퇴근 후
받아든 청국장이 있는 저녁
수십 년 전에는 늘 이렇게 얻어먹었는데
“ 다녀왔습니다 .” 한마디로 퉁쳤던 어머니 밥상 !
부끄러워
오늘은 설거지라도 해야겠다 .
청국장 , 시금치 무침 , 구은 연근
별다를 것 없는 밥상인데 참 맛있다 .
내가 차린 게 아니어 설까 ?
뻔뻔한 놈이 밥술과 함께 삼킨다 .
‘ 엄마 미안 , 그땐 몰랐어 ’
#3
사실 부엌에서 두 사람이 뭔가 한다는 건 번잡한 일이다 .
그런데 도시락이 가져다주는 아침의 번잡함이 꽤 즐겁다 .
은근히 좋다 .
먼저 일어나 자신의 간단한 아침과 도시락을 준비하는 H 씨 .
되는대로 일어나 거들기도 하고 나름의 음식 준비도 하는 나 .
돌아가며 신문도 보고 입으로 먹거리를 넣기도 하는 , 한 시간여의 아침 .
반갑지 아니 할까 .
밥 밑에 된장열무지짐을 살짝 깔았다.
팥죽도 괜찮은 도시락 메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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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에게
불두화(지금까지 수국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 꽃)
작은 꽃잎이 모여 꽃송이 되었다 .
꽃길도 되었다 .
미처 몰랐다
질 때도 꽃잎부터 날린다는 걸 .
너무 화려해서 잊었다
꽃송이가 아닌
작은 꽃잎이 비가 된다는 사실을 .
작고 사소한 것에 눈길을 주고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
K 야 , 오늘도 행복하렴 !
일희일노하지 말거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