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불성, 고주망태는 아니어도
몰골이 말이 아닌 토욜 아침.
콩나물국이라며 좀 먹고 자라기에 기어가듯 일어났다.
흑~ 말갛거나 얼큰한, 시원한 콩나물국을 기대하던 뱃속이 더 오그라들었다.
흑흑 된장 푼 콩나물국이다.
지은 죄가 있어
‘난 해장으로 된장국은 별론데’
차마 말도 못하고.
‘아직 해장스타일도 몰라!’
이 말은 떠올리는 것도 불경스러운 짓, 도리도리.
“못 먹겠어, 속에서 안 받아요”
슬며시 일어나 자리보전하고 눕는다.
‘아~ 술……. 너 정말!’
‘얼마나~ 얼마나 더 너를 대해야 잊을 수 있겠니’
‘조금만~ 조금만 멀어져 주면 안 되겠니’
‘거지같은, 웬수같은’
‘니 앞에만 서면 왜 무너지느냐~고! 제길~’
‘끊어야지, 100일은 끊어야지’
쓰린 배 움켜쥐고 끙끙 앓다 시나브로 잠이 든다.
얼마나 잤을까?
좀 편안해 졌다.
거실로 나가니 “일어났어요. 좀 괜찮아?” H씨 묻는다.
기색이 그리 나쁘지 않다. 화가 난 건 아닌 듯.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집 만세~’
아무튼 골골대며 토요일 오전을 보내고
점심은 먹는 둥 마는 둥.
오후에 학원가는 K 태워주고 장도 보자 하기에 따라나섰다.
속도 풀리고 정신도 맑아지는 게 좀 살 것 같다.

장보고 돌아오는 길,
“속 괜찮아요. 교보가서 책이나 볼까?” 묻기에 흔쾌히 “그러지” 했다.
주말이면 K는 학원가거나 독서실 가 있는 동안,
둘이 교보문고 가서 차 한 잔 마시며 책보다 오는 재미에 요즘 푹 빠져 있다.
몇 년 전 K 덕분에 읽게 된 ‘남쪽으로 튀어’의 오쿠다 히데오 소설을 집어 들고
커피숍으로 가 자리부터 찾았다. 마침 일어나는 사람이 있다. 운 좋은 날이다.
오 해피데이, 스무살 도쿄?, 공중그네 지난주부터 연속해서 읽고 있는데
심리묘사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 이야기가 유쾌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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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아메리카노로 나는 뒤집어진 속을 달래가며
H씨는 ‘우거지 삶은 물 같다.’는 평을 듣는 밀크티 시켜놓고,
때론 낄낄거리며 자기가 보던 문장을 보여줘가며 그렇게 두어 시간을 서점서 보냈다.
K 태워 집으로 오는 길,
저녁 메뉴는 ‘비빔밥’이란 말에 K가 묻는다 “무슨 비빔밥?”
“그냥 비빔밥, 돌솥비빔밥 같은 거”하며 H씨 태연히 대답한다.
“돌솥 없잖아?”
“돌 후라이팬이 있지.”
“ㅋㅋㅋ 에~~”
(순간 나는 다른 생각을 했다.)
집에 돌아와 찬밥에 먹다 남은 나물, 무말랭이, 봄동, 두부까지 쓸어 넣고
달궈진 돌 후라이팬에 H씨는 비빔밥을 만든다.
그 옆에서 설거지를 마친 나는 뚝배기 꺼내 참기름 휘휘 두르고 불에 달군다.
참기름 냄새가 퍼질 쯤 찬밥과 나물, 무말랭이 따위를 얹고 불을 좀 줄이고
비빔장을 만들었다.


K에겐 인생 귀하게 살라며 뚝배기 비빔밥을
두 내외는 숟가락 섞어가며 밥뿐 아니라 정을 나누자며 후라이팬째 놓고.
K가 초등저학년일 때,
돌솥밥을 먹다 입술 아래쪽에 약한 화상을 입은 적이 있다.
‘얼마나 뜨거운가 알아보고 싶어 돌솥에 입술을 대봤다’는
아이 말에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몰랐던 그때 생각이 나기도 하고.
K에게 ‘인생은 꼭 겪어보지 않아도 되는, 알 수 있는 것이 있다.’고
‘괜한 호기심은 때론 상처를 남기기도 하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알아들으려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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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술을 마셔봐야 다음날 숙취를 알 수 있는 게 아닌데…….
다음날, H씨 조용히 “이제 금요일에 약속잡지 마요. 하루가 그냥 가잖아.”
등골 깊은 곳에서 한기가 올라왔다. 확실히 술은 ‘괜한 호기심’인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