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솥이 비어 있기에 “배고프다더니 저녁 안 먹었어요?” 물었다.
“K랑 떡볶이 먹었어요.” 한다.
주섬주섬 그릇들 정리하고 쌀 씻으며 “뭐 할까? 도시락 싸야죠.” 물으니
“그냥 브로콜리랑 넣고 간장에 떡 볶아 먹죠.” 답한다.
우선 밥부터 앉히고 냉장고 뒤지니 버섯, 봄동, 두부 따위가 있다.
먹다 남은 꽈리고추 조림도 있다.
순간 먹다 남은 반찬 꼴을 못 보는 내게 간장 떡볶이 주문은 꽈리고추떡조림으로 둔갑한다.
꽈리고추조림에 떡국 떡 한주먹 넣고 부로컬리 몇 조각 넣어 후루룩 들기름에 한소끔 볶아냈다.
이미 간장이 간간하기에 따로 간할 필요도 없고 오히려 심심한 느낌마저 든다.
아침 겸 도시락 반찬 하나 완성이다.


고추장두부조림이 낮은 불에서 조려지는 동안,
부지런히 봄동은 씻고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찢어 다진마늘, 간장, 소금, 고춧가루, 참기름 넣고 버물버물 무쳤다.
봄동 무침과 두부조림에 밥 한 술 뜨고 도시락(밥, 봄동무침, 꽈리고추떡볶이, 모과차) 챙겨 H씨 먼저 출근하고.
나는 전날의 숙취에 잠시 뒹굴 대다가 K에겐 남은 꽈리고추떡볶이까지 3첩 반상 곱게 차려 대령했더니,
봄동하고만 먹더라. 오물오물 한 접시 혼자 해치우더라.

K가 아침 먹고 난 후,
곱게 차려진 3첩 밥상 ‘내는 이런 거 모른다.’는 듯 양푼에 몽땅 쓸어 넣고 반 한 술에 비빌비빌,
머슴의 아침을 먹고 나도 출근했다.
결과로는 세 식구 세 번 밥 차려 먹은 아침이다.
그래도 설거지는 그때그때 해서 산더미처럼 밀리지는 않았다.
게다가 H씨 걱정도 없었고 택시비가 좀 들었지만 지각은 면했으니
전 날 음주 후과치곤 그럭저럭 괜찮은 날이었다.

봄이 오려나보다 철쭉이 활짝 피었다.
어제 하루 반짝 해가 나더니 또 종일 우중충하니 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