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뭔가를 기다리다가
습관인 듯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이내 무료해져 잠시 옆 자리에 던져두었다가
슬그머니 집어 들고 문자를 보냈다.
“바빠요? 점심은?”
“정신없어요.”
“기운내고 하루 잘 보내요.”
“일복이 많다는 걸 절감함……. 애고”
“이왕 하는 일 즐겁게 해요.”
“전혀 즐겁지 않아요. 귀찮아. 그래도 응원문자는 기분 좋음.”
“힘내라고 해주는 말. ♥♥♥”
“겨우 세 개?”
“♥♥♥♥♥♥♥♥♥♥♥♥♥♥♥♥♥♥♥♥♥♥♥♥♥♥♥♥♥♥♥♥♥♥♥♥♥♥♥♥♥♥♥♥♥♥♥♥♥♥♥♥♥♥♥♥♥♥♥♥♥♥♥♥♥♥♥♥♥♥♥♥♥♥♥♥♥♥♥♥♥♥”
어느 날 오후, H씨와의 문자놀이다.
#2
회사 교육에서 있었던 일
‘가족간 소통’이 교육 주제였는데, 강사가 결혼한 사람은 배우자에게 미혼은 애인에게
‘사랑해’라는 문자를 보내보라고 했다.
“미쳤나 비오는 데, 왜?” 라는 답문부터
“강사가 시키나? 인간아 시켜서 말고 평소에 쫌 해봐라”
“사고 쳤지? 교육 간다더니 어딘데.” 하는 문자가 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개 비슷한 애정표현을 보내오는 답문이 많았다.
그러나 보통 결혼 20년 쯤 된 커플 2~30%는 아무런 답이 없기도 했다. 적어도 그 시간엔.
나는 “교육이 무지하게 지루하거나 교육내용이거나”라는 문자를 다행히 받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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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해”
“니 의사를 표현해야 알지” 누군가 소통이 잘 안된다고 느낄 때 이런 말을 우린 자주 한다.
사람 사이의 소통에는 말과 글 이외의 교감이란 게 있다.
“그 것 좀 해줘” 해도 알아듣는 경우가 있고 “그게 뭔데?” 되물어야 하는 것처럼.
‘그 것’을 바로 알아듣는 일은 충분한 대화와 소통 없인 불가능하다.
그런데 우린 부부나 부모 자식처럼 가깝운 사이라고 믿으면
평소의 대화와 소통 없이도 교감이 이루어진다는 착각을 한다.
충분한 시그널을 줬는데 못 알아듣는다며 서로를 원망하면서 말이다.


새씩과 계란, 블루베리에 발사믹을 뿌린 샐러드 - H씨가 준비했다


매운 고추에 어묵 볶음 - 어묵이야 그저 그렇고 매운 고추 맛이 좋았다

가지무침 - 찜기 꺼내기 싫어 그냥 물에 넣고 삶았더니 H씨 뭐라 하더라.

새싹버섯볶음 - 덮밥용으로 녹말물 풀어 걸쭉하게 했더니 ‘모양이 비호감인데’ 하는 말을 들었다.

심심한 된장찌개 - 심하게 심심하다는 평을 들어 잠시 ‘욱~’ 했었다

붉은 고추 부추 넣은 호박부침 - 역시 비오는 날은 부침개가 최고다


새싹주먹초밥 - K도시락으로 찬밥 볶아 달달한 배합초에 뭉쳤다. 새싹도 넣고.
잘 먹긴 하나 작은 송편만한 주먹밥 여섯 개를 다 못 먹고 남기더라.
#3
살면서, 우리는 가까운 이들에게 얼마나 자주 안부를 물을까?
너무 자주하면 습관이 되고 그러면 식상해질까 안하는 걸까.
“당신은 배우자에게 또는 자식에게 부모에게 얼마나 자주 전화하나요?”
어머닌 이따금 전화로
“아들, 니 엄마 죽어서 벌써 다 없어졌다. 이 썩을 놈아! 전화 자주하면 손가락이 부러지냐.” 하시곤 하셨다.
그러면 나는
“전화 안 한다고 엄마 아들 사이가 어디가나. 잘 있으면 됐지. 호적에 모자간으로 돼 있잖아. 화 푸셔”라고
대꾸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무심하고 철없는 자식이었다. 그 땐 몰랐었다. 돌아가실 줄.
지금 계시다면 화면 크고 자판 큰 효도폰 사드리고 '점심은 뭐 드셨어요' 문자라도 할텐데.
아무튼 답답하다 서운하다 원망만 쌓는 것보단 문자놀이라도 열심히하는게 가족이지 싶다.
음식뿐 아니라 마음도 나눠 먹는 가족이니까 좀 더 실없어지고 수다스러워져도 되지 않을까
그래야 서로의 마음을 먹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