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저래 급히 비행기 표 구해 금요일 밤 9시 제주에 도착해 조문 마치고 보니, 조문객 있을 데가 없다.
제주 모 병원의 장례식장 이었는데 이곳은 특이하게 빈소만 있고 조문객 맞이방이 없었다.
층수를 달리하는 식당이 있긴 한데 이것도 밤 9시에 문을 닫아버렸다 한다.
황당한 상주는 근처에 급히 펜션 하나 얻어 육지에서 온 조문객은 펜션으로 보냈다 한다.
내가 펜션에 도착해 보니, 급히 구매한 같은 반바지 입은 중년의 남성 한 무더기
웃통은 벗고 배 내밀고 멀뚱히 TV보면 앉아 있더라.
“아니 회라도 떠다 먹지, 왜들 이러고 있어.” 하니
“뭐 생각 못했네, 밥 못 먹었지 라면 사다놨어. 소주는 있다.” 한다.
결국 “어디 횟집이라도 갈까? 차편도 없고 그냥 사다 먹자.” 설왕설래하다 사다먹기로 했는데
이미 회 떠오기엔 늦은 시간이고 늦게까지 하는 횟집도 없다는 말에
할수 없이 대형마트라도 가서 뭘 좀 사오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대형마트서 폐점시간쯤 할인해 파는 회 사고
역시 반값인 꼬막 두 팩과 김치, 청양고추를 사다 펜션 야외탁자에 둘러앉았다.
참으로 이상한 상가 술자리가 됐지만 생각도 못한 바닷가 조문객 정경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잘 넘어 가더라. 회는 금방 동이 나고 꼬막을 삶았다.
처음엔 박박 씻은 꼬막 소금 넣고 삶아 까먹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주인집에서 소금만 조금 얻어놓았을 뿐인데. 생각보다 빨리 회가 떨어졌다.
아무래도 국물 안주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아진 꼬막을 큰 접시에 덜어 놓고 주섬주섬 있는 것들 꺼내니 김치, 고추, 라면이 다다.
‘이걸론 매운탕도 못 끓이겠다.’
한참 멍 때리다가 꼬막 삶은 물에 청양고추 잘라 넣고 라면 건더기 스프 두 개 뜯어 넣어 다시 한 번 끓였다.
파도 있고 버섯도 있으니 구색은 갖췄다. 확실히 매운 맛이 더해지니 국물 맛이 좀 산다.
그래도 부족한 맛을 살리기 위해 마지막으로 라면스프 한 꼬집 정도 집어 살살 국물에 뿌려주었다.
국물의 탁도가 변하지 않을 만큼만. 이제 완벽하다. 꼬막 삶은 짭짤한 맛에 고추의 매콤한 맛
그리고 아무도 못 알아보는 비밀의 맛이 더해진 완벽한 국물 안주가 만들어졌다.
꼬막 안주 내오자 다들 “와~” 하더니 “좋은데, 괜찮은데.”를 술잔만큼이나 연발한다.
조문 간 제주의 밤은 그렇게 흘러갔다. 술 따라 바람 따라.
인류가 만든 조미료 중 최고는 아무래도 라면스프란 사실을 확인하는 밤이기도 했다.
올 여름 휴가지, 특히 야외에서 마땅한 재료나 맛낼 거리가 없다면 적극 활용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필요와 시장기가 맛을 낸다고 꽤 괜찮은 음식이 나오곤 한다.
* “그런데 조문 가서도 꼬막 삶는 난 뭐냐?” 허~ 허~~ 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