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 내가 한 밥 아니다.
완두와 밤에 잡곡 현미밥, 취나물 무침, 감자 샐러드와 양파 절임, 김치 H씨가 준비한 일요일 아침이다.
기말고사라고 주말에도 기숙사에 있던 K가 ‘의무 귀가일’이라며 집에 왔다.
기말고사는 아이 학교만 보는 게 아니니 동네 독서실은 만원이다.
할 수 없이 공공도서관에 간단다.
7시에 문 여는 도서관 데려다 주고 아침도 챙겨주려 토요일임에도 6시에 일어났으나 아이는 못 일어난다.
이럴 땐 참 난감하다. 잠에 취한 아이를 보면 ‘그냥 자라’ 놔두고 싶다.
하지만 못 일어난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꿀꿀한 기분으로 허둥댈게 뻔해 깨워보지만 쉽게 일어나지 못한다.
내가 그랬다. 잠이 많기도 했지만 특히 아침잠이 많았다. 게다가 약골이었다.
이런 날 어머니는 열 번이고 백번이고 무던히도 깨우셨다. “아침 먹어야지” “학교가야지” 라고
그렇게 늦게 일어난 날은 어머니 탓도 아닌데 왜 그렇게 짜증을 부렸는지…….
오만 소가지 다 떨며 학교에 가곤 했었다.
나는 어머니처럼 무던히 아이를 깨우지 못한다.
“깨워달라는 시간이다.” “일어나라 기분만 나빠진다.” 말하는 정도다.
“좀 더 자겠다.”는 아이의 말에 H씨는 아침 준비하고 나는 6시 40분 쯤 도서관으로 자리 잡아주러 간다.
7시 문을 여는 도서관, 집에서 10분 거리다.
‘너무 이른 시간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도착한 도서관 입구 도로변에 차가 빼곡하다.
왠지 모를 불안이 몰려온다.
부지런히 주차하고 도서관 입구로 서자, 세상에! 100여 미터쯤 늘어 서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줄 맨 뒤에서 눈짐작으로 사람 수를 헤아려 본다. ‘건물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지만
1m에 2~3사람쯤 서 있고 400석쯤 되니 자리는 잡겠다.’ 생각하는 동안 내 뒤로 10여 미터 줄이 늘었다.
아이 태워주고 돌아가는 사람, 나처럼 대신 자리잡아주려 나온 듯 보이는 부모들,
놀토인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기특하게도 가방매고 한손에 책까지 들고 서 있는
아이들의 표정은 하나같다. 자다 깬 얼굴이 역력하니 누렇게 떠 보인다.
“아침이나 먹었니.” “내 새끼나 남의 새끼나 다 고생이다.”
“부모는 또 무슨 고생이냐.” “참 뭐 같은 교육이다. 어쩌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런저런 마음들이 스쳐 가는데, 어디나 발 빠른 사람 있다고
“자리 없을 것 같아, 거기는?” 하는 전화를 하더니 남매인 듯 보이는 아이들을 데려 가는 아빠도 보이더라.
그런데 내 앞 줄이었다.
하긴 거리와 사람 수 어림잡아 보고 서 있는 나나 저 집이나 약삭빠른 건 다를 바 없다.
도서관 좌석수를 모르나 보다.
그렇게 K 대신 도서관 자리 잡고 들고 간 책 뒤적이는 데 8시 반쯤 전화가 왔다.
아침 먹고 K 머리 감고 있으니 오라고…….
‘도서관 자리 잡아 주기’ 연애할 때도 해본 적 없는 일이다.
결혼하고 H씨 임용준비 할 때 몇 번 있긴 했으나 출근길 도서관 들러 책 놓고 가는 정도였으니
새벽 줄 서 자리 잡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아무튼 연애할 때도 안하던 짓을 주말 이틀 동안 했다. 덕분에 주말 이틀 아침도 준비 안했다.
맛있었다. 역시 밥은 얻어먹는 밥이 최고다. 내 손보다 남의 손맛이 좋다.
“내가 안 한 밥이 왜 더 맛있는지 몰라” H씨에게 물으니 “밥하느라고 진 빼서 그렇지.” 한다.

*역시 * H씨가 한 가지 꽈리고추 졸임. 가지와 꽈리고추도 잘 어울린다.
고추는 매콤한 게 좋았는데 좀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