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청소 중입니다.
일주일 남았습니다. 울 할마시 이삿날이^^
제가 청소는 한 청소합니다.
예전에는 갈아엎는데 선수였지만 지금은 묵은 때 벗기는 거 좋아합니다.
오래된 싱크대입니다. 베이킹소다로 마른 걸레로 쎄게 문지르면
사람 때처럼 밀려나옵니다. 아흐 희열~~^^
다시 식초물로 광을 냅니다. 그 다음 세탁세제로 닦아냅니다.
다시 걸레질
아주 반들반들합니다.^^
제 손목은 아랑곳 안합니다. 근데 밤에 아풉니다. ㅎ
하루씩 돌아가서 합니다.
하루 만에 몇 년 묵은 때를 벗길 수 없으니 매일 가서
반복하는 구역도 있고, 특히 창틀 청소가 정신 사납습니다.
이렇게 추석날도 청소하고
힘이 딸려서 동네 문 연 식당을 찾아보니
삽겹살집이였습니다.
한낮에 그것도 추석에 삼겹살이라니 끙
소맥 말아주시고 감지덕지 맛있게 먹었습니다.
중년부부가 추석 때 쉬지않고 문 연 이유는 짐작이 갔습니다.
3인분 시켜 두 토막은 싸오고 후식으로
냄비라면^^
이럴 때 먹어줘야 합니다.ㅎ
명절하고 전혀 상관없이 살아온 제가 탕국, 전, 나물이 먹고 싶어
솜씨좋은 큰언니집에서 얻어 왔습니다.
지금 밥하고 있는 중
다 되면 나물비빔밥을 해 먹을 겁니다. 앗싸~~^^
하도 나훈아옹 이야기가 많이 나와
아, 나도 나훈아 콘서트 갔었지, 근데 잤어
엄마만 신이 났지 ㅎ
아직도 트롯은 제 취향이 아닙니다.
스무살 즈음에 막걸리집에서 젓가락 두드리며 전국의 강은 다 소환^^
낙동강만 강이가 하면서~~^^
저의 트롯은 거기서 시작하고 끝났지요.
오래 전에 적은 글이 생각 나 찾아보니 남아 있습니다.
어느 신문에 잠시 연재한 글 중
그 때가 2008년.
제목은 나를 달래주던 조용필 음악
내가 조용필 을 처음 만난 것은 고3 자율학습 마치고
만원버스에 시달리며 집으로 돌아가던 버스 안이었다.
라디오에서 '창 밖의 여자'가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학력고사는 다가오지 공부는 하기 싫지,
대학 안 가면 인간취급도 못 받을 것 같은 세상이 서러운 와중에,
그 노래를 듣고 갑자기 울컥했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주르륵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스무 살 즈음으로 접어드니 실연한 친구들이 하나 둘씩 생겼다.
첫사랑과 결혼하는 인간 있으면 손에 장을 지진다고 했던 그 시절,
친구 하나가 조용필의 "너를 마지막으로/ 나의 청춘은 끝이 났다" 하는 비장한 노래를 불렀다.
나 역시 비장하게 머리 숙여 그녀의 청춘을 애달파 했다.
대학에서 선배들과 공부하고 돌 던지고 할 때는 민중가요,
개인사로 가슴이 아릴 때는 조용필, 김수희, 심수봉을 불렀던 시절이었다.
30대 중반, 단란주점과 노래방이 들어서면서 술만 마시면 2차는 당연하게 노래가 됐다.
노래 못하고 죽은 귀신이 붙었는지 친한 동료들의 레퍼토리는 줄줄 꿸 정도였다.
나중엔 조용필 대 나훈아 노래만 부른 적도 있었는데 밤새 불러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나훈아는 그렇게 흥청거리던 지하 단란주점에서 만난 셈이다.
나훈아 의 '사랑'이었던가? 그 노래는 특히 남자가 부르면 듣는 여자가 착각하게 만드는 노래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둘도 없는 내 여인아" 그 노랫말 덕분이다.
나훈아와 조용필은 이처럼 나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이들의 노래가 없었다면 실연의 상처는 누가 달래줬을 것이며,
사랑하는 여인 앉혀놓고 작업 걸 수 있는 노래는 누가 부를 수 있었겠나.
조용필 음악인생 40주년 기념공연이 이번 주말에 열린다고 한다.
그의 음악에 찬사를!
----- 조용필 공연을 앞두고 짧게 적은 글이였어요.
밥이 그 사이 다 되었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잠깐 잘 놀다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