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아내 몰라요
아내, 남편 알아요.
사소한 것 까지 너무도 다른 부부탐구생활 그 네번 째 이야기가 시작 되요.
글을 올리기 전 무쟈게 고민을 해요.
'이제 그만 올려, 이 낡아빠진 구닥다리야!'
라는 소리가 귓전에서 상하이 트위스트를 추고 있어요.
내가 생각해도 너무 울궈먹는 게 아닌가 싶어 얼마나 망설여지는지 몰라요.
하지만, 다음에 올리겠단 약속을 지난번에 하고 말았다는 걸 깨달아요.
이젠 빼도박도 못해요.
그래서 그냥, 다시 '낡아빠진 구닥다리'버전으로 올리기로 결심해요.
요새, 이 여자 조금 맛이 갔나봐요.
원래도 이상한 것 에 빠지는 좀 특이한 여자였지만,
때아닌 땅콩바람이 늦가을 부터 불어서 일주일에 만원어치 이상을 빠각거려요.
아침에 눈 뜨고 빠각, 점심때 밥 먹고 빠각 티비보다 빠각 책 읽으며 빠각
남편은 "다람쥐야?" 라고 물어요.
아직도 콩깍지가 안 벗겨진게 분명해요.
생긴 건 다람쥐를 산 채로 잡아먹게 생긴 아내는, "내가 좀 귀엽지"라며 말도 안되는 착각을 해요.
시엄마께서 직접 뜯어다가 말려 주신 고사리를 불려서 삶아서 볶아요.
남편이 "그렇게나 복잡한거였어?" 라고 물어요.
"니 입으로 들어가는 것 중에 간단한게 있는줄이나 알아, 이 빵꾸똥꾸야" 라고 소리지르고 싶지만
조금 더 똑똑한 내가 참기로 해요.
남편이랑 같이 사는 게 결혼인 줄 알았지, 다 큰 사내시키를 가르치고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키우는 게
결혼인줄은 몰랐어요.
전을 먹을 땐 이 간장이 와따예요.
아삭하지만, 먹고 나면 양치질 가글 3잔콤보를 해도 냄새가 가시지 않는다는 양파와
한 입만 베 물면 다음날 똥꼬에서 불꽃놀이를 백만 번 하게 된다는 청양고추를 넣고 만든 초간장이예요.
열심히 집어먹고, 그 날은 싸운 것 도 아닌데 서로 다른쪽을 보면서 이야기를 해요.
전생에 강원도에 살았는지, 감자 고구마 옥수수 콩 같은 구황작물 킬러인 아내는
침을 줄줄 흘리며 알감자 조림을 만들어요.
근데 이건 뭥미? 남편은 감자를 안좋아한대요.
신혼 초 부터 들었던 '내 남편 입은 똥구멍이 아닐까' 의구심에 종지부를 찍어요.
모둠전이예요.
하늘과 같은 "L"모 여신님께서 뽐뿌하시어 드디어 손에 쥐게 된 무쇠팬으로
이 여자, 몇박 며칠을 지지고 볶았는지 몰라요.
드럽게 못생겨서 무쇤가 했는데, 생긴것 만 가지고 따질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되요.
신통방통 맛나게 부쳐지는 전 때문에 몸무게가 2키로 쯤 늘어도 상관 없을 것......같..아요;
예전에 복분자주에 걸었던 기대가 물에서 풀어지는 휴지마냥 산산히 부서졌던 기억이 있어서
이젠 복분자 효능 따위 믿지 않아요.
아마 복분자가 효능이 있었다면 우리 집은 변기를 한달에 두 세번은 다시 사야 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변기는 절대 부서지지 않아요.
하루에 한 잔 은 꼭 에스프레소를 내려서 커피를 마셔요.
커피머신을 살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매일매일 들지만, 다섯자리 넘어가는 숫자에는 왠지 손이 떨려요.
가끔은 분식으로 상을 차려요.
다분히 아내 취향이지만, 입맛이 지나가던 코찔찔이 초딩 뺨을 왕복 다섯 시간을 칠 초딩입맛 남편도
연신 숟가락을 입으로 퍼 날라요.
우리집 곰탕엔 곰이 있어요.
우리집 토끼탕에도 토끼가 있어요.
마르게리따 피자가 너무 먹고싶던 어느날
냉동실에서 기체가 될 뻔 한 모짜렐라를 꺼내 간단하게 만들어요.
남편 입은 똥구멍이라 와인도 마실 줄 몰라요.
덕분에 와인이 선물 들어오면 다 내꺼예요. 남편에 대한 사랑이 무궁무진하게 솟아 올라요.
혼자먹는 술의 단점은, 꽐라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데에 있어요.
처음 한 두잔은 무드있게 조금씩 따라 마시다가
취기가 오르면 "치, 무드? 개나 줘!" 라고 소리치고 잔에 넘치도록 와인을 부어 마셔요.
정신을 차려 보니 빈 병만 덩그러니 남아요.
술 먹고 멍멍이가 될 때도 있지만, 평소엔 조미료도 만들어 먹는
"시키지 않아도 일을 만들어서 몸을 괴롭히는" 조선시대 장금이로 빙의해요.
혼자 요리 토크쇼를 하며 이것저것 만들고 있으면
내가 마치 김혜경 선생님 이라도 된 것 같아요.
남편은, 개 죽 같다며 손도 안대는 오트밀이지만 아내는 환장을 해요.
마지막 남은 오트밀 가루까지 탈탈 털어서 먹어요.
하지만, 마트에선 오트밀을 팔지 않아요.
오트밀을 사러가자니, 한번 들어갔다가는 30만원은 그냥 지르고 오게 된다는
전설의 그 마트를 가야만 해요.
김밥을 정성스레 말아요
뜨끈한 국물과 함께 남편이랑 식사를 하는데
이 양반이, 김밥을 두 개씩 집어서 입에 넣어요. 원래도 빨리 먹지만 좀 걱정이 돼요.
그리곤 피곤하다고 바로 누워 잠을 자요.
오~ 아저씨, 그러다 탈랄라~ 라고 하지만, 귓 등 으로도 듣지 않아요.
결국은 급체해서 염라대왕님 턱수염이 무슨 색인지 보고 왔어요.
하루를 내리 못 먹고 폭풍응가를 하며 열이 펄펄 끓는 남편이 안쓰러워
계란죽을 만들어요. 세 숟가락 퍼먹고는 화장실로 달려가요.
누가 보면 입덧 하는 줄 알겠어요.
죽이 싫은가 싶어 밥을 지어 대령해요. 안먹겠대요.
정말 입덧 하는 것 도 아니고, 변덕이 죽을 끓여요.
소고기 넣고 죽을 끓여요. 못먹겠대요.
이 쯤 되니 아내의 인내심은 바닥을 보여요.
굶어 죽든가! 라는 심뽀로 몇시간을 굶기니 밥 좀 달래요.
무언갈 더 만들 여력이 남아있지 않아, 만들어 놓은 것을 다시 뎁혀 상에 올려요.
찍소리 못하고 밥을 먹어요.
든든한 통5중 스텐냄비에 고구마와 단호받을 넣고 저수분으로 굽듯이 쪄서 먹어요.
남편이야 숨이 넘어가든 말든, 내 배가 고파서 못견디겠어요.
맛있는 냄새 솔솔 풍기며 미트볼 파스타를 만들어 먹어요.
남편이 아프니 속이 상하고, 어쩌고 저쩌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 가며 술상을 봐요.
갓 구운 식빵 사이에 잭콜비 치즈를 껴서 먹은 걸 보니, 이때쯤은 정신을 놓아버렸나봐요.
이상하게 술만 취하면 평소엔 "다이어트 해야돼"라며 손도 못대던 음식들을 "마셔"버려요.
시엄마께서 완도에서 아시는 분께 직접 주문했다며 1미터는족히 되는 미역을 주셨어요.
"니네는 애 안갖냐?" 라며 슬쩍 농담식으로 손주 갖고싶으신 마음을 보여요.
매 년 미역을 주문하는데 올 핸 더 많이 주문 했대요.
시엄마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당장 오늘부터 야시시한 화장을 하고 있어야 겠다고 생각해요.
시엄마표 올가닉 오미자액기스, 팥, 동치미, 매실액기스 4종세트도 받아왔어요.
늘 챙겨주시는 마음이 너무 감사해요.
하지만 동생은 " 너 먹으라고 주냐, 니 남편 먹이라고 주지"라며 고부갈등의 씨앗에 물을 줘요.
아내는, 친 딸처럼 아껴주시고 예뻐 해 주시는 시엄마를 가진 것 도 복 이라고 생각해요.
동생이 보면 " 이 변태자식아" 할 만한 아내의 콩밥이예요.
콩에 붙어있는 쌀이, 이 밥에 들은 쌀의 전부예요.
엄청나게 맛은 있는데, 연속으로 세 수저 입에 넣으면
가슴을 주먹으로 퍽퍽 쳐 가며 먹어야 해요.
콩 싫어하는 남편 밥엔 콩이 한 알 들었어요.
국을 떠도, 남편은 국물 많이 아내는 건더기 많이 먹게 되요.
닭을 먹어도, 남편은 기름 좔좔 닭 하반신 아내는 담백 퍽퍽 닭 상반신을 먹어요.
식성은 같은데 좋아하는 부위가 현저히 다른 부부는
"우린 백만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생연분이야" 라는 닭살멘트를 쉴 새 없이 날려요.
이제 겨울도 끝자락인지, 벌써 봄 옷들이 슬금슬금 백화점에 진열 되고
날씨가 춥다고 해도, 며칠 전 처럼 징그럽게 춥진 않은 것 같아요.
정말이지 시간은 너무나 빨리 지나가는데
나는 집에서 뭐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가끔씩 아내를 찾아와요.
아내가 하고 있는 "집안 일"은 엄청난 노고와 고생과 수고로움과 현명함이 필요한 일 이예요.
요리도 청소도 빨래도 심지어는 남편과 놀아주는 것 까지도
보통의 신경을 써서 될 일이 절대 아니라는 걸 깨달아요.
주부 여러분.
우리는 결코 "집에서 노는" 사람이 아니예요.
그 누구도 완벽하게 해 낼 수 없는 일들을 하고 있는
무지하게 다재다능한 사람들이예요.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굉장한 일을 해 내는 우리 스스로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 했으면 좋겠어요.
나라를 통치하는 대통령도, 우주를 드나드는 우주인도, 사람을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다 엄마 손에서 컸어요. 아내의 뒷바라지를 받아요.
그런 주부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모든 레시피는 http://blog.naver.com/prettysun007 제 블로그에 있어요^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