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힘들고 지치고 괴로울 때면...정말 아무 것도 하기 싫습니다.
먹기도 싫고, 음식하기는 더 싫고,
청소하기도 싫어 집은 먼지구덩이가 되어가고,
사람 만나기도 싫고 부딪치기도 싫어 더 고립되어갑니다.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더더욱 절망의 수렁으로 빠져들어가고,
뭐든 손쉽게 잘 풀리는 누구가 떠올라 화가 치밀고
평생 고생은 안하고 잘 사는 누구가 생각나 내 삶이 더욱더 싫어집니다.
바르게 산 사람은 좌절하고
얍삽하게 기회주의자로 산 사람이 승승장구하면 분노는 더욱 더 차오르고
열심히 사는 내가 바보 같이 여겨지고
이 모든 게 다 헛된 것 같고
그래서 저 사람들처럼 이기적으로 살아야 똑똑한 게 아닌가 하는 혼란도 밀려오고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미워지고 좌절감이 밀려옵니다...
실패는 계속 되고
좌절도 이어지고
하는 일마다 브레이크가 걸립니다.
그러다...
결국 아무 것도 안하는 날들이 길어집니다.
의욕은 더욱 더 사라져가고 다시 일어날 힘조차 없어져갑니다.
밥을 하는 것도 사치스럽게 여겨지고,
집안을 정돈하는 것도 쓸모 없이 생각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신과 주변을 둘러보면 더 속이 상합니다.
이런 순간을 견디는 힘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 힘을 주말농장과 화초들에게서 얻었습니다.
나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나의 밭과 나의 화초들을
매일 돌보다보니
그렇게라도 일상이 나로하여금 완전한 수렁에 빠져들어가는 것을 막아줬습니다.
일상의 힘.
일상적으로 무엇을 하는 것을, 사람들은 의미 없다고들 합니다.
적성에 맞지 않지만 일상적으로 하는 출근,
하고 싶지 않지만 일상적으로 하는 살림살이,
하고 싶지 않지만 일상적으로 반복해야만 하는 일...
사람이 죽고사는 상황에 끼니 때 맞춰 밥을 해야하고, 밥을 목에 넘겨야하는 일들이
사람들은 가치 없고 누추하다, 부끄럽다 합니다.
그러나, 모든 일은 '의욕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의욕이 있어서 하는 일은 진짜이고, 의욕이 없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은 가짜라고 말합니다.
마음이 있어서 해야만 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데 할 수 없이 하는 일은
겉껍데기고 형식이고 무의미한 일이라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힘은 그 '일상에서' 나옵니다.

먹기 싫어도 때를 맞춰 먹어주고,
하기 싫어도 시간 맞춰 출근하고...
그런 일상들이 모여서 삶을 만듭니다.
그 삶이 진짜 삶이지요.
열정은 한순간이지만, 일생은 평생입니다.
과거에 저는 시대가 힘들어지면 맛난 것을 먹겠다고 부엌에 가있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남들은 죽고 사는데 제 굶주림을 면하겠다고 지글지글 볶고 지지는 것이 죄스러웠습니다.
라면 하나 끓여서 허기만 달래면 되지 무슨 요리를 하냐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릅니다.
저는, 평생 일상적으로 꾸준히 해야할 일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열정적으로 잠시 반짝 일을 하는 것은 순간은 화려해도 오래가기 힘들지만,
빛나진 않아도 현재를 있게 해주는 일상적인 일은 진정한 인내와 성실함이
받쳐주지 않으면 유지되지 않습니다.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고
자기 기분에 따라 일상을 망치고 기분 날 때만 하는 사람은 약한 사람입니다.
기분 날 때야 뭔 일이든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기분 나지 않는데도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장례식에도 누군가는 밥을 해야하고 조문객을 먹여야합니다.
그 누추한 일이 누군가의 뱃속에 들어가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얼어붙은 몸을 녹여줍니다.
그렇게 그들의 배를 채워준 밥이, 그들로 하여금 오래 울 힘을 주고
다시 일어나 살아갈 기운을 줍니다.
우는 이도 있지만, 밥을 해야하는 이도 있습니다.
저는 그들이야말로 진정 훌륭한 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끈한 열정을 보이는 남자보다
일상적으로 꾸준한 애정을 보이는 남자가 결혼생활하면 더 진국이고
눈앞에서 호호하하 친근하게 하는 사람보다
꾸준하게 변함없이 일관성있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진국인 것처럼
항상 같은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훌륭한 사람입니다.
아마추어는 자기가 하고 싶을 때만 하지만
프로는 자기가 하고 싶지 않아도 합니다.
기분 날 때는 열심히 일하다가
기운없고 의욕없다고 출근을 안하고 뒹굴거린다면
그는 성인으로 대접받을 자격이 없고 어른이 아닙니다.
누가 부추겨주지 않으면 내가 할 일조차 안하고 심통을 부리는 사람은
자신이 스스로 독립된 성인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지금 가슴에 불덩어리가 치솟고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고
좌절의 수렁을 헤매며 진흙탕속에 누워있을지라도
일상적으로 해야할 일은 계속 진행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정말 지혜롭고 현명하며 강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머잖아 그 수렁에서 나오겠지요.
그리고, 해야할 일을 끝까지 해내고야 말 것입니다...

저는, 밭에서 잡초를 뽑고 이랑을 고치고 물동이를 나르면서
가치도 없고 별 의미도 없어보이는 일들을 하면서
의욕 없고 무의미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해야만 하는 그 일상적인 일들이 나를 살게 했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작물들은 나날이 자라갔습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살아나 내가 해온 일들을 보고 기운이 났습니다. 뿌듯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좌절을 하고 수렁에 빠져듭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돌봐야할 것들을 주변에 만들어놨기에
그들을 위해서라도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 모래같은 밥도 넘기고
하기 싫은 일들도 하면서 다시 또 일어납니다.
그러다보면 그 수렁에서 서서히 빠져나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자식을 기르는 부모는 쉽게 좌절하지 않는가봅니다.
자식을 위해 밥 해먹이고, 씻기고 청소하고 돈 벌러 다니다보면
또 극복을 하고 그러게 되나봅니다.
그래서 자식이 힘이 되나봅니다.
그러니 일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뭔가를 만드셔야합니다.
하기 싫고 의욕도 없고 너무 피곤할지라도
'내일 해야할 일''이번주 해야할 일'을 만들어서 자꾸 해야합니다.

맛난 밥상도 차리시고, 아이들을 위해 빵도 구워보세요.
청소도 즐겁게 하시고, 집안을 반짝반짝 만들어놓으세요.
평소 하시던 취미도 열심히 하셔서 몸을 건강하게 만드세요.
맛난 것을 먹으면 몸이 행복해지고 마음도 건강해져서
힘든 시대를 좀더 견디게 해줍니다.
지치고 피곤하고 주변이 엉망이면 결국은 모든 것이 비관적으로 보이게 됩니다.
그렇게 되도록 자신을 내버려두지 마세요.
열심히 맛난 음식 만드셔서 가족들을 행복하게 하시고 일상의 힘을 되찾으세요.
그래야, 다시 일어설 힘이 생깁니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킬 힘이 생깁니다.
그러니 지치고 의욕이 없다고해도,
일상은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그 일상 속에 다시 살아날 기회가 있습니다.
진정한 힘은, 일상을 살아가는 속에서 나옵니다....

이제 다시 부엌에 서서 몸과 마음을 추스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