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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짭짤 고소한 김혜경의 사는 이야기, 요리이야기.

과일 갈아넣은 [초계탕]

| 조회수 : 9,634 | 추천수 : 178
작성일 : 2010-07-09 20:08:48


3년 전, 제 곁을 영영 떠나버리신 울 아부지, 여름이면 메밀음식을 달고 사셨습니다.
모처럼 모시고 외식하러가면서 "뭘 드실래요?"하면,
그저, 냉면, 막국수, 메밀국수, 초계탕...이런걸 드시겠다고 했습니다.
특히 송추에 있는 평양면옥을 참 좋아하셔서, "우리 꿩냉면이나 먹자!" 하셨어요.
그 평양면옥의 냉면에 꿩고기가 좀 들어가지요.

폐암 투병하시면서, 마지막 외출이,
바로 이 평양면옥에서 냉면드시고, 근처 보광사를 다녀오신 것이었습니다.
차에서 내려 식당으로 몇발자국 걷는 것도 너무 힘들어하시니까, 지배인님이 쫓아나와서 친절하게 부축해주시고,
동치미를 너무 잘 드시니까 동치미를 따로 싸주시기 까지 하셨습니다.

그때 지배인 아저씨가 너무 고마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인사를 가야지 했지만,
한동안 평양면옥에 못갔더랬습니다. 아버지 생각이 너무 간절했기 때문이지요.
몇달 후, 친정어머니와 간신히 평양면옥에 들어섰는데...음식을 주문하기 전부터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우리가 가면 늘 반갑게 인사하고 주문을 받아가던 지배인 아저씨는 우리를 알아보고도, 먼 발치에서만 아는 척을 할뿐, 다가오시질 못하더라구요. 늘 같이 오던 체격 좋은 할아버지가 같이 오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눈치를 채신 것이죠.

이 집, 평양면옥은 냉면과 녹두지짐도 괜찮지만, 초계탕도 꽤 괜찮아요.
원래 초계탕을 먹으러 가던 곳은 법원리였는데,
솔직히 그 근처에 볼 일이 있으면 모를까, 초계탕만 먹자고 가기에는 거리도 너무 멀고, 음식맛도 뭐....
그러던차에  평양면옥에서 초계탕을 먹어보니, 법원리와는 또다른 맛인거에요.
법원리 초계탕은 국물을 닭육수로만 맛을 냈다면 평양면옥의 초계탕을 과일, 특히 파인애플을 충분히 갈아넣어,
더 상큼하다고 할까요?

  


요즘 제가, 군기가 좀 빠져가지고, 학업에 뜻이 없었습니다.
(아니, 뭐 별 일 없이도 너무 자주 지쳐서, 대충 대충 차려먹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부터 저녁메뉴로 초계탕을 생각하고는 닭 한마리를 푹푹 고았습니다.
푹 익은 닭은 살만 발라내어 냉장고 안에 넣어 식히고,
국물은 국물대로 식혔습니다. 그래야 기름기를 걷어낼 수 있잖아요.




법원리 초계탕 집 버전이 아니라,
평양면옥 버전으로 닭육수에 파인애플과 사과를 갈아넣고,
식초, 겨자,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양상추, 치커리, 적채, 오이 등등 집에 있는 채소를 넣어서 초계탕을 완성했는데요...
나름 시원하긴 했지만 평양면옥의 초계탕 만큼 상큼한 맛은 아니었습니다.
파인애플이 더 들어가야 하나봐요.

새롭게 음식을 시도하면서...제가 열등감에 많이 시달립니다.
요리선생님들은 물론이고,  내로라 하는 블로거들은 음식 만들때 실패를 하지 않는 것 같은데,
제 경우는 실패도 많이 하고, 실패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2% 내지는 20% 부족한 음식이 되기도 하고..
그래서 똑 떨어지는 레시피를 써놓을 수가 없는 거에요.
오늘 초계탕도 맛있으면 자랑스럽게 레시피를 소개하려 했으나,
닭육수와 파인애플, 사과의 황금비율을 찾지 못해...재료의 분량은 생략합니다.
다만, 아 과일을 갈아넣는 초계탕도 맛이 괜찮구나...이렇게만 알아주세요.




초계탕을 하시거든, 메밀국수 삶아내는 것도 잊지마세요.
초계탕에 말아먹는 메밀국수도 꽤 괜찮습니다.
그런데 기왕이면 쫄깃쫄깃한 메밀국수를 넣어 드시는 것이 더 나아요.
툭툭 끊기는 메밀국수는 살짝 안 어울린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나저나,
이 삶아놓은 메밀국수가 남았는데, 그냥 먹을 수는 없고,
내일 전으로 부쳐볼까 하는데, 어떨까요? 이상할까요?
1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죽순이
    '10.7.9 8:15 PM

    더위타는 남편과 아들위해 함 시도해볼게요.
    감사합니다~

  • 2. 살림열공
    '10.7.9 8:23 PM

    선생님은 참, 정이 많으신 분 같아요...
    글 읽다가 괜시리 울컥 했습니다.

    삶아 놓은 면으로는 오코노미야끼가 안될까요?
    면을 보니까 그런 종류가 문득 생각 났어요.
    여름밤에 맥주 한 캔이랑 마시는 오코노미야끼...

  • 3. okbudget
    '10.7.9 8:29 PM

    새로운 메뉴 얻어갑니다
    색다른음식이 먹고싶었는데 ~~딱이예요

  • 4. 보라돌이맘
    '10.7.9 9:09 PM

    돌아가신 선생님 아버님도 메밀국수를 좋아하셨네요.
    저희 아버지도... 특히나 여름만 되면 메밀국수를 즐겨 드셨지요.
    발국수라고... 오래되고 유명한 전통있는 그 국수집에서는
    우리가 잘 먹는 메밀국수를 이렇게 불러요.
    '더운데 발국수 먹자~'하시던...
    아버지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하네요.
    오는 일요일이...돌아가신 저희 아버지의 기일인지라 더 그럴까요.
    그 무덥던 한 여름에 병으로 고생하시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도 생각나고...
    그래서 여름이면 제가 더 힘이 드나봐요...^^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지금도 여전히 아버지를 향한 정이 참 깊으시구나...느낌이 드네요.
    그리움이 담긴 저 맛깔스러운 초계탕...
    선생님 방식으로 저도 한번 만들어 봐야 겠어요.^^

  • 5. Heaven
    '10.7.9 9:14 PM

    와~^^ 저도 초계탕 하려고 닭육수랑 닭살발라서 냉장고에 넣어두었어요^^
    오늘 남편이 야근이라 내일 먹으려구요~
    저도 파인애플갈아 넣어봐야겠어요 사과는 없으니 생략~
    늘 메뉴를 공유해 주시는 선생님께 감사드려요~!!

  • 6. 가을비
    '10.7.9 9:10 PM

    선생님 항상 샘글을 읽을 때마다 인생의 스승을 뵙는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이 그리고 간절하신데 살아계신 아버지께도 효도 못하는 저를 늘 깨우쳐 주시네요.
    초계탕 한 번 해먹어야지 하고 벼르고 있었는데. 한번 도전해봐야 되겠습니다.

  • 7. 김혜경
    '10.7.9 9:15 PM

    보라돌이맘님,
    시간이 흐르니까 그리움이 옅어지긴 하지만, 영 그리움이 사라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좋아하시던 음식을 보면, 좋아하시던 장소를 보면, 그때마다 그리움이 사무치는 것 같아요.
    오는 일요일 아버님 기일 잘 보내시길~~
    아울러 요즘 아침상 보여주셔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반성도 많이 하지요. ^^

    okbudget님, 죽순이님
    여름에 한번씩 먹어주면 꽤 괜찮은 음식인 것 같아요.

    살림열공님,
    오코노미야끼를 한번도 만들어 먹어본 적이 없어요.
    소스도 자신없고...,^^;;

    Heaven님,
    파인애플 좀 넉넉하게 넣어보세요.
    저는 오늘 음식에서 단맛이 너무 나면 어쩌나 싶어서 조금 넣었더니...상큼함이 부족했어요.

    가을비님,
    제가 나이를 먹어가는 징조인 것 같아요.
    그리움이 너무 많아집니다.
    이것저것, 사람도 그립고, 추억도 그립고, 정도 그립고...

  • 8. 바른이맘
    '10.7.9 9:44 PM

    돌아가신 아버님이 폐암 투병중이셨군요.
    친정아빠(아직 젊으시고 저 또한 아버지란 말이 어색해서)가
    지난주에 폐암 2기 판정받고 오늘 오후에 수술하시고 지금
    중환자실에서 계신답니다.
    우리 아빠도 메밀 요리 참 좋아하시는데... 어릴적에 시내에
    정말 유명한 메밀집 가면 늘 마른모밀 하나, 메밀국수 하나
    이렇게 시켜드셨어요.

    담에 퇴원하시면 입맛돌게 메밀요리와 초계탕 꼭 한번
    만들어 드리고 싶네요.

  • 9. 니양
    '10.7.9 10:03 PM

    두달전에 갑자기 급성 폐렴으로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시기전에 사드린 대저토마토...너무 맛있어하시면서 드셨는데..
    장례치른후 친정집에 들러 냉장고를 열었는데..두번째 사드렸던 그 토마토..미처 다 드시지도 못하고...
    그 토마토들을 보니 눈물이 나더라구요.
    이제 저한테 토마토는 세상에서 제일 슬픈 과일이예요..

    참..추억이란게..먹는것 , 장소에 얽혀 있으면 그때마다 생각나고 아릴듯 해요...
    선생님 글 읽으면서 다시 한번..아버지...그려봅니다.

  • 10. 둥이둥이
    '10.7.9 10:17 PM

    저도 얼마전 조류 조사하러 대전 현충원에 들어갔었어요..
    여기 혜경선생님 아버님이 계신 곳이구나 했었지요...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고..숲도 좋고..주변에 새들도 참 많았어요~
    상반기에 하던 일들을 일단락 짓고..약간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시 82로 돌아와...
    밀린 희첩 읽고 있습니당...ㅎㅎ
    선생님..여름내 건강히 지내시구요~

  • 11. 시네라리아
    '10.7.9 10:36 PM

    이글을 읽으니 아픈 친정엄마 생각도 나고...
    같이 살고 있는 시어머니의 건강도 걱정되고하네요...

  • 12. 진선미애
    '10.7.10 9:43 AM

    저희 아버지 기일도 뜨겁디 뜨거운 8월8일 입니다
    돌아가신지 몇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조금만 더 사시지...'란 생각을 자꾸 하게됩니다

    메밀국수는 아니지만 걍 일반국수 남은걸로 오래전에 전 부쳐먹어봤는데
    맛은 그럭저럭 먹을만 했던것 같습니다 ㅎㅎ

  • 13. 놀부
    '10.7.10 1:37 PM

    송추에 있는 꿩냉면넘 맛있답니다
    지금도 한달음에 달려가서 후루룩먹고싶어 눈앞이 아삼삼합니다
    닭무침도 맛나드라구요....한식전날 들렀는데 자리가 없을 정도로 무진장 사람들이 바글바글했거든요....차도 간신히 세울정도로.어쩜 그리두 바글바글인지놀랐답니다

  • 14. 이수미
    '10.7.10 3:23 PM

    저 평양면옥이 있는곳이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죠 송추는 공식명칭은 아니지만 옛부터 송추란
    명칭이 더 많이 알려진곳이죠
    제가 양주시에 근무하죠 일년에 몇번 못가지만 가끔 톡쏘고 상큼한것이 땡길때는 가는곳이며
    그 초계탕이 맛나요
    저두 너무 좋아 한답니다. 사먹기만 했지 집에서 해먹기는 꿈도 못꾸는 사람인지라
    저두 한번 도전해볼랍니다. 사람이 넘 많지요
    여러분 그곳이 양주시란닙다 . ㅎㅎㅎ
    제가 근무하는곳이라 반갑네요

  • 15. 일산딸기네
    '10.7.10 11:18 PM

    법원리 초계탕은 일산 사는 저도 넘 멀어서.. 우리 친정부모님도 여름엔 초계탕을 너무 좋아하시다가 소개받은 집 알려드려도 될까요
    일산 백석동 이마트 근처에 있는 평양 막국수초계탕집이라고 있어요
    장소도 작고 주인부부가 직접 하는 곳인데요 사장님은 법원리 유명한 초계탕과 친인척 관계라고 들었어요...
    네이버에 검색하시면 좌악 나오는 그래도 유명한 곳이더라구요 함 지나가실때 들려보세요

  • 16. 꼬꼬댁
    '10.7.11 9:38 PM

    송추의 평양면옥 저희집도 완전 단골입니다. 그 옆의 운경공원에 친정아버지가 모셔져있지요. 성묘가 끝난후 꿩냉면을 먹은것도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그 집서 초계탕 한번 먹어보고 싶긴 했는데, 맛있다니.. 다음번엔 꼭 먹어야 겠어요.

  • 17. 황대장
    '10.7.13 10:04 AM

    우리 아버지는 막국수를 참 좋아라 하십니다!
    별맛없는 그 막국수 집을 넘 좋아하셔서...
    "외식하실래요??"하면 "막국수에 수육 한접시먹자..."하십니다!!!
    이제 곧 환갑이신대...
    "어서할까요??"하심 본인은 잡수고 싶은게 없다하셔여~~
    그럼 우스갯소리로 "막국수집 빌려서 잔치할까요??"
    "좋은생각이네...."이러십니다..ㅎㅎ
    날더워지니까 저두 막국수에 짠지무침 수육먹으러..
    친정에 고고싱해야겠어요^^

  • 18. 아회평
    '10.7.13 11:50 AM

    사연이 깊은 음식이네요... 그래서 인지 더먹음직 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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