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먹은 이 밥상의 평화는????



국물없는 김치찌개, 깻잎, 찐 단호박, 하루나 무침(요즘 가격이 그나마 착하다), 상추겉저리에 붉은 대추 썰어 올렸다.
떡국 떡이 형형색색이다. 동그랗게 썬 애호박, 역시 느타리 버섯 길게 찢어 넣은 칼라 떡국이다


시금치 국, 시금치 무침, 먹다남은 하루나, 깻잎, 날김, 두부부침 ---> 제법 가지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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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기 전 이른 저녁을 먹은 탓에 뭔가 궁금해지는 9시 무렵 고등학생 딸 K와 빵을 사러 나간 적이 있다.
통 움직이지 않는 아이 좀 걸려보기라도 할까 싶어 “너 좋아하는 빵 골라보라” 유치하게 꾀어 빵집에 갔었다.
단단히 싸매고 나간 탓인지. 뺨에 부딪치는 겨울바람이 그리 춥지 않았다. 오히려 시원하기조차 했다.
빵집 오가며 자연스럽게 학교 얘기가 나왔고 아이는 ‘사회 쌤이 재밌다.’고 한다.
‘법과 사회’ 시간에 선생님 얘기라며 흉내를 내며 웃고 까분다.
“법과 정의 뭐 이런 얘기가 나왔어, 선생님이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라고 있는데 아는 사람?’ 하니까, 애들이 다 손드는 거야.” “그러니까 선생님이 ‘우리 센델이 참 유명해요.~~’ 하면서 ‘그럼 읽어본 사람?’ 하니까 1/3쯤이 손들더라고.” 하기에 “넌 읽었어?” 물으니 “아니 조금”하고 답한다.
“꼭 읽어봐” 라며 짧은 거리에 비해 많은 얘기를 했었다.
K에게
어제 밤, 문자 잘 받았어.
주말 내내 그리고 어제, 오늘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게 있어.
‘소말리아 해적’ ‘삼호 주얼리호’ 이런 키워드들이야. 그래서 불편한 마음만 가질게 아니라 정리해볼까 해.
너와 빵 사러 가며 했던 마이클 센델 얘기 생각나니? 뜬금없이 소말리아 해적에 왠 마이클 센델? 할지 모르겠다.

오늘 편지는 마이클 센델 따라 하기야.
사건의 내용은 이래, 삼호 주얼리호와 선원들이 공해상에서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되었어.
소말리아 해역을 지나는 선박 보호 임무를 띠고 파견되었던 청해부대는 삼호주얼리호와 선원 구출작전에 나섰고 선원들은 구출되었어. 이 과정에서 삼호주얼리호 선장이 총상을 입었고 8명의 납치범들이 사살 되었어.
소말리아 해적들은 몸값이 목적이고 선원들을 살해하거나 하진 않는 것 같아.
이 사건에서 정의란 무엇일까?
한국정부와 군대의 무력행사는 어디서 정당성을 찾을 수 있을까? 왜 정의지?
첫째 자국민의 재산과 생명보호 둘째 상대가 한국법 뿐 아니라 국제법을 위반한 해적이라는 점이겠지 마지막으로 공해상이기에 한국정부와 군대의 무력행사는 타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고 자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했다는 정당성을 가질 수 있을 거야. 여기서 자국민 재산과 생명보호는 누가 국가에게 주었나 하는 논의는 살짝 접어두고 얘기를 할게.(이건 좀 어렵거든, 센델을 읽었으면 쉬우려나. ㅋ)
그런데 한국정부가 정의로웠다고 해도 남는 문제가 있어, 정부가 행하는 무력에 의한 생명 박탈의 문제, 한국 정부의 일관성의 문제지. 우선 한국 정부의 행위가 정의였다면 지금까지 금미호를 비롯한 많은 납치사건에 대해 한국정부는 ‘자국민의 재산과 생명보호’를 등한시했다는 모순에 빠지게 돼.
최소 삼호주얼리호 이전에 한국정부는 소말리아 해적 문제에 대해 결과적으로 정의를 방기, 외면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어.
또 해적 8명 사살과 관련해서 생각해봐야 할 게 전쟁이나 사형제도와 같은 국가 폭력이야.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행하는 폭력이 용인되고 그나마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정당방위, 폭력의 최소화, 다수의 안녕이라는 건데 애석하게도 이 부분에 대한 정보는 없어. 지나치게 선정적인 뉴스보도나 영상만을 가지고 판단하긴 섣부르고.
하지만 생명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어야겠지.
그리고 ‘자국민의 생명보호는 어디까지인가?’ 로도 확장해볼 수 도 있을 거야.
거꾸로 한국인이 해외 또는 공해상에서 벌이는 범죄에 대해 한국정부가 어떡해야하는지도 생각해볼 수 있겠지.
현재 한국 정부는 ‘해적과 협상은 없다’가 원칙이라고 해. 이런 원칙은 어디서 나온 걸까?
불법/폭력에 기반을 둔 세력과 정부가 협상을 통해 양보하지 않겠다는 강경론에 근거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지배질서 또는 체제 보호를 위해 약간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논리와 맞닿아 있어.
법과 질서라는 이름으로 다수가 보호 받는다는 철학과도 연결되지.
더 나가보면 ‘애국’의 문제로도 확장할 수 있을 거야.
시위나, 파업에 법질서 확립이라는 강경 발언이 나오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어.
그런데 이런 강경 태도는 석방에 대해 정부의 미온적 태도를 낳기도 하고 대응할 수 있는 여지를 스스로 줄이기도 해. 당장 금미호 석방이 딜레마겠지. “해적과 협상 없다.” 라면서 돈이 오가는 인질협상을 벌 일수도 없고 공해상이 아닌 소말리아 해역 내에서 군사작전을 펼 수도 없고 난감하게 된 경우야.
그럼 어떻게 될까? 희생이 따르더라도 삼호주얼리호처럼 무력을 사용할 수 없는 정부는 원칙 때문에 해적과 협상을 할 수도 없고 또 스스로의 정의와 원칙인 자국민 보호를 버릴 수도 없으니 석방협상은 선박회사를 통해 하게 되겠지. 그러다 보면 협상은 길어지고 지지부진해지고 아마도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선원의 석방이 지금까지 늦어지고 장기간 걸렸던 이유 중 하나일거야.
하나의 상황, 하나의 사건에서 ‘무엇이 옳은가?’와 ‘무엇이 좋은가?’는 같은 뜻이 아닐뿐 아니라 일치하지는 않는 경우가 많아. 때론 충돌하기도 하지. 그럴 때 중심을 잡는 것과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 해. 좀 재미없는 추상적인 얘긴가? 그럼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앞으로 한국정부는 모든 소말리아 해역 통과 선박을 호위하고 납치되었을 때 무력사용 방침을 유지할 수 있을까? 당장 금미호 선원석방은 어떻게 될까? 또 하나 인명 살상의 문제인데. 공해상 또는 해외에서의 군대의 무력 사용의 문제이지. 특히 해외파병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깊이 고민해야 할 한국사회 현실이라는 거지. 무엇이 옳은 건지 무엇이 좋은 건지.
무엇이 옳고 무엇이 좋은지 고민하고 답을 찾는 건 결국 ‘K, 너 스스로’ 라는 거 알지! ㅎㅎ
아직 억류된 금미호 선원의 빠른 귀환을 바래. 그러기 위해 한국정부가 좀 더 많은 역할을 하길 원하고. 또 이번 사건으로 부상당한 군인과 선장의 쾌유를 빌자꾸나. 아울러 모든 폭력에 희생된 이들의 명복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