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씨가 “고추 말려서 자르며 내가 이 미련한 짓을 왜하나 했어.” 말하며 보여주던 붉은 고추입니다.
김장 무, 배추 심으며 걷어온 붉은 고추 건조기에 말렸다가 가위로 실고추처럼 잘게 잘라 놓은 겁니다.
냉동고에 넣어두고 요긴하게 쓰고 있다. 단맛과 매운 맛, 붉은 색깔 맛까지 아주 맘에 듭니다.
비록 매운 고추 말린 걸 일일이 가위질한 사람은 힘들었지만 쓰는 사람은 편하고 고마운 식재료입니다.
집까지 두어 정류장 남았는데 H씨 전화가 왔습니다. “이제 출발한다.” 고.
퇴근시간 차 막힐 건 뻔 하고 한 시간은 넘게 걸릴 테고 ‘써프라이즈!’ 저녁상이나 봐 놔야겠습니다.
시간 되면 청소도 좀 하고.
‘근데 뭘 하나?’ 궁리하며 집에 들어서자마자 곧장 부엌으로 달려가 설거지부터 합니다.
아침은 뭘 먹었는지 솥은 깨끗이 비워져 있고 다행히 설거지 거리가 몇 개 없습니다.
설거지 마치고 급히 현미에 팥 넣고 밥부터 앉힙니다.
주섬주섬 식재료 꺼내 보니 두부와 주먹만 한 애 호박 한 개, 솎은 총각무청 씻어 놓은 게 있습니다.
뚝배기 꺼내 총각무청 한 줌 집어넣고 자박하게 물 붓고 끓입니다.
센 불에 끓기 시작하면 된장과 다진 마늘 좀 풀고 중약 불에서 국물이 졸아들도록 지지면
구수한 된장 맛이 부드러운 무청에 제대로 밸 겁니다.


*도저히 감출 수 없는 이 빠진 접시 *^^*
호박은 채 썰어 센 불에 소금 간해 후루룩 한 번 볶은 다음 붉은 고추 얹어 여열에 익혀 냈습니다.
밥이 뜸 들기 시작하고 뚝배기선 구수한 된장 지지는 냄새가 올라오기에
역시 예의 그 붉은 고추 한 꼬집 넣어주고 불을 더 낮춥니다.
후라이팬 찬물에 헹궈 다시 불에 올리고 팬이 달궈지자 들기름 두르고
손바닥에서 큼직하게 두부 썰어 주르륵 올려 놓습니다.
두부는 다른 기름보다 들기름에 부치는 게 노릇노릇한 색이 사는 것 같습니다.
이제 상만 차리면 되는데 애고 거실 탁자가 엉망입니다.
신문에 책에 컵에 과일 쪼가리 담긴 접시에……. 행주 들고 달려가 대충 치우고
내친 김에 걸레 챙겨들고 거실 청소까지 마칩니다.
좀 환해진 거실 탁자위에 푹 무른 솎은 총각무청된장지짐과 호박볶음, 두부부침으로 상 차리고 보니 김치가 빠졌습니다. 금치가 되었다는 배추김치도 내볼까 하고 김치 통 꺼내는데 무생채가 보입니다.
한 번 먹을 만큼 남았는데 시큼한 맛과 냄새가 제법 오래 된 것 같습니다.
김치 꺼낼 생각은 잊고 ‘이걸 어찌 먹나?’ ‘비벼 먹어 말아?’ 하다가 젓가락으로 무채들만 살짝 건져 참기름 넣고 깨도 뿌리고 뒤적뒤적 무치고 나니 그럭저럭 새 맛이 납니다.

H씨가 미련한 짓이라 말할 만큼 고되게 만든 저 실고추 잘 쓰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음식 색깔 맞추기도 괜찮고 본래 매운 맛에 말린 고추의 단맛까지 은은한 맛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엔 실고추라는 식재료도 팔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못 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꼴~랑 이것 준비하는데도 근 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무래도 ‘난 집안일에 손이 느린 것 같다’는 생각이 사진 보니 드는군요. ㅠ.ㅠ

“나 그렇게 게으르진 않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