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빗소리, 바람소리, 창문이 들썩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었다.
‘태풍 온다더니 바람이 세네! 비 들이치겠다.’ 싶어 어둑한 집안을 돌아다니며 창문을 닫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가 좀 넘었다.
창을 닫아도 창문 흔들리는 소리는 여전하고 이따금 온 집안을 울리듯 꽝꽝거리기도 한다.
“창문 부서지는 거 아냐, 바람 지나가라고 오히려 양쪽 다 문 열어 놓아야 하는 거 아냐?” 하는
H씨 걱정까지 잠자리가 영 어수선했다.
들썩이는 창문 밖이 뿌옇게 밝아오기에 일어나 부엌 창문을 조금 여니
한겨울 골바람인 듯 세찬 바람 몰아치더라.
태풍이 강화로 상륙했다는 뉴스와 밤새 태풍 피해를 보도하는 아침뉴스를 듣고도
‘바람이 좀 심했나보네 그래도 침수 피해는 없나보네.’하고 흘려들었다.
운전 조심하라며 K가 엄마에게 보낸 문자에도 “웬일이래, 철들었네.” 하고 말았었다.
집을 나서서야, 간벌한 듯 여기저기 놓여 있는 나뭇가지를 보고서야 바람이 얼마나 세찼는지 알았다.
버스를 타고 지나는데 아파트 베란다 창호가 뜯겨 있는 집이 보일 때야 ‘아이고 보통 바람이 아니었구나.’ 했다.
김치찌개, 찬바람불어야 제 맛이지만 비바람 부는 날에도 제법 맛이 난다.
매운 맛을 내려고 고추를 어슷하게 썰어 넣었다.
H씨는 “신김치에 기름 넣고 물 부어 끓인 찌개별로야!”라고 하지만 내겐 어머니의 맛이다.
어린 시절 커다란 양은 냄비 한 가득 김치만 들어있는,
배추포기 머리만 싹둑 반 포기쯤 들어 있는 김치찌개는 별미로 기억된다.
다섯 식구 식성대로 줄기 좋아하는 사람은 줄기로,
이파리 좋아하는 사람은 이파리 쪽으로만 찢어먹던 김치찌개는 돼지비계 한 덩이 들어있지 않았다.
고기기름 대신 식용유 기름이 떠 있어도 그렇게 고소할 수 없었었다.
생김치는 줄기를, 찌개는 이파리를 좋아하는 나와 같은 식성을 가진 형하고
밥상머리서 젓가락 싸움하다 혼나기도 많이 했었던 김치찌개다.
그 기억 때문인지 지금도 김치찌개가 맛이 없는 건 김치가 맛이 없기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숙주나물과 오이지 무쳐내고 급히 찰밥 지었다. 순백의 찰밥.



*태풍 피해 입으신 분들껜 토닥토닥!!!!! 힘내시라고 찰밥 한 그릇 시진으로나마 드립니다.
아무쪼록 빠른 태풍 피해 복구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