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방에 있어”
“친구들은 다 봤어?”
“응, 아빠 어디야?”
“집에 가는 길.”
“어디 갔었어?”
“교보문고, 엄마가 빵이랑 뭐 좀 사오래서 나왔다가 책보고 집에 가는 중이야”
“밤 되니까 서늘하다. 여름 다 갔나보다.”
“응”
“저녁은 먹었니?”
“먹었어.”
“그래 잘 지내고 주말에 보자.”
“어, 아빠도”
“딸!”
“어?”
“아무튼, 어쨌든, 우야 둥둥 규칙적인 생활하라고…….”
“아빠 바램이야.”
“알았어.”
K의 여름 방학이 끝났습니다.
한 달간 지지고 볶던 아이가 없으니 한가한 건지 쓸쓸한 건지 집이 넓어졌습니다.
해질녘 막바지 더위와 습기에 지쳐 찬밥으로 대충 저녁 때우고 멍하니 있는데
“내일 도시락 어떡할래요?” H씨 묻습니다.
“글쎄 도시락 싸긴 밥이 모자랄 것 같은데……. 사먹죠.” 대답하자,
“빵이랑 새싹이랑 좀 사오죠. 샌드위치 싸게.” 합니다.
주섬주섬 챙겨 나오며
“살 것 사고 교보 들려 책좀 보다 올건데 같이 갈래요?” 물었더니,
“힘들어요. 그냥 있을래.” 합니다.
마트 들려 복숭아, 참외, 식빵, 새싹 사고
비닐 봉투에 담아 들고 털레털레 서점으로 향했습니다.
봄에 꽃을 제대로 못 피워 그런지 올 여름 과일 값이 비싸네요.
몇 번을 들었다 놨다 했습니다.
서점에 들어서자마자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황석영의 소설 ‘강남몽’ 들고 의자부터 찾았습니다. 운 좋게 의자와 탁자까지 비어 있는 자리가 있습니다. 먼저 커다란 비닐봉투 척하니 의자위에 올려 ‘내 자리다.’ 찜해 놓고 커피 주문하러 갔습니다.
작가 스스로 강남개발사로 얘기한, 충분히 세인들이 알 만한 사람들을 등장인물로 90년대 백화점 붕괴와 엮어 우리 현대사와 욕망을 이야기 한 소설은 재밌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고 조금은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식은 커피 홀짝거리며 읽던 소설 덮으니 9시가 넘었더군요.
장 본 비닐 봉투 챙겨들고 집으로 가는 길에 서늘한 바람이 불기에 K에게 전화하고 나눈 대화입니다.
‘규칙적인 생활’ 같은 공간에 있는 학교와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아이가, 부모 동의 없으면 외출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곳에서 받는 공부와 공간 스트레스가 어떤 건지 익히 짐작하고 있습니다.
아이에게 무기력해지지 않도록 몸을 움직일 것과 규칙적인 생활을 늘 당부합니다.
하지만 그게 맘처럼 쉽지 않다는 것도 압니다. 그 나이에 쉬운 일이 아니죠.
저도 모르는, 어쩔 수 없는 짜증에 군것질을 하거나 MP3로 음악을 듣는 게 더 편하고 낫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그리고 ‘졸린 데 어쩌라고, 나도 안 졸고 싶어,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싶다고! 나처럼 1시에 자서 6시 일어나봐! 매일 매일.’ 하는 아이의 속마음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부모 마음이라고 ‘아무튼, 어쨌든, 우야 둥둥’이란 말로 얼버무려 한 없이 식상하고 정말 꼰대같은 당부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짜증내지 않고 ‘알았다’ 순하게 대답해준 아이가 고맙습니다.
사실 정작하고 싶었던 얘기는 ‘책 좀 읽어라.’였습니다. 문제 풀고 수행평가용 책 읽기 말고 하루 30분이라도 꾸준히 책을 읽어라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못하고 짐 챙길 때 슬그머니 ‘읽을 책’이라며 챙겨주는 걸로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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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숙사 짐 챙기는 어제 점심 해준 크림소스파스타입니다.
고구마줄기와 호박볶음 크림소스파스타입니다.
올리브유 두른 팬에 고구마 줄기 볶다가 호박은 나중에 붉은 고추와 넣었습니다. 호박과 고추가 너무 익으면 물러지고 씹는 맛이 덜할 것 같아 조금 덜 익힌다는 기분으로 볶았습니다. 간은 소금으로 했고요.
크림소스 만들고 삶은 스파게티 면과 섞은 후 따로 볶은 고구마줄기 호박 붉은 고추 얹은 다음 후추 좀 부렸습니다.
#2

‘엉성한 애정 한 접시’쯤 되려나.
본래는 이쁘게 장식해 보려 했는데 맘처럼 되지 않은 일요일 저녁
감자는 좀 두껍게 잘라 굽고 두 주걱쯤 남은 찬밥은 토마토와 함께 볶았다.
감자 위에 대파와 팽이 버섯 넣은 크림소스 되직하게 만들어 뿌리고 풋고추 큼지막하게 잘라 팽이버섯 한주먹쯤과 구워 팽이버섯엔 발사믹식초 살짝 뿌렸다.
‘구운 감자나 버섯은 맛있는데 토마토 볶음밥은 솔직히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는 평을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