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한다는 월드컵 나이지리아 전 때문에 일찍 잤다.
‘대~한민국’까진 아니라도 ‘와~’와 아쉬움 섞인 탄식이 울려 퍼지는 아파트,
덕분에 잠 못 자거나 부스스 깨어나 TV 보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며 밤 열시도 안 돼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정작 조용했다.
긴장하며 일찍 잔 탓인지 새벽 3시쯤 잠이 깨긴 했으나 여느 때와 다름없이 조용했다.
‘지고 있나?’ ‘양 팀 다 한 골도 못 넣나…….’ 하며 뒤척이다
다시 새벽녘 단잠에 빠졌는데 5시 알람이 울렸다.

‘뭘 하나?’ 버릇대로 엎드려 생각한다.
‘어제 오이지 무쳤고 찬밥 있고 감자 삶으면 되고……. 가지부침? 볶음?’ 하며 일어났다.
압력솥에 담긴 찬밥은 그대로 낮은 불에 데우고 감자부터 삶는다.
지난밤 껍질 벗겨 물에 담가둔 알 작은 감자, 아릴지도 몰라 소금과 식초 적당히 넣었다.
어제 밤에 무쳐둔 오이지 꺼내려 냉장고 열었다. ‘비지’를 보았다.
가지부침이나 볶음을 생각했던 건 까맣게 잊었다. 생비지 한주먹 냄비에 담고 물 좀 넉넉히 부었다.
김장김치 이파리 쪽으로 만 잘라 넣고 김칫국물 한 국자 보탰다.
단 맛을 위해 파도 한 뿌리 다듬어 준비해뒀다. 마지막 간보며 넣으면 된다.

두부를 만들고 나면 항상 비지가 문제다.
두부에 비해 양은 많고 활용도는 떨어지는 비지 처분은 정말 난감하다.
게다가 비지는 저장성도 좋지 않아 쉽게 상한다.
먹다먹다 결국 비지를 버릴 때면 ‘아깝다.’는 생각을 넘어
‘내가 이걸 왜 했을까.' 두부만큼은 해 먹는 것 보다 사먹는 게 여러모로 낫지 않을까.’ 한다.
“이번 주말은 아이가 온다 하니, 새로 두부 할 텐데 비지는 고스란히 남아 있고 새 비지까지…….” 참 난감하다.
“그나마 저장성을 좀 높여, 두고 먹거나 나누어 주려면 띄우기라도 해야겠다.”
“그나저나 비지 띄우기에 마땅한 전기밥솥도 없는데, 이 여름에 어찌하누!”

입 짧고 손은 큰 사람, 저렴한 입맛에 손은 작은 사람, 손은 작지만 입도 짧은 사람.
이런 사람들이 함께 산다면 음식 양, 재료 구입을 누구에게 맞추고 누가 해야 할까?
입 짧고 손 큰 사람은 먹지도 않으면서 많이 해, 제 때 다 먹지 않고 남겨서 문제다.
손 작은 사람은 남기진 않으나 매번 장을 보고 음식을 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무엇이든 잘 먹는 저렴한 입맛은 주로 남은 음식과 재료를 먹어치우기 위한 식사를 하곤 한다.
그러다 보면 그저 ‘때우고 먹어치우기’ 식사만 할 뿐,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는 식사를 못해 문제다.
제 각각 입맛과 손 크기를 가진 우리 집 넘쳐나는 비지를 어찌해야 할지 고민만 깊어간다.


*** 음식은 문화고 개인 또는 집단의 기억이 담긴 역사고 때론 가치관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