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곧 스승의 날이네요.
제 인생에 정말 '스승님'이라고 부를만한 분은 몇 안계세요.
그중 강교수님은 제가 팬클럽만들거라고 할만큼 존경하는 분이십니다.
대학교에 갓 입학한 1학년 때, 수업들이 거의 개론과 원론이다보니
딱히 고딩 때 수업과 다른 게 무어냐.. 하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그렇지만 강교수님의 수업은 달랐답니다.
그동안 알려져있던 이론들과 그 배경, 미치는 영향들 뒤에
반드시 본인이 주장하는 새로운 이론과 주장 이유들을 말씀하셨어요.
정말 영화에서나 보던 '제대로 된 대학교 수업'이었어요.
강교수님의 수업을 듣지 않는 학기에도
교수님 연구실을 지나칠 때면 무작정 들러서 차도 얻어마시고,
레포트 등으로 자료가 부족하면 떼도 쓰고,
늦은 시간에 연구실에 불이 켜져 있으면 불쑥 들르기도 하고,
퇴근하실 때 우연히 만나게되면 태워달라고 매달리기도 하던
'대략 난감스타일' 제자였지요.
남편도 교수님덕분에 처음 만나게 되었답니다.
교수님께서 책을 출간하시면서 출간파티를 하게 되셨는데
제자들 몇에게 행사 당일 진행을 도와달라고 하셨고
거기서 남편을 처음 봤었어요.
졸업하고 난 뒤에도 학교에 가게되면 꼬박꼬박 인사도 드리고,
연말연시에는 카드도 보내고, 가끔 통화도 하면서
교수님을 향한 제 마음을 알아주십사 칭칭거렸어요.

남편에게서 프로포즈를 받고 청첩장을 만들어 달려갔던 곳도 강교수님 연구실이었어요.
교수님께서는 제자들이었던 저희 둘의 결혼식을 축하해주시면서
부부로서 지켜야할 신의와 예의 등을 인생선배로서의 여러 조언과 함께
오랜 시간 말씀해주셨지요.
결혼식장에서 제가 있던 신부대기실로 오셔서 제 손을 꼭 잡고
"오늘 이쁘구나, 이뻐."해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결혼 후 교수님과 사모님을 모시고 식사대접을 하려고 여러번 말씀을 올렸지만
암진단 후 치료중이시던 교수님께서는 다음 달에, 다음 달에... 하시며
연기하셨지요.
만두군 출산일이 있던 작년 8월초에도 전화를 한번 드렸지만
몸도 무거운데 돌아다니면 안된다시며 아기낳고 만나자고 하셨어요.
그때 무리를 해서라도 뵈었어야 하는건데...
만두와 저는 출산 당일 응급상황에 빠져서 저녁에 긴급수술을 받았어요.
저도 마취에서 빨리 깨어나지 못했고,
만두는 태어나자마자 제 품에 안겨보지도 못한 채 신생아 중환자실로 갔다가,
새벽에 수원의 대형 병원으로, 밤에는 서울의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답니다.
수원으로 가기전 휠체어에 실려 몇초간 인큐베이터 너머 희미하게 보이는 만두군을 봤었어요.
전 엄마가 되었지만 아기 얼굴을 모르는 엄마였어요.
제 몸속에서 오로지 제 심장소리와 제 목소리만 알고 살던 만두군이
느닷없이 춥고 환한 세상으로 꺼내어져서
낯선 사람들과 무서운 기계음만 들리는 인큐베이터에서 홀로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미안했고, 날마다 울기만 했지요.
몇년전에만 태어났어도 관련 의료기기가 없어서 목숨을 보장하기 어려웠을거라는
담당의사의 말..
하루 10분의 면회에 목말라하며 유축기로 찢어진 피부에 약도 못 바르고 울던 그 때..

하지만 만두군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면서 결국 태어난지 2달 후
모든 의료장비를 떼어내고 '완치'판정을 받은 기적의 아기가 되었답니다.
그때가 10월 하순으로 넘어갈 무렵이었어요.
완치 판정을 받기는 했지만 백일까지는 각별히 주의해서 돌봐야한다는 주치의의 말에
하루하루 만두군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던 저는 연말이 다가오면서
평소와 다름없이 강교수님께 연말 카드를 보냈습니다.
전화도 드렸지만 받지 않으셔서 나중에 연구실로 찾아가야지.. 하는 생각만 했었지요.
새해가 되어 학기도 개강할 때가 되어가길래 이제 아기를 안고 교수님께 인사가야겠구나.. 하면서
다시 전화를 드렸는데 이젠 아예 결번이라고 나오더군요.
그냥 찾아가야겠다. 하면서 학과사무실에 전화를 해서 강교수님의 수업일을 물어보니
조교가 무척 당황하면서 제 학번을 물어보더라고요.
"96학번인데요."라고 했더니 "아, 그럼 모르시겠구나. 강교수님, 지난 학기에 돌아가셨어요."
강교수님, 지난 학기에 돌아가셨어요.
강교수님, 지난 학기에 돌아가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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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하루 내내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별세하신 날을 알아보니 만두군이 완치판정을 받기 불과 4일전에 돌아가셨더군요.
제가 만두군에게 매달리느라 전혀 생각을 못하던 그 때....
강교수님, 저 이제 교수님께서 그렇게 보고싶다시던 아기엄마가 되었어요.
모교 대학원으로 진학하면서 교수님을 가까이서 다시 뵐수 있겠다, 기뻐했었어요.
스승의 날에 예쁜 꽃다발들고 찾아가려고 했는데 이제 너무 늦었네요.
교수님, 존경하고 존경하고 또 존경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