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렇게 정겨운 도시락 풍경을 만들려면 주말이 너무 너무 바빠요.
밑반찬 몇가지 만들어 놓지 않으면 평일에 도시락 싸갖고 다닐 엄두가 안나거든요.

오뎅탕 끓이고 남은 오뎅이 있어 맛간장, 설탕, 청주, 다진 마늘, 물 넣고 바글 바글 끓이다가
양파, 오뎅 넣어서 조려줬어요. 오뎅은 넣기 전에 살짝 데쳐줬구요.

도시락 반찬 답게 앙증맞은 오뎅볶음 완성이요~

맨날 애호박 전하다가 지겨워서 남은 애호박을 과감히 다 썰어 호박나물을 해줬어요.
소금을 뿌려둔 애호박을(그럼 볶을 때 덜 부서진다고 해서요.) 물 조금 넣고, 양파랑 볶았어요.
간은 새우젓만으로 했는데, 괜찮던걸요.

선물 받은 스팸이 아직 한참 있어서 감자랑 같이 볶았어요. 전 햄 넣은 감자채 볶음을 먹고 싶단
말여요, 흑. 감자를 채쳐서 뿌연 물이 안나올 때까지 계속 헹궈 전분을 다 빼줬어요.
전분 빼지 않으면 감자가 막 들러 붙어요. 물기를 뺀 감자채를 스팸이 부서지지 않게 살살
볶다가 같이 넣고 볶아요. 소금으로만 간했구요. 스팸에 짠맛이 있어서 소금은 많이 넣지 않았어요.

다행이 스팸이 부서지지 않아 제법 햄감자채 볶음스런 모습으로 완성되었네요.

밑반찬 삼총사와 함께 전날 부친 계란말이, 김으로 싼 도시락.
저 계란말이는 집에 있는 야채 꼬투리 청소용, 일명 '싹다말이 계란'이랍니다.
노란색, 빨간색 파프리카랑 초로색 야채는 브로콜리에요. 미용에 좋다구 후배들한테 억지로
다 먹였어요.

스테이크 하려고 사둔 등신을 냉동실에서 꺼내서 마구 다져줬어요.

으깬 두부, 다진 파, 다진 양파, 계란 하나, 밀가루, 소금, 후추 넣어 조물 조물.

동그랑땡 굴릴 시간도 없고, 귀찮아서 수저로 하나씩 떠서 모양을 잡아줬더니, 몇개는 좀
과하게 익어주셨네요. 모양은 좀 그래도 등심이 잔뜩 들어가 맛은 좋았어요.

아스파라거스를 손질해 끓는 물에 살짝 데쳐줬구요.

베이컨을 말아줬어요. 하나님 레서피에 이렇게 스파게티를 찔러 넣어 양쪽 튀어나온 부분을
잘라주면 티도 안나고, 베이컨이 잘 안풀린다고 해서 꼭꼭 찔러줬답니다.
그런데, 베이컨을 잘 당겨가면서 감으니까 스파게티 고정핀 아니라도 잘 안풀리더라구요.

예열된 오븐에서 10분 동안 구워줬어요. 중간에 한번 뒤집어 줬구요.
종이 호일 참 편하고 좋은 것 같아요. 뜨거울 때 먹어야 맛있는데...

도시락 싸고 나면 꼭 한끼 먹을 분량 만큼 반찬이 남아요. 담날 퇴근하고 돌아오면 싹 다 없어지죠.

회사 사람들이 제 도시락은 '신혼부부표 도시락'이라고... ^^;' 자주 자주 안해먹으니까
엄마들의 손맛과 연륜이 묻어나는 도시락 필이 아무래도 안나요.
신혼부부표 도시락은 원래 남편을 위해 싸는 건데, 이건 뭐 나먹고 살자고 싸는 도시락이니
쫌... ^^* 그래도 항상 주부가 남편과 자식만을 위해 부엌칼을 들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이게 올해의 마지막 도시락이에요. 이번 주는 내내 행사가 있어 팀원들이 도시락 싸들고
밥 먹을 여력이 없었답니다. 도시락 시켜 먹거나 현장 지원 나가서 식당 가서 먹곤 해요.
연말이라 약속도 많구요. 내년에는 더 열심히 싸볼랍니다. ^^v (V가 좀 소극적이죠?
과연 잘 싸먹고 다닐 수 있을지...)

밑반찬 하느라 바쁘기도 하지만 매번 도시락 밥 먹다보니 주말에는 분식이 땡겨요.
다행이 남편도 좋아해서 샌드위치로 합의 봤어요.
김밥 싸고 남은 햄, 당근, 양배추 채쳐주고, 계란 부쳐주고. 길거리표 샌드위치 컨셉이에요.

식빵을 버터 녹여 토스트 한 후, 케첩 -> 야채 -> 계란부침 -> 햄 -> 머스터드 소스 순서대로
올려줬어요.

점심을 샌드위치로 떼웠는데도, 저녁이 되니 따끈한 수제비가 땡기는 거 있죠?
으, 그 싫어라 하는 밀가루 반죽에 또 겁없이 도전했답니다. 땀 삐질삐질 흘릴 때쯤이면
반죽이 완성돼요. 반죽 시간 몇분, 이런 거 필요 없어요. 그저 땀 나올 때 쯤이면...

연속된 분식 퍼레이드는 쫌 미안해서 낙지를 넣은 럭셔리 수제비를 하기로 했어요.
낙지 한마리, 양파, 감자, 애호박, 대파 썰어서 미리 준비해 두구요.

재료를 준비하는 동안 냉동실에 얼려둔 육수 한팩을 꺼내서 끓여줘요.

물이 끓으면 단단한 야채부터 넣어주고, 수제비를 뚝뚝 떼어 넣어줘요.
중간 중간 거품은 걷어내 주구요.

대파를 넣어주고,

마지막으로 낙지를 넣어주고, 뜨거운 물 만난 낙지가 난리부루스를 멈출 때쯤(오래 안걸려요)
가위로 뚝뚝 먹기 좋게 잘라줘요. 너무 익히면 질겨 진대요.

국간장으로만 간을 했는데요, 육수가 진해서 국물 맛이 아주 좋았어요.

오늘도 MBC는 파업을 이어가고 있어요. 오늘 날씨 너무 춥던데, 수제비 가득 끓여서 한 그릇씩
나눠 주고 싶네요. 남편도 빠짐 없이 집회에 참석하고 있답니다.
드라마 PD들은 작업 성격상 개인주의적인 성향도 강하고, 정치적인 일엔 관심이 없는데,
이번 파업을 대하는 자세는 예전과 많이 다르네요. 서로 동지애도 느끼고, 나라의 앞날도 걱정
하며 이 혹한을 함께 이겨내고 있다는 게 스스로도 보람찬가 봐요. 힘들어 하질 않아요.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MBC 드라마에서 인간적인 향기가 한층 짙어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