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을 꿈꾸다
A : 그동안 속 시끄러웠는데, 연휴에 우리끼리 어디 좀 갈까?
B : 어디?
A : 온천도 하고 일본 어때? 추우면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도 좋고.
C : 비행기 표 있겠나?
아무데나 갈 것 같으면 ‘땡 처리’ 잡을 수도 있겠다.
B : D한테도 얘기 해야지! 근데 괜찮겠어? 집에서…….
A : 어찌 되겠지. 아무튼 가자고.
1월 마지막 날, 배나온 중년의 남성 셋이 모여 앉아,
노닥거리다가 잠시 이런 꿈을 꿨었다. 설 연휴에 놀러가는 꿈을…….
그러나 꿈은 꿈일 뿐, 이들은 설 연휴 그동안 명절을 반복했을 뿐 일탈은 없었다.
‘그래도 꿈을 꿨는데 뭐라도 해야지’ 하며 이들이 뭘 하긴 했는데
찾은 곳은 곱게 명절 보내고 비행기는 커녕 제주조차 못가고
주말 1박 2일 지리산행이었다.
A,B,C,D,F까지 다섯이 모인 1박 2일!!!
능선을 한 눈에 바라 볼 수 있는 600고지의 산내면 중앙마을
집을 짓고 있는 녀석이 있다. 벌써 3년째다.
시간 날 때마다, 주말이면 내려와 집을 짓는다고 한다.
“산에 가면 머하겐노? 기분 좋다고 소고기 구워먹겠지~
소고기 구어묵으면 머하겐노? 술 안주 있다고 막걸리 묵겠지~
막걸리 쳐무그면 머하겐노? 취한다고 떠들겠지~
떠들면 머하겐노? 또 술 쳐묵지!
술쳐무그면 머하겐노? 안주빨 세우겠지, 소고기 묵고 이것저것 쳐묵겠지~
그러다 디비 자고, 배나오는 게 인생인기라~ 그런 인생을 니는 몰라, 니 인생 아나!!!!”
지리산 가면 뭘 할 건지, 산행은 어디로 어떻게 할 건지?
묻는 자리에서 나온 너스레다.
이때 1박 2일 중년의 일탈은 정해졌는지도 모른겠다.
점심도 거르고 3시쯤 도착하자 마자
정말 기분 좋다고 소고기 굽는다. 막걸리를 기울인다.
막걸리와 이것저것 각자 들고 온 것들을 주섬주섬 내놓고.
온갖 막걸 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소고기뿐 아니라 조기와 두부도 어느 새 불판위에 얌전히 누워 계신다.
동네 맨 윗집 산다는 부부, 김치와 나물 호박전까지 가지고 와 함께 한잔 기울였다.
지리산 둘레길에서 흙집 짓고 민막하며 소소하게 농사지으며 산다는데
음식 솜씨가 좋아, 동네 다 먹여 살린다고 한다.
머윗대와 배추 삶아 볶은 나물은 새로운 배움이었다.
고로쇠 첫 물이라고 큰 말 통으로 하나를 들고 온 또 다른 이웃으로 멤버가 바뀌고
“고로쇠는 앉은 자리에서 다 마셔야 하는 기라”며 한 대접씩 돌리자.
막걸리 한 잔, 고로쇠 한 모금, 막걸리 한 잔…….
막걸리 먹으려 고로쇠 먹는지 고로쇠 마시려고 막걸리 마시는지 모르겠더라.
결국 고로쇠 통은 바닥이 났다.
왁자지껄하는 사이 막걸리 빈병들은 우아한 자태 뽐내며 창틀에 하나씩 올라가고
이건 시작에 불과 했으니....
까마득한 날에
제주 어느 콘도에서
25도 한라산 소주 병
처음 따더니
어디 닭 우는 소리
한 번, 두 번, 세 번 들렸으랴
끊임없는 파도소리에
부지런한 해와 달이 두어 번 더 지고 뜨고
비로소 이루었으니
사방벽면 가득 초록
소주병 나빌레라
가지런히 한 줄로 앉아 있더라.
다시 천고 뒤에
막걸리 차고 오는 것들이 있어
지리산에서 1박 2일
가지런히 한 줄로 세우게 하리라.
*초인은 아니지만 저 술병 끝까지 줄 세운 사진들고 coming soon
-------------------------------------------------------------------------------------------
K에게
밤새 눈이 왔더구나.
냉이국이다. 2월이니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담겨 더 반가운지도 모르겠다.
소박하지만 반가운 된장국
봄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한 없이 반가운 냉이 된장국 일 거다.
딸!
된장국처럼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반가울 수 있는 존재,
우린 그런 사람일 수 있을까?
개학하면 기숙사로 들어가는 널 보면 서운한 마음 어쩔 수 없지만,
독립하는 과정이라 받아들이며 몇 가지 당부한다.
아무래도 또래끼리 어울리는 시간이 많을 테고,
함부로 말하고 짜증내는 경우도 많을 테니……. 끼니 챙기듯 챙겨보렴.
네가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내고 몸을 움직이고 따뜻한 눈길과 말씨,
밝고 좋은 얼굴빛으로 대하고 있는지? 기꺼이 자리를 양보하고 있는지?
때때로 마음속에 챙겨보렴.
널 위해 끼니 챙기듯, 꼭 네 마음도 한 번씩 챙겨보렴.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반가울 수 있는 존재로 너를 성장시킬 거다.
K야, 오늘도 행복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