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전 두번에 걸쳐 집에 있던 묵나물들을 볶았더랬습니다.
많이씩 볶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반찬이 이것저것 있다보니, 아직 다 먹지 않고 조금씩 남아있습니다.
혹시라도 맛이 변할까봐, 김치냉장고 안에 두고 먹고 있는데요,
오늘은, 한정식 집 분위기를 내고 싶어서,
볶아둔 나물들 쭈욱 늘어놓고, 한정식 집 분위기를 내봤습니다.
한정식이라면 생선도 빠질 수 없어서, 굴비도 큼직한 녀석으로 한마리 굽고...
그랬는데,
밥상 받은 식구들, 모두들 비빔그릇을 찾는 거에요.
우리집 비빔밥에는 고기와 달걀이 들어가야합니다...ㅠㅠ..
볶은 쇠고기가 없으면 kimys가 비빔밥으로 안 치고,
울 아들은 달걀 프라이가 없는 비빔밥을 상상도 하지 못합니다.
해서 부랴부랴 달걀도 부치고, 쇠고기도 볶고.
오늘 콩나물국을 끓였으니까, 나름 거의 완벽한 산채비빔밥이었지요.
요즘,
음식을 하는 것이 힘들지 않고, 재밌기까지 한데, 그 이유를 잘 몰랐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알겠더라구요...그게 바로 칼 때문입니다.
칼이 잘 드니까, 정말 요리가 쉬워지는 것 같아요.

제가 가지고 있는 칼들입니다.
몇자루 빠진 것이 있으니 정말 많은거죠?
그렇지만...이걸 다 꺼내놓고 쓰는 건 아닙니다.
물론 다 제 돈 주고 산 것도 아니고요.
컷코칼은, 제가 처음 책을 내고, 인세를 듬뿍 받았을 때 기념으로 산거구요,
다른 건 선물 받은 것도 있고, 카드의 포인트로 획득한 것도 있습니다.
울 친정엄마의 하사품, kimys의 여행기념품도 있구요.

제가 평소에 꺼내놓고 쓰는 칼들입니다.
보통 칼과 세라믹칼, 무쇠칼 등등 입니다.
이렇게 여러 자루를 꺼내놓고 써야 바쁘게 움직일때 쓰던 칼 닦지 않고, 딴 칼 꺼내써가면서 빨리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책을 낼 때마다, 82cook 식구들이 절 도와주러 많이 오는데요,
일 도와주러 오는 사람들마다,
저희 집 칼이 안든다고, 칼 좀 갈아놓고 쓰라고 하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어요.
칼이 안들면 봉모양으로 생긴 칼갈이에 쓱쓱 문질러서 쓰면 쓸만하거든요.
'칼 자주 갈아서 쓰는데...뭘 더 갈라고...'하고 말았습니다.
그랬는데. 지난번 아버지 기일에 친정에 가서 일을 하는데,
친정어머니의 칼을 써보니, 일하는데 힘도 안드는 거에요, 바로 칼 탓인거 있죠?
조그만 트럭으로 집집마다 방문해서 칼을 갈아주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연락처가 적힌 스티커를 친정어머니께 빌려서 가져왔더랬어요.
그리고 며칠 뒤, 전화를 했더니, 바로 달려왔습니다.
스티커에는 '한자루라도 방문해서 갈아드립니다!'라고 되어있어서,
두세자루 갈아볼까 했는데, 이것도 안들고 저것도 안든다 싶어서, 이것저것 꺼내고 보니 일곱자루나 되는 거에요.
자주 쓰는 칼 중 잘 안들어서 답답한 칼만 골라보니..^^;;
칼갈아주는 아저씨께 갈아야할 칼을 드리니까,
"칼이 정말 많으시네요"하는거에요. 사실은 훨씬 칼이 많고 갈아야할 칼도 훨씬 더 많은데...
쌍둥이칼을 꺼내드리면서,
"아저씨, 몇년에 이 아파트에 칼 갈러 온 아저씨에게 쌍둥이칼 갈았다가 이가 다 나가서 버렸는데, 괜찮을까요?"했더니,
걱정 말라고 하시는 거에요, 세라믹칼만 빼고는 뭐든 가신다고...
칼을 갖고, 칼 가는 기계가 설치되어있는 미니트럭으로 가시더니, 한참이나 가시는 거에요.
그러더니 날을 잘 세워서 갖다주셨는데, 여러 자루를 갈다보니, 2만2천원인가 나왔어요, 칼 가는 공임이..
쌍둥이칼 같은 칼은 4천원, 쌍둥이칼 과도는 3천원,
보통 칼 3천원, 보통 과도 2천원이래요.
이 칼가는 공임, 비싸다면 비쌀 수도 있고, 싸다면 쌀 수도 있는 건데요,
어쨌든 집까지 와서 갈아주는 거니까 아깝지 않게 생각했더랬어요.
칼을 받아들고 감동했던 건, 제가 자주 쓰는 중도(中刀)의 칼 끝이 뭉개졌어요. 누가 그랬는 지....
그런데 이 뭉개진 부분을 잘 갈아서 칼 모양을 잡아온 거에요.

이렇게요.
이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이었는데, 칼을 간지 한달이 넘었는데도, 아직 칼이 너무 잘들어요.
칼이 잘 드니까, 음식하는 데 힘이 안드는 거 있죠?
지난번, kimys의 생일에도, 칼이 잘 드니까,더 빨리 더 쉽게 한거 같아요.
게다가, 이번에 칼을 갈면서 제가 가장 사랑하게 된 칼이,
쌍둥이칼도, 컷코칼도, 솔리컷칼도 아닌, 도루코칼이 되었답니다.
가벼우면서 너무 잘 들어서, 뭐든 기분 좋게 썰리거든요.
칼갈이 아저씨는 보내면서,
"아저씨는 칼 갈러 어디까지 가세요?"했더니,
"일산 분당까지는 커버합니다. 그런데....한자루는 좀...."
하하, 그렇겠죠, 한자루 갈자고 은평구에서 분당까지 가면, 기름값도 안나오죠.
혹시, 칼이 잘 안들어서, 음식 좀 할라치면 짜증나는 분들,
칼 좀 갈아보세요.
집에서 숫돌 놓고 잘 갈아 쓰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처럼 봉에서 쓱쓱 비벼 대충 갈아쓰는 분들은 제대로 한번 날을 세워보세요.
음식만드는 게 훨씬 쉬워진답니다.
네? 다들 알고 계시는데...저만 몰랐다구요...헉..^^;;, 죄송합니당~~저 같은 분이 또 계시는 줄 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