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국민학교 5학년땐가, 6학년땐가..암튼 그 무렵...
저희 가족들이 대천해수욕장으로 피서를 갔습니다.
지금처럼 자가용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당시 아버지가 육군 대령이라 전용 지프차가 있긴 했지만, 사사로이 가족들 피서갈 때 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옷가지에 이부자리에, 들통이며 석유풍로 등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기차 버스 타고 도착한 대천해수욕장!
아마도 가는 길이 퍽 고생스러웠을텐데도...어린 마음에는 좋기만 했었습니다.
어느 민박집에 묵으면서 하루 종일 물놀이하고, 엄마가 해주는 맛있는 거 먹고...
그러던 중 아침부터 물놀이를 하다가 지쳐서 잠시 잠이 들었는데, 너무나 맛있는 냄새가 코를 간지르는 거에요.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서 아직 눈은 뜰 수 없고, 코와 귀부터 깨어났는데,
코는 맛있는 냄새를 맡느라 벌름거리고,
귀는 우리 엄마 아부지가 다정하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정말....그 때의 그 행복감이 지금까지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음악처럼 달콤한 부모님의 이야기소리와 너무 맛있는 냄새에 얼른 눈을 비비고 일어나보니까,
엄마랑 아버지께서는 우리 삼남매가 낮잠을 자는 동안 들통 가득 꽃게를 쪄놓으셨어요.
요즘은 대천 바닷가에 고깃배가 들어오지 않지만 40년전쯤에는 해수욕장까지 고깃배가 들어왔습니다.
우리가 자는 새벽에 엄마 아버지께서 고깃배에 가서 사오신 꽃게를 간식으로 쪄주신 것이었습니다.
제 평생, 이날 먹은 꽃게보다 더 맛있는 꽃게는 먹어본 적 없습니다.
걸신 들린 것처럼 먹어대는 우리 삼남매를 그저 빙그레 웃으시면 바라보던 우리 부모님들...
어제밤 문득 kimys가 랍스터가 먹고 싶다는 거에요.
속으로는 '뜬금없이 웬 랍스터?!' 했습니다.
왜냐하면, TV의 음식프로그램에서 걸핏하면 랍스터가 나오니까,
kimys, "전세계 랍스터는 다 한국으로 들어오나? 웬 랍스터를 저렇게 먹나?", 뭐 이러면서 혀를 끌끌 차곤 했거든요.
그러던 사람이 자려고 누워서는 랍스터 타령이니...이건 꼭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낼 농수산물시장에 갑시다. 랍스터 사러.."이러고 잤습니다.
오늘 낮, 마포 농수산물시장에 갔었어요. 랍스터 사려구요. 아무리 비싸도 산다 싶었습니다.
전에 두어번 사다가 쪄먹은 적도 있고, 나가서 사먹은 적도 있지만, 사실 좀 부담스런 음식이긴 합니다.
랍스터 킹크랩 대게, 이런 걸 전문적으로 파는 집엘 갔더니,
랍스터 1㎏에 3만5천원이래요. 4인 가족이 먹으려면 적어도 2㎏짜리는 사야한대요.
갈 때는 '어쩌다 한번인데 까짓 랍스터..값이 얼마든 사고야 만다, 10만원이 되겠지, 뭐'이러면서 갔는데..
막상 1마리 7만원이라고 하니까 사알짝 결심이 흔들렸습니다.
그때 제 마음을 읽었는지 kimys는 "그만 두자"하고 저를 잡아끄는데...
못이기는 체 하고 랍스터 가게를 나왔습니다.
우리 식구 나가서 외식하면 거창하게 하면 10만원 한장은 금방 깨지는데도,
랍스터 한마리 7만원은 간이 떨려서요..^^;;
대신 꽃게를 샀어요.
살아있는 꽃게, 오늘 시세는 1㎏에 1만5천원. 아주 큰걸로만 골라 담았더니 4마리 담았는데 3만원 이래요.
랍스터 값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그러지않아도 며칠전 kimys가, "요즘 꽃게철이냐"며 꽃게찜 먹고 싶다고 하던 차에 잘됐죠.
돌아오는 길에 다짐해서 물었습니다.
"당신이 먹고 싶다고 하는 꽃게찜은 그냥 찐 거지?? 콩나물넣고 맵게 한거 아니지??"
저녁에 꽃게를 김오른 찜통에 쪘습니다.
얼마나 큰지 긴변의 지름이 37㎝나 되는 접시를 거의 다 차지하네요.
kimys랑 저랑은 밥도 안먹고, 저녁으로 꽃게 한마리씩 해치웠습니다.
어머니는 드시고 싶지 않다고 하고, 아이들은 없고...
살이 어찌나 꽉 찼는지..정말 맛있었어요.
대천해수욕장에서 먹었던 그 꽃게의 맛은 아니지만, 아주 훌륭했습니다.
그리고 랍스터 안사고, 꽃게 산 것이 얼마나 탁월한 선택이었는지...헤헤...아주 기분 좋은 저녁상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