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스러운 댓글과 추천에 감사의 마음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냥 지나온 시시한 이야기임에도
깊은 애정과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울 남편은 저를 밥순이라고 부릅니다..ㅜ.ㅜ
본명 : 박 순이
별명 : 밥 순이
요즘 *순이들의 전성시대 이므로...^~^
전편에 이은 길고 지루한 밥순이의 이야기...^^
***********************************************
중학교를 못 간 제게 3월은..
그렇게 따뜻하고 좋은 계절은 아니였습니다..
그것은 어린 마음에 상처와 소외감...
그리고 알지 못할 서글픔 같은 것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고모는 엄마가 아니여서...국민학교 졸업식은 물론...
겨울 방학 동안에 내야 하는 중학교 입학금을 안냈고, 내는 줄도 몰랐댔습니다..
제가 맏이라 경험이 없었던 것이기도 하구요...
1월중에 내야 하는 걸 2월이 다 지나도록 안내어서...
입학 쯤에 중학교에 갔더니..입학생 명단에 내 이름이 없었습니다...
난 울었고..고모는 여러번 사정을 했지만...
학교에선 문교부에 이미 명단이 다 올라갔기 때문에...
안된다고 했습니다 ....


그건 열 네살짜리 아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였습니다...
엄마는 고모와 대판 싸우셨습니다...
어쩜 애 학교도 신경 안쓰고 그럴거면서...
애들을 키운다고 엄마를 나서게 했냐고...


(오징어 요리를 보고 나서...
대신 쭈꾸미라도 볶아 먹어야 하겠기에
점심에 후다닥 한 접시 만들었습니다...
반찬은 오직 이것 하나...
남편과 둘이 실 컷 먹었습니다...)
어느 엄마나 그렇지만...
어려서 부터 영특함(?)을 보였던 저에 대한
엄마의 교육열은 대단하셨습니다...
난 달력을 보고 숫자를 저절로 깨달았고...
31이 제일 큰 수인 줄 알았었지만...^^
국민학교 2학년 때부터의 유일한 책이였던
소년소녀 세계명작동화 전집을 달달달...다 외워서...
부모님의 이쁨을 받았댔습니다...늘 100점짜리 시험지에..
교육의 혜택을 별로 못받고 자라신 부모님들께
저는 엄청 큰 기쁨과 자랑이셨습니다..

(박스째 산 사과가 맛이 없어서 쨈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제가 이제 중학교를 못가게 되었습니다....
입학금 23,000원을 못 내서.....
개나리,진달래 만발하는 아름다운 3월에
나는 뒷방에 숨어서 울어야 했습니다..
교복입은 단발머리 친구들이 학교 가는 시간...
오는 시간이 나는 제일 싫었습니다...
그 시간엔 산에 가서 나물을 캐든지,고모를 따라 빨래를 하든지..



다 큰 애가 학교도 안가고 있으니...
한달이 지나고 나서...
옆집 아주머니가 고등공민학교에 다닐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장로교회에서 운영하는 비정규 학교였는데...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정규 학교를 가지 못한
아이들을 모아서...교회에서 공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나중에 검정고시를 거쳐야 정규 고등학교를 갈 수 있는...
아이들과 반대 방향으로 가야 하는 고등공민학교를 ....
난 늘 고개를 숙이고...혼자 학교를 다녔습니다...
걔네들은 하얀칼라의 예쁜 교복을...난 그냥...
6학년에서 멈춘것 같은 그런 모습으로...


(냉장고에 남아 있던 짜투리로 후다닥 볶아도 요리??)
그러나......
그곳에서 저는 하나님을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믿음 생활을 하시는 선생님들을 통하여...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지를 보았습니다...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는...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을...


세상노래를 배우는 대신 '주께서 내길 예비하시네~..주께서 내길 예비하시네~'
이런 찬송을 배우며, 내 길을, 장래를 하나님께 맡기고 신뢰하는 것과...
마음으로 하나님을 조금씩 믿어갔고...사랑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진화론을 배우기 이전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진리를 먼저 배우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의 더 많은 고난을 통하여...
나의 상황은 오히려 감사가 넘치는 일임을 알게 되었고....
사람이 준 상처를 하나님은 치료하시고 위로하시는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웃에 사는 친구가 갑자기 와서 후다닥 점심을 차렸어요..ㅡ.ㅡ;;)
그곳은 몇명되지 않는 아이들과 선생님들로
그야말로 전인 교육(?)이였고..열린 교육이였습니다..
함께 공부하고...
함께 기도하고 찬송하고...
함께 수련회도 가고....
가난한 아이들과 함께 했던 선생님들과의 일년은...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부요할 수 있는지를 배운 시기였습니다..


다음해엔 꼭 정규학교를 가야했습니다....그러나....ㅠ.ㅠ
삶이 고단한 고모는 별로 이것 저것을 챙기지 않고..
엄마의 요구에도 차일 피일 미루고 돈생기기만을 바라다가...
저는 입학시기를 또 놓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번엔 엄마가 서울서 한달음에 내려오셔서...
여기 저기 백방으로 알아본 결과...
묵호에 있는 삼육 중학교에서 입학시기가 한달이 지났지만..
입학을 허락해 주었습니다...그곳에서 얼마간 다니다가...
다시 태백으로 전학을 가기로 했습니다...


(당분간은 누룽지 탕^^)
15살에 저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그 바닷가 마을에서..
조그만 뒷채의 구석방에서 봄을 지내고 있었습니다..
고모가 생활비를 주시고 간 일주일은 잘 지냈지만..
돈이 떨어지면...쫄쫄 거리고 살아야 했습니다..
중1짜리 자취생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었을까요...?
많이 배고프고...외로왔던 기억 뿐입니다...
서너 달이 지난후에 황지 여중으로 전학을 갈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정상(?) 궤도에 들어 섰지만....여전히 내가 가져야 하는
컴플렉스는 또래들 보다 한살이 많다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때까지..정말 괴로운 일이였지요...사춘기 때라..^^
불우하고, 가난함이 다 드러나야 하니까요..


전학 가는날...핸드볼 코치의 눈에 띠어..
공부는 커녕 핸드볼부에 들어가게 되었고...
또 그렇게 1년을 어영부영 보내게 되었습니다...
발목이 접쳐 다리가 부어 오를 때까지...헥헥거리며...
운동장을 뛰었고...또 단체로 기합도 받고...맞기도 했습니다....ㅠ.ㅠ
다리가 부어 침을 맞으러 다니면서...
후보생활만 열심히 하던 운동을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중2 여름이 되어서야 나는 드디어 공부다운 공부를 하게 되었고...
중3 땐 반장까지도 하게 되었습니다...
반에서 1,2등을 하던 내게 담임 선생님은
좋은 대학을 가려면
강릉여고나 춘천여고로 갈 것을 권유했지만...
집안 형편이 영 아니였고...
그런걸 상담해 줄 부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생활비며, 학비며...꿈도 못 꿀 상황이였습니다..
고등학교를 갈 즈음엔 고모가 뒤로 물러 앉았습니다...
독일에서 일하시던 아버지가 생활비를 몇년째 안부쳐 주신것입니다....
할 수없이 엄마가 다시 내려오셔서 우리를 거두고,
탄광에 나가 일하셔야 했습니다..
그때 엄마는 11만원 정도를 받으셨는데...
내가 고등학생이였고...두 동생이 중학생이였고..
막내는 국민학생이였습니다...
아침마다 돈이 필요하지 않은 날이 없었고..
버스비도 필요했고..준비물도 사야하고...등등...
진짜 돈이 너무 많이 필요한 시기 였는데....
엄마의 벌이로는 역부족이였습니다...
밥을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족하게 여겨야 했습니다..
그땐 탄광에 다니면 연탄은 그냥 주니까
방 하나에 다글거리고 살았지만
따뜻하게는 지냈던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