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 상봉에서 찬바람이 불어오고 엄천강에 물안개가 끼기 시작할 무렵이면
엄천골짝 사람들은 너나없이 감을 깍아 걸기 시작한다.
그러면 옷을 벗은 감은 한달이나 한달 보름동안 얼었다가 녹기를 반복하면서
떫은 맛이 사라지고 달콤한 곶감으로 바뀌는데, 이곳 사람들은 곶감을 접는 방식이
좀 별다르다. 시중에 판매되는 곶감은 대부분 종이박스나 PE 투명케이스에 담아 유통되고 있는데
지리산 함양사람들은 곶감을 타래처럼 주렁주렁 끈에 매달아 거래하고 있다.
곶감철에 함양 재래시장에 가면 곶감을 한접씩(백개) 또는 반접씩 끈에 주렁주렁매달아 놓고
판매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는데 유네스코 문화유산까지는아니더라도
지역전통 먹거리 문화유산으로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풍경이다.
곶감 오십개 또는 백개를 끈에 예쁘게 주렁주렁 엮는거 쉽지 않다.
한 접 엮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숙련된 사람이 아니면 모양도 예쁘게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주렁주렁 매단 곶감은 개량시라고 부른다.
예전에는 꼬지곶감이라는 것도 있었고 춘시라는 것도 있었다.
이곳 엄천골에는 불과 십년 전만해도 곶감을 긴 싸리 꼬챙이에 산적 꿰듯이 꿰어 말린
꼬지곶감을 흔히 볼 수가 있었지만 이제는 거의 볼 수가 없는데
내가 사는 운서마을에서는 아직도 안골댁이 싸릿대로 감의 똥꾸멍을 찔러 꼬지 곶감을 만들고 있다.
꼬지곶감이 하도 신기해서 하나 먹어본 적이 있는데 싸릿대가 닿은 부분에는 시큼한 맛이 났다.
춘시는 곶감을 도나스처럼 둥글 납짝하게 만들어서 동전 쌓듯 포갠 뒤 열개씩 실로 묶어 준 것을 말한다.
개량시 꼬지곶감 춘시 등 재래식으로 곶감 만드는 방식은 이제 새로운 포장방식으로 대부분 바뀌었다.
곶감쟁이 십년차인 내가 만든 곶감을 4가지로 분류해보면
1.선물용 곶감- 그 해 만든 곶감 중 가장 크고 좋은 것을 선별하여 대바구니와 고급한지함에 담고 , 등급별로 명품선물상자, 난좌박스, 보급형 지함에 포장.
2.가정용 곶감- 지퍼백에 무게만 달아서 막 담는다.
3. 못난이 곶감- 때깔이 좋지 않은거 흠이 있는 거 망한 것들은 따로 모아서 똥값에 파는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기로하고 판다.
4. 떫은 곶감- 지금은 숙성기술이 좋아져서 떫은 곶감이 발생하지 않지만, 일부러 떫은 곶감을 몇 상자 만들어 엄천강을 막아서 지리산댐을 만들겠다는 훌륭한 정치인에게 명절 선물로 보내고 있다.
(떫은 곶감 묵다 똥꾸멍이 막혀보면 흐르는 강물을 막아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높으신 분이 얻으시길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