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더워진 탓인지 며칠 전부터 콩나물 냉채가 먹고 싶었습니다. 저희 집에선 콩나물 잡채라고 부르던 음식입니다. 주로 잔치 상에 올라, 맵고 시원하니 기름진 입맛을 개운하게 해주던 음식이었습니다.

일요일 콩나물 냉채를 해 볼 작정이었습니다. ‘처음해보는 것이기도 하고 혹 기억 못하는 레시피가 있을까’ 싶어 할머님께 전화 드렸습니다.
“콩나물 잡채(냉채) 어떻게 해요?”
할머니 “왜, 먹고 싶어서? 시원하니 냉장고 너 놓고 먹으면 여름에 좋다.”
“근데 들어가는 게 많아서 어려운데. 내가 아프지만 않으면 가서 해주면 좋은데…….”
“어디 아프세요?”
할머니 “통 뭘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 넘기기도 하고, 일주일 됐나…….”
“그거 들어가는 게 많아서……. 적어라”
“그래도 뭘 좀 드셔야죠. 그냥 말씀하세요.”
할머니 “콩나물은 꼬리, 머리 다듬고 살짝 삶아, 그 물 버리지 말고 아까우니까 나중에 양념 만들 때 써.” “그리고 배도 들어가고 다시마, 당근, 고사리, 오이도 있으면 넣고……또 뭐가 있냐!”
“양념은?”
할머니 “콩나물 삶은 물에 겨자 풀고 식초, 설탕도 들어가고 마늘하고 생강도 좀 넣고.”
“간은 소금하고 간장으로 해. 간장으로 해도 되는데 요즘은 조선간장이 아니라 꺼멓게 되니까 조그만 넣고 소금으로 해.” “내가 후딱 가서 해주면 좋은데…….”
“내가 잘하잖아. 할머니! 해봐서 맛있으면 좀 가져갈게요.”
할머니 “그래 간만 맞으면 먹는 것이다. 워낙 양념이 많이 들어가서.”
토요일 저녁 산책길 할머니와 통화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열일곱에 시집와 열아홉에 어머니를 낳으셨다는 외할머니입니다. 아흔을 바라보시죠.
할머니를 생각하면 항상 짠하고 아립니다. 일찍 홀로 되셔 유복자인 막내 이모까지 육남매를 키우셨으나 그중 셋을 먼저 보내셨습니다.
집에 돌아와 저녁 설거지 하는데 영~ 마음이 불편합니다. 급히 마트로 갔습니다.
콩나물이 짧은 것 밖에 없습니다. ‘콩나물 냉채는 긴 게 좋은데…….그러고 보니 긴 콩나물 구경한지 오래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 350g 든 콩나물 두 봉지 샀습니다. “아무래도 내일 아침 할머님께 다녀와야겠다.” H씨에게 말하고 둘이 콩나물 다듬었습니다. 주말 연속극 ‘인생은 아름다워’보며 콩나물 다듬는데 그날따라 대사들이 콕콕 찌르더군요.

어머니는 손이 큰 편이셨습니다. 항상 넉넉히 하고 나누길 즐기셨죠. 콩나물 냉채도 한번 하면 서너 시루씩 했던 것 같습니다. 시루에서 콩나물 한 움큼 뽑아들고 다른 한 손으로 머리 따고 꼬리 자르는 게 어찌나 귀찮고 꾀가 나던지……. 빗으로 콩나물 대가리를 긁어내기도 했습니다. 콩나물 껍질과 머리, 꼬리가 온 몸에 붙어 있고 사방을 어지르며 한 나절을 실갱이 해야 콩나물 다듬기가 끝났습니다. 여름엔 콩 비린내가 진동하고 겨울엔 손끝이 어는 참 고된 일로 기억합니다.

일요일 아침은 H씨가 준비한 빵으로 때우고 ‘콩나물 냉채’ 만들었습니다. 고사리 볶고 콩나물 데쳐낸 후, 그 물에 겨자 풀어 할머니 말씀대로 양념 만들었습니다.
“겨자를 얼마나 넣었기에 이렇게 노랗냐?” 하시며 손으로 집어 드시고 겨자 소스 훌훌 마시더니 “시원하니 맛이 난다. 제법이다.” 콩나물 냉채와 고사리 볶음 반찬통에 담아 할머니 찾아 뵀더니 맛보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운이 없으시니 자극적인 음식이 그나마 입맛을 돋우나 봅니다.

“니 엄마가 보고 싶다. 할 말도 많고…….”
“요즘은 날마다 꿈에 본다. 삼촌은 와서 이야기도 하고 내 옆에서 잠도 자고 하는데, 니 엄마는 암말 안한다.”
“ ‘죽는 것이 뭐신지도 모르고 나는 안죽는갑다.’ 했는데 이제 죽을라나 보다. 좋아하는 고기도 싫다.”
“낼 대전 내려가지? 얼른 가라! 쉬어야지.”
“엄마 없으니 내가 해줘야 하는데, 머웃대 나오면 탕도 끓여주고…….” 하시는데 눈물이 왈칵했습니다. 새우 넣은 머위탕 내가 좋아한다는 걸 기억하시는 모양입니다.
다음 일요일에는 머위탕 끓여야겠습니다. 들깨로 죽도 좀 쒀야겠습니다.
☞ 콩나물 냉채
-재료 : 콩나물, 고사리, 당근, 오이, 배, 무, 다시마, 잣 등 그외 겨자, 식초, 설탕, 마늘, 생강
-만드는 법
1. 고사리 삶아 불립니다. 양념해 볶아 주면 더 좋습니다.
2. 가능한 긴 콩나물을 사는 게 좋습니다. 콩나물 머리와 꼬리를 다듬으면 깨끗하지만 이것도 중노동이니 손님상 아니면 그냥 삶으셔도 좋습니다.
3. 할머니 말씀 안하신 것 중 제가 기억하는 게 있었습니다. 계란 지단입니다. 흰자와 노른자 분리해 지단 부쳤습니다.
4. 당근, 다시마, 배, 무, 오이 따위는 채를 썰어도 좋고 쿠키 틀 같은 걸로 모양내 잘라도 좋습니다. 양은 좋아하시는 걸 많이 넣으시면 되고 기본 콩나물 700g에 각 재료 가볍게 한 주먹 정도로 준비했습니다. 부재료 가짓수가 많으면 그에 맞게 각 재료의 양을 줄여야겠죠. 저는 고사리와 당근을 좀 더 넣었습니다.
5. 겨자소스는 콩나물 삶은 물이든 다시마 우린 물이든 가능한 맑은 육수가 좋습니다. 저는 콩나물 냉채의 양념 국물을 떠먹기도 하는 스탈이라 두 컵 정도의 물에 겨자 20g 정도 풀었고 설탕대신 배 농축액 5 큰 술, 생강가루 반 술, 다진 마늘 반 술 정도 넣었습니다. 식초도 3 큰 술넣었습니다. 간장 반 술 정도에 소금은 간 보며 넣었습니다. 제 계량은 밥숟가락입니다. 생마늘이나 가루가 없어 다진 마늘 썼습니다만 생강과 마늘은 가능하면 편썰기, 채썰기로 넣거나 가루를 쓰는 게 소스가 덜 지저분해집니다.
6. 겨자소스에 양념 넣고 젓다 보면 눈물 좀 납니다. 겨자 매운 내에 혹 눈물이 안나면 겨자 더 넣어야 합니다. 그렇게 잘 저은 겨자 소스에 콩나물과 다른 부재료들 넣고 잘 섞어 주시면 콩나물 냉채 완성입니다.
7. 바로 차겁게 냉장보관하시고 조금씩 덜어 드시면 반찬으로도 손색없습니다. 더위 먹고 들어와 이거 한 젓가락 꺼내 먹으면 바로 입맛 돕니다.
8. 겨자의 매운 맛에 소스 상태로 간 맞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소스 만들 땐 밑간만 조금 하신다 생각하시고 재료들 다 섞은 후 소금으로 간 맞추는 게 좋습니다.
☞ 글을 올리려 보니 이벤트가 있더군요 냉(冷)요리... 순전히 경품에 눈이 멀어 손가락 표시 밑의 레시피를 덧붙혔습니다. 본래 계량 안하고 그냥 알아서 조금, 적당히 넣는 편인데, 주의 사항에 있기에 기억을 더듬어 머리속에서 계량한 겁니다. 혹여 따라하시는 분 계시다면 경품에 먼 제 눈을 탓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