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지도 않은 세 식구인데도 뭐가 그리 바쁜지 올 봄엔 나들이 한번 못 갔다.
본래 1박 2일 가벼운 여행계획을 잡았으나,
질풍노도의 시기를 건너고 있는 따님 갑자기 친구들 만나러 대전가시겠단다.
덕분에 3일 연휴 계획은 배배 꼬이고 말았다.
월 초 전화가 왔었다. “연휴에 뭐하냐?”며 별일 없으면 산에 가자고…….
순간, 지리산을 떠올리며 심장이 마구 뛰었으나
모진 맘먹고 “가볍게 가까운 관악산이나 청계산 갔다 소주나 한잔 하자.”고 했다.
물론 가족 나들이 계획이 있음을 이실직고 하고 가능하면 일요일쯤 가자고 했다.
그렇게 내 사정이 반영돼, 몇몇 친구들과 일요일 청계산을 가기로 했는데
따님이 친구들과 1박 2일 노시겠단다. ‘이구!’ 가슴을 칠 일이다.
“괜히 바꿨어!”
“이럴 줄 알았으면 지리산이나 갈걸.”
“주말에도 학원가는 거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말걸, 괜히 걱정했어!”
정말 나도 어깨 들썩이며 이렇게 징징대고 싶었지만, ‘어쩌겠는가? 잘 갔다 오라.’ 할 밖에.
‘그래! ‘감옥 같아 답답하다던 그 기숙사 벗어나 학원도 아니 가고 집에도 오지 않고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잘못은 아니지.’ ‘밤새수다 떨며, 군것질로 배 채우는 걸 언제 또 해보겠니.’
‘그 답답한 학교, 입시경쟁에도 여전히 푸른 니들이 고맙고 니들이 부처다’
‘부처님 오신 날, 니들이 쉬어야지 누가 쉬겠니.’ 이렇게 맘 고쳐먹고 “재밌게 놀다 오라.” 했다.
아이와 나들이 계획이 무산된 연휴 첫날, 딱히 할 일도 없고 텃밭 일이나 할 밖에.
꽃대를 올리기 시작한 시금치 뽑고 고구마 밭 만들었다. 시금치와 같이 뿌려둔 상추까지 소출이 너무 많다.
이집 저집 나눠주고 먹어 치우는 것도 일이다.
시금치 다듬고 삶아 갈무리 까지 마치니 늦은 점심이다.

예전엔 뭘 다듬는다거나 명절 때 쭈그리고 앉아 송편 만들고 전을 부치는 것 같은 일을 못했었다.
허리도 아프고 눈도 튀어 나올 것 같고 괜히 손목도 아프고 좀이 쑤셔 안절부절 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김치 거리를 다듬거나 고구마줄기 껍질 벗기기 같은 일이 그럭저럭 되기 시작했다.
특별히 참을성이 늘은 것 같진 않은데 ‘나이 먹을수록 배고픈 것 빼곤 세상사 다 견딜 만하다.’더니 신통하게 그리되더라.
아침 먹고 나간 텃밭일이 끝나니 허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다.
급히 시금치 한주먹 넣고 된장찌갠지 시금치 지짐인 모를 것 하나 끓였다.
찬밥에 상추 여린 잎 쭉쭉 찢어 넣고 커다란 양푼에 고추장으로 비볐다.
지난 주말 담은 열무 물김치와 양푼 째 놓고 부부 마주앉아 그렇게 늦은 점심 먹었다.
‘내일은 고구마 심으면 되겠다.’ 맘먹고 있는데
“일요일 비가 꽤 온다는데 등산할 수 있을지 걱정이네~” 라는 친구 녀석 문자가 왔다.
행여 가족끼리 있는데 방해 될까 싶어서 문자 보낸 듯하다. 순간 또 심사가 곱지 않다.
차마 딸내미 혼자 놀러가 집에 있다는 말은 못하고
“비 맞고 좀 걷는 것도 좋지, 힘들면 밑에서 막걸리나 먹자.”고 답장하고 말았다.

열무물김치, 돈나물은 따로 씻어 두고 이렇게 뚝배기에 꺼내 먹을때마다 한주먹씩 넣는다.
잘 익은 김치신맛과 시원함과는 다른 상큼함을 돈나물이 보태서 좋다.
고구마 심고 비오면 고구마 뿌리는 잘 내리겠다.
내일은 지난주 솎고 남은 열무 마저 뽑아 김치도 담고 고구마도 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