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아내 몰라요
아내? 남편 알아요.
사소한 것 까지 너무도 다른 부부생활을 심층적으로 파헤쳐보는 남녀 탐구생활 부부편,
어마어마한 부담을 안고 그 두번째 얘기를 시작 해요.
시어터진 김치를 볶아요.
냉장고를 뒤져요.
언제 해 놓았는지 가물가물한 멸치볶음을 저 멀리 깊숙한곳에서 꺼내요.
냉장고를 뒤져요.
계란 두 알이 '나좀 꺼내서 뭐라도 해 이 게을러터진 마귀할멈아' 하고 있어요.
계란프라이를 해요.
냉장고를 뒤져요.
그 언젠가 반 잘라 구워먹고 남은 깡통에 들어있고 돼지고기가 들어있다고는 하나
실제로는 소금이 절반은 들어간 것 같은 햄을 꺼내요.
멋진 그릴모양을 내고 싶지만 우리집엔 그릴이 없어요.
"저 인간이 돈만 더 벌어왔어도 르*** 그릴팬은 하나 아무렇지 않게 샀을꺼아냐!"
일터에서 일 잘하고 있는 남편의 욕을 가열차게 해 보아요.
그리곤 묵칼을 꺼내 햄을 썰어 구워요. 모르는사람이 보면 그릴자국이라고 하겠어요.
괜히 없는데, 있는 티 내고 나니 남편이 더 얄미워져요.
크게 티는 못내겠고, 국물만 짜먹는 남편 국그릇엔 건더기만 잔뜩주고
국물요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멸치가 잘 우러나 있고, 신김치와의 조화가 훌륭하여 다시 조선시대로 돌아가 장금이의 뺨을 후려치고 올 수 있다는
김칫국의 국물은 내 그릇에 다 부어요.
열심히 일 잘하고 온 남편에게 괜한 심술을 부린 것 같아 미안해진 아내는
남편이 좋아하는 과일을 열심히 깎아 후식을 준비해요.
하지만 배가 찬 남편이 그 좋아하는 사과를 두조각 밖에 먹지 못해요.
역시 그럴 줄 알고 밥을 많이 줬어요.
배가 부르지만, 아깝다는 거짓말을 하며 아내는 과일을 다 먹어치워요.
솜털이 뽀송뽀송해, 한겨울에 건조한 거실바닥의 한기로부터 내 소중한 발을 보호 해 줄 수면양말을 사요.
그리곤, 잘못 배송되어 왔지만 내가 돈을 낸 적 없어 공짜로 얻게 된 수면바지 하나를 남편에게 줘요.
역시 나 생각 해 주는 건 울 마누라 밖에 없다며 행복해서 죽어버릴 것 같은 표정을 짓는 남편을 보니
조금 미안해져요. 하지만, 잘못 온 물건이라고 말을 해 주지는 않아요.
아무리 봐도 여자 옷 같지만, 저거 하나 입고 따뜻해 죽겠대요. 이럴 땐 조금 귀여운 것 도 같고.
담번엔 제대로 된 것 하나 사주겠다고 마음먹어요.
견과류 잔뜩 넣은 컵케이크를 만들어요.
겨울이 되니, 동면을 할 것도 아닌데 자꾸만 달고 기름진게 땡겨요.
혹시 뱃속에! 라며 아무리 날짜를 세고 머리를 굴려도 있을리 없어요.
이 인간은 꼭 벼르고 벼르는 날짜엔 귀신같이 회식을 하고 술이 떡이 되서 들어와요.
괜한 울화가 치밀어요.
스트레스를 받은 아내는, 뱃살이 조금 나오는 것도 귀엽다는 몹쓸 생각을 해요.
이미 이성따위는 시베리아로 보내버렸어요.
한 입 먹으면 한 판을 해치워야 하며 쵸컬릿과 버터가 듬뿍 들어간 찐득하고 달달한 그것을 입에 밀어넣어요.
내 때랭한 기분이, 예물반지 처음 껴 보던 날 처럼 황홀해졌어요.
기분이 좋아진 아내는, 남편을 위해 안해도 될 수고를 마다하지 않아요.
팔뚝이 떨어져나가라 수제비를 반죽해서 하루 숙성시켜요.
그리곤 김치수제비를 끓여서 남편에게 점수를 따요.
이 수제비가 미쳤나봐요. 입에서 나 잡아봐라 놀이를 하고 있어요.
역시, 공을 들인 음식은 배신의 싸다구를 날리지 않는 법이예요.
내친김에 남편이 좋아하는 호두사블레도 구워줘요.
뜨거운 김이 채 식기도 전에 쿠키를 계속 집어먹는 남편을 보니
그래도 저양반이 건강해야 일도 더 열심히 할 수 있고, 그러면 월급도 더 많이 벌어올거고
그래야 내 소중한피부와 단아한 품위유지를 위한 모든 것들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0.5초만에 뇌리를 스쳐요.
하지만, 밀가루나 쿠키같은것만 먹을 순 없어요.
콩나물엔 들기름을, 시금치엔 참기름을 넣어 버무려요.
콩나물과 시금치는 아주 살짝 데쳐야 몸에 좋은 성분이 빠져 나가지 않아요.
균형잡힌 식사를 준비하면서
아내는, 살림의 여왕인 마샤 아줌마가 된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요.
갑자기 추운 어느날, 아내는 짬뽕탕을 끓여요.
남편이 수저로 국그릇을 저으며 "해물들이 샤워하고 급히 나갔나" 라고 해요.
한달 30만원으로 식비를 맞추다보면, 내용물이 부실 해 질 때가 있어요.
남편여러분, 제발 밥투정은 시댁에 두고 오세요.
뻔한 금액으로 살림을 하려면
하루에 한웅큼씩 머리가 빠져나가고 기미는 늘어만 가며 주름살은 살을 파고 들어요.
짬뽕탕의 건더기가 내심 맘에 걸렸던 아내는, 남편이 좋아하는 메뉴로 담날 저녁을 차려줘요.
앞다릿살은 4천원어치만 사면 목구멍으로 돼지가 기어나올 만큼 먹일 수 있어요.
게다가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남편을 보면서
그 덩치가 꽤나 귀엽기도 하고
한편으론, 입에 맞는것 하나만 있어도 이렇게 좋아하는데 잘 해 주지 않는 나를 반성하게 돼요.
남편이 늦게 들어온대요.
이런 날은 여유시간이 참 행복하고 소중해요.
괜히 매트에 배 깔고 커피 마시며 책을 읽어요.
내 그 화려했던 처녀시절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요.
일에 치일 땐 한가한 오후에 차마시며 책 보는게 소원이었는데
막상 이렇게 되고나니
대머리 이부장도 그립고, 못된 김팀장도 생각나요.
하지만, 우울해하진 않아요. 아내에겐 능률쑥쑥 언제나 힘이 되어주는 남편이 있으니까요.
아내여러분, 지금의 상황이 맘에 들지 않을때가 있어요.
하지만, 언제나 우리에게 힘을 주는 우리의 사랑스런 가족들을 떠올려보세요.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늘 밥을 짓고 일을 하는 우리 아내들이야말로
세계의 평화를 위해 가장 큰 공을 세우고 있는 위대한 사람들임에 틀림 없어요.
라고 생각하며, 자기자신을 위해 크림이 안들어갔지만, 크림 넣은것보다 맛있고 칼로리는 낮은 리조또를 만들어요.
신랑에게 이걸 만들어줬다간
"코 같이 느글느글 하고 뭔가 미끌미끌해서 목구멍으로 넘기기가 미치도록 어려운"
크림소스 라는 얘기를 들을 게 뻔해요.
이 맛있는 걸 못먹다니, 남편 입은 똥꾸멍이 틀림없어요.
이 양반 퇴근시간이 다섯시간이나 늦어지고 있어요.
어디서 꽐라가 되게 퍼 마시고 있는게 분명해요.
오늘은 멍멍이가 되어 잠이 들더라도 내일은 숙취없이 깨어날 수 있도록
귤을 얼려 슬러시를 만들어둬요.
막상 남편이 늦으니 걱정도 되고, 심심해졌어요.
아내는, 평소엔 귀찮아서 하지 않지만 죽을만큼 심심해야 하게 된다는 모양쿠키를 만들어요.
시베리아 벌판에서 신발장을 파는 십장생 키는 십센치!!!!!!!!!!!!!를 연발하며 분노의 베이킹을 해요.
비싸서 손이 떨리지만, 남편이 착한 짓 하면 조금씩 주려고 산 수입 포도를 꺼내
입속으로 사정없이 밀어넣어요.
정신 놓고 먹고있는데, 오 마이 갓. 남편이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어요.
이런 우라질레이션. 남은 포도를 입속으로 마저 밀어넣고 그냥 삼켜 증거를 인멸해요.
이걸 보였다간 남편 몰래 맛있는거 혼자 먹는 치사한 아내가 될게 분명해요.
두 눈이 풀리고 얼굴이 발그레 해 져선 박스를 하나 내밀어요.
마누라를 위해 준비했대요.
올레!!!!!! 평소엔 비싸서 쳐다만 보다가, 친정 갈때만 두개 사가지고 간다는 석류예요.
앞으론 종종 늦어도 된다며 씻으러 들어가는 남편 등짝에 사랑의 하트를 숑숑 날려줘요.
남편이 잠 들고, 각종 견과류를 넣은 그래놀라 바를 만들어요.
각종 무기질과 오메가쓰리가 넘쳐나 피부에도 좋고 노화예방에도 좋고 이래저래 좋다는 견과류를 잔뜩 넣었어요.
난 역시 천재라며 하나 들고 신나게 뜯어먹어요.
남편이 출근할 때, 차에서 먹으라며 작은 통에 넣어 차와 함께 준비를 해 줘요.
술 먹고 늦게 들어와도 좋으니, 건강하게만 잘 살아줬음 좋겠어요.
남편은 카레라이스를 안좋아해요.
이 맛있는 걸 왜 싫어하는지 모르겠어요. 입이 똥구멍이 맞나봐요.
제대로 된 카레 맛을 보여주겠다며, 내가 만들어 준 카레를 두 그릇이나 비웠어요.
이렇게 맛있는 카레는 처음 먹어본다며 정신을 못차려요.
일본식 카레를 만들어 준 것 뿐인데, 이게 입에 맞았나봐요.
여기저기 여행 다니며 맛있는 것을 발견하고 먹어 본 아내에 비해
일만 하느라 맛집이라곤 "집"밖에 모르는 남편이 새삼 안쓰러워요.
또다시 정성이 뻗친 아내는 롤케이크에 도전을 해요.
이거 만들다 성질 다 버릴 뻔 했어요. 팔뚝도 떨어질 뻔 했어요.
키친에이드가 그렇게 좋다던데, 이것 저것 재고 따져보니 살 여력이 안되는 것 같아요.
아내는 괜히 울컥해요.
잘 나가던 처녀시절, 몇 십만원 짜리 옷도 아무렇지 않게 척척 사던 내가
이런 주방용품 하나에 고민하고 벌벌 떨다니 너무나 기가 막히고 갑자기 우울해져요.
하지만 이내 마음을 가다듬어요.
아직 젊으니까요. 두고두고 살면서 좋은 것들 다 살 수 있는 날이 올거라 오늘도 믿어요.
이렇게 과일을 푸짐하게 깎아놓으면 부자가 된 것 같아요.
그래봤자 감 한개, 멜론 1/4조각, 키위 두개가 전부예요.
하지만, 이런 작은 행복을 알게 해 준 결혼생활에 또다시 새삼 고마움을 느껴요.
이 여자, 아주 단순하고 감정 기복이 심해요. 갈대의 변덕쯤은 가볍게 지붕뚫고 하이킥을 날릴 수 있어요.
한달 전에 친정엄마가 싸 주신 가래떡을 냉동실에서 꺼내요.
별거 아닌데, 친정에서 준 거라면 뭐든 너무 소중해서 아끼지 않을 수 없어요.
아까워하며 오븐에 구워, 떨어진 조각까지 알뜰히 주워 먹어요.
바로 집 앞만 나가면 살 수 있는 가래떡인데, 왠지 뭔가 다른 이유를 알 수가 없어요.
냉동새우를 사 온 어느날, 냉동새우에 된장찌개로 신랑의 입을 귀까지 찢어지게 해 줘요.
남자들은 단순해요. 입에 맞는 음식 하나만 있으면 그렇게 행복해 할 수 없어요.
그 단순한 남편이, "내일도 또 새우튀김 해줘" 라고 했어요.
단순은 한데 눈치는 없나봐요. 이걸 또 하려면 기름설거지며, 찌개며 신경 쓸 게 한 두개가 아니예요.
새우튀김을 만들며, '시베리아 에서 신발장을 파는 십장생 키는 십센치'를 열번은 불러요.
어젠 된장찌개였으니 이번엔 김치찌개를 끓여요.
또다시 남편이 행복해하며 밥을 두 그릇을 비우자
이 단순한 여자는 또다시 행복감에 젖어요.
설거지를 하며 또다시 시베리아를 찾아요.
결혼 안 한 친구들에게, 먼저 결혼한 여자의 이야기는 다 그녀들의 추후 행동에 큰 지장을 줘요.
친구들을 만나러 가기에 앞서, 친구들에게 줄 "올 해가 가기 전 꼭 찾길 바래" 씨리즈 쿠키를 구워요.
제발 못된놈 말고 제대로 된 놈 만났으면 좋겠는 친구에겐 "true love"
이제야 질풍노도의 시기가 와서 정체성을 못 찾고 방황하는 친구에겐 "yourself"
한번도 남자를 사귀어 본 적 없으나 눈은 높은 친구에겐 "good guy"
곧 결혼 할, 그래서 엄마 속을 시커멓게 태우고 있을 친구에겐 'family"
모두 그녀들이 꼭 찾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보아요.
친구들 만나 꽐라가 되도록 퍼 마신 여자는, 다음날 지옥과같은 숙취를 맛봐요.
변기와 심도 깊은 대화를 여러번 나누고, 내가 돌지 않으면 천장이 도는 울렁증으로 밤을 새운 여자는
밥을 할 기력이 남아있지 않아요.
남편에겐 저렇게 대충 먹이고, 다시 뻗어요.
요 며칠 갑자기 추워졌어요.
역시 추운날엔 뜨끈하고 칼칼한게 최고예요.
아내는, 바지락칼국수를 끓여요.
재료비가 많이 들지 않으면서, 노력은 최대한 적게 하고, 반찬은 김치 하나만 꺼내놓아도 폼 나며, 설거지는 적게나오는
이런 요리를 하는 날이 제일 즐거워요.
며칠전의 지옥같은 숙취가 잊혀진 날,
먼저 잠든 신랑 몰래 술을 퍼요.
오징어에 치즈안주 꺼내서 한잔을 마셔요.
아빠가 살아생전 좋아하시던 과자예요.
여자는 괜히 울컥해지며, 아빠생각이 간절해져요.
이렇게 갑자기 가실 줄 알았으면, 진작에 잘할껄 하고 후회하지만
이미 돌아가신지 4년도 지났어요.
가슴이 단단해질 때 도 되었는데, 아직도 아빠 생각만 하면 어제 일 같고.
여자는 먹먹한 가슴을 부여잡고 혼자 눈물을 삼켜요.
그래서인지, 왜인지 모르겠지만 한잔을 더 마셔요.
한잔을 더 마셔요.
한잔을 더 마셔요.
정신을 잃어요. 일어나보니 설거지도 다 되어있고.
난 술에 취하면 꼭 설거지며 주방 청소를 완벽히 해 놓고 잠이 들어요.
왜 이런 기이한 술버릇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다음날 아침이 되면 이렇게 좋을 수 가 없어요.
힘든 청소과정은 하나도 기억안나고 깨끗한 주방을 볼 수 있기 때문이예요.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어요.
우리 팔이쿡 회원님들도, 따뜻한 차 한잔 하시면서
건강하고 감기없는 겨울을 보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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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리플들과 조횟수를 보고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몰라요^-^
일평균 2천명을 안 넘던 제 블로그에도
4천명 넘게 와 주시고!
팔이쿡의 힘이 정말 대단하구나 느꼈어요.
친동생이 저더러 얼른 두번째 이야기 올려야겠다면서
"부담되겠다" 하는데, 윽..부담이 좀 되긴 하더라구요.
원래도 사람들 웃기는 걸 좋아하고, 또 오바하기도 하는 성격이긴 하지만
우와, 이렇게나 많은 분들께서 좋아 해 주실 줄 몰랐답니당^^
아무 생각없이 올린 지난 번 이야기보다 재미도 없고, 좀 그런 것 같지만..
예쁘게 봐 주시어요^^
재미때문에 조금씩 오바 한 부분들이 많은데,
살짝~ 눈 감아 주시면 더 감사하겠습니덩.히히-
그럼, 행복하고 활기찬 한 주 되쎄욤~
모든 레시피는, http://blog.naver.com/prettysun007 에 있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