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kg 샀어요. 원래 소고기는 한우만 고집하는데, 후기가 워낙 좋아서 눈 딱 감고 샀는데, 역시 82cook
아줌마들의 눈은 예리하네요. ^^ 도가니는 처음 사본 거라 비교는 안되지만, 일단 크기가 일정하구요,
단단하고, 누린내가 안나요. 국물 뽀얗게잘 우러나구요. 그럼 좋은 거 맞죠? ^^

마침 툐요일 돌잔치 가기 전에 배달 와서 찬물에 담가 핏물을 빼주고 외출.
오늘은 제 동생 이야기를 해볼게요. 난산 끝에 낳은 동생이 태어나고 내내 감기를 달고 살아 이 병원
저 병원 기웃기웃 하다가 4살 때에야 선천성 심장 판막증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다섯 살 때 수술 했죠.
어렸을 때 동생에 대한 기억은 너무 마르고 하얗고, 불면 날아갈까 소중하고 여리다는 것 뿐...
하지만, 어린 녀석이 참을성도 많고, 잘 견뎌주었어요.
저희는 아빠가 육대를 다니던 때라 진해에 있고, 엄마와 동생은 서울대학병언에서 보냈답니다.
그 어린 나이에 심장 수술이라니.. 그 많은 검사들과 주사 투여와... 아마 수술을 앞두고 엄마 마음은
천갈래 만갈래 갈라졌을 거예요. 그런데 수술이...

10시쯤 집에 돌아와 보니 이렇게 핏물이 빠져 나와있네요. 한 6시간 빼준 듯. 핏물을 버리고 흐르는
물에 바닥 바닥 씻어 속에서 아직 덜 빠져 나온 핏물까지 깨끗이 닦아 줬어요.
그렇게 어렵게 한 수술이 실패로 돌아갔답니다. 등 쪽으로 절개를 했는데, 구멍 세개 중 한개 밖에
못 막았다더라구요. 세상에 저 어린 것을 어떻게 재수술을 하나요. 재수술을 하면 다음 수술은 다시
할 수 없고, 워낙 몸이 약해 수술시 사망할 확률이 너무 높았대요.
수술하지 않으면 내내 부모님 등에 업혀 살겠지만 그래도 스무살 까지는 살 수 있다고 했대요.

그리고, 팔팔 끓는 물에 10분 정도 튀기 듯 삶아 불순물을 빼줘요. 이 물은 버리고, 또 도가니들을
깨끗이 씻은 후, 들통도 깨끗이 씻어 기름기를 제거해 줍니다.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었던 거죠. 이미 첫 수술비로 그동안 알뜰 살뜰 모아둔 돈,
아빠가 월남에서 벌어온 아빠 생명값까지 다 쏟아 부은 상황인데... 집 한채 값인 수술비를 또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았구요.

그리고, 센불에서 팔팔 끓이기.
일단 이 상태로 도가니가 물에 푹 잠길 정도의 물을 붓고 2시간 정도 센불에서 끓이는데, 줄어드는
물은 옆에 물을 끓여 보충해 줘요. 차가운 물을 부으면 온도가 내려 갈 것 같아서 센불의 온도를
유지해 주기 위해 팔팔 끓는 물로 보충해구요. 뼈가 들썩 들썩 할 정도로 센 불에서 끓여야 국물이
뽀얗게 우러 나와요. 82cook에서 배운 거예요. ^^
엄마는 젊은 시절 동생 수술비 마련을 위해, 삯바느질에, 구슬꿰기, 인형 눈붙이기 등등 안해 본
게 없었답니다. 솜씨와 눈썰미가 좋으시니 양장점도 하셨는데, 동생 수술비 다 낼때까지 하루에
한끼씩만 드셨대요. 정말 돈 아끼느라고 밥 한공기까지 아끼셨던 거죠...

물이 끓는 동안 사태의 핏물을 빼주고, 도가니 5 kg 기준, 양파 두개, 마늘 10개, 무 큰 거 하나,
대파 큰 거 한뿌리 준비.
그렇게 고생하며 살았는데, 전 어렸을 때 가난했던 기억이 없어요. 옷을 엄마가 항상 만들어
주셔서 아파트에서 머리결 좋고, 옷 잘 입는 애로 소문 났을 정도거든요. 어렸을 땐 그게 참
싫었어요. 지나갈 때마다 아줌마들이 붙들고, 물어보는 거요. 머리도 항상 감긴 후 참빗으로
빗어 주셨어요.


위가 여덟살, 밑이 여섯살이네요. 어렸을 때 사진이니 알아보는 사람 없겠죠? ^^;;
저 유치원 복도 빨간 투피스도 엄마 솜씨에요. 부츠는 구두방에서 엄마 구두를 리폼한 거구요.

2시간 쯤 지나면 사태와 야채들을 넣어줘요. 너무 일찍 넣으면 야채가 흐물흐물 해 져 국물이
지저분해지니까 2시간 쯤 지나서 넣고 센불로 계속 끓여 줘요. 저렇게 노랗게 뜨는 기름은 계속
계속 국자로 걷어 주고.
동생 수술이 실패한 후 엄마와 아빠가 다투는 일이 잦았어요. 제 동생 때문에 싸우는 거 혹
동생이 들을까봐 이불 뒤집어 쓰고 양쪽 귀 꼭 막아주었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1시간을 그렇게 더 끓여준 후 하루밤 차가운 곳에서 식혀주면 이렇게 누런 기름이 동동 뜨죠.
동생의 심장병을 알고 난 후 단 하루도 새벽 기도를 거르지 않았던 엄마... 어느 날, 기도 중에
환상을 보았대요. 제 동생이 예수님 옆에 서 있는... 그래서, 결단을 내렸대요.
태어나서 엄마 품에서 아프기만 하고, 아무런 죄가 없는 이 아이는 죽어도 천국에 갈 게 틀림
없으니 믿고 수술하자. 스무살이 되도록 아프기만 하느니 천국에서, 예수님 곁에서 편하게
쉬는 게 낫지 않느냐. 그래서 아빠를 몇달 동안 설득 했고, 제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에
재수술을 받기로 했죠.

기름은 국자로 잘 걷어서 버리고, 국물은 따로 모아둔 후 도가니는 깨끗이 씻어 줘요.
그런데,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 2학년 언니 중에 제 동생이랑 똑같은 병을 갖은 사람이 있었어요.
너무 가난해 수술비 마련을 못해 모금 운동도 했죠. 우리 엄마,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다니셨답니다.
정말 딸 처럼 병원도 자주 찾고 보살폈죠.
이 언니 수술하는 날... 전교생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보냈어요. 교내 방송으로 방송까지 했죠.
'방금 수술 성공하고 중환자실로 옮겼다'는... 전교생이 환호성을 질렀어요...

도가니 살 발라내는 게 젤루 힘들었어요. 사골은 쏙쏙 잘 빠지는데... 히유우... 발라낸 도가니와
삶은 사태. 제가 다 젤라틴 덩어리라죠. 우훗.
그런데... 몇시간이 지난 후 분위기가 이상하더군요. 선생님들이 바빠지고...
중환자실에서 사망했답니다... 그 언니 죽었다는 소식 듣고 정말 어찌나 무섭던지. 내 동생도
저렇게 될까봐 엄마 한테 수술 시키지 말라고 매달려 엉엉 울었어요.
그런데, 엄마의 결심은 확고하더군요. 엄마는 더 무서웠을 텐데, 한번 결심하시더니 더이상
흔들리지 않으셨어요.

도가니를 발라낸 뼈는 깨끗이 씻어 또 국물 내기.
당시는 아빠 근무지가 원주라 저희는 원주, 엄마와 동생은 서울대학병원. 또 긴 긴 이별의
시간이 시작되었죠. 당시에는 시외 전화를 하려면 전화국에 갔어야 하거든요. 이틀에 한번씩
전화해서 엄마 목소리 듣고, 동생 목소리 듣는 게 낙이었어요.
가래가 끓어 간신히 '누..나..'하는 동생 목소리 듣고 또 얼마나 울었는지. 목소리도 안나오면서
기어이 누나 목소리 듣겠다고 전화기 붙들고 있는 동생 생각에 너무 짠해져서요.
제가 동생 때문에 철이 빨리 났나봐요. 초등학교 1,2학년이었는데... <환상의 짝꿍> 보면 아직
귀여운 아가들 같은데 말이죠. ^^

국물 내는 동안 사태 썰고 도가니는 한번 먹을 분량으로 나눠 지퍼백에 넣어 냉동 보관.
수술이 다가올수록 어찌나 초조하던지... 글쎄, 그때 갓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제 동생이요 수술실
들어가기 전에 엄마 붙들고 뭐라고 했대는지 아세요?
"엄마, 나 죽으면 아빠랑 싸우지마. 누나가 너무 울어." 그러더래요...
정말 감사하게도 두번 째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판막에 난 구멍은 모두 막혔답니다.
수술 소식을 전화로 전해 듣고, 그때 저희를 봐주시던 외할머니가 집에 들어오자 마자 빨간 내복
입고 덩실 덩실 춤추던 기억이 생생해요. ^^

간장 게장이 너무 맛있게 돼서 주말에 2kg 사다가 한번 더 담았어요.
마트표 꽃게는 역시 한계가 있나봐요. 크기는 큰데 속이 너무 부실 하더라구요. 그래서 회사 동료들과
수산시장에 한잔 하러 간 김에 꽃게를 샀어요. 남자 직원들이 어찌나 벙쪄 하던지. ㅋ
제가 집에서 살림 잘 안하는 줄 알아요. 흐흐.
수술 후 1달 여가 지나 동생이 원주 집으로 돌아왔는데요, 그날 일 또한 생생히 기억 나요.
같은 아파트 엄마 친구 분께 피아노를 배우던 중이었는데, 선생님이 베란다 너머로 보고는 더 신나셔서
동생과 엄마 왔다고 알려주시더라구요. 저희 엄마와 동생, 동네에서 꽤 유명했어요. ^^;

꽃게가 진짜 실해요. 단단하고 무겁고.
제 손이 그닥 작은 손이 아닌데도 제 손만 하죠. 이거 넘 기대돼요. ^^
앗, 오늘 간장물 끓여 부어 줘야 하는데, 회식이 있네요. 음주 요리 하게 생겼어요. -_-
한달음에 달려 내려가서 엄마께 허락 받고 동생 데리고 놀이터에 갔는데요... 그네를 태워 달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앉혀 놓고 뒤에서 미는데... 눈물이 핑... 아이가 어찌나 말랐는지 빈 그네 같았어요.
저 그때 그네 밀며 하나님께 약속했답니다. '하나님, XX는 평생 제 손으로 지켜줄거예요.
저 훌륭한 사람 돼서 돈 많이 벌게 해주세요'

간장물 옆에서 끓이기. 주말 내내 가스렌지가 과로 했어요. ㅋ
자라면서 제 동생이랑 저는 참 각별했답니다. 1학년을 거의 다니지 못하고, 2학년에 진학한 터라
동생이 공부를 너무 못했어요. 한글도 모르고, 2학년이 됐으니까요. 게다가 엄마 아빠는 살아있어준
것만으로 고맙다며 공부하라는 말을 절대 안했죠. 그런데, 꽤나 모범생이었던 누나는 달랐어요.
성적표 갖고 오면 엄마 보여주기 전에 저한테 먼저 보여줘야 했고, 성적이 떨어지면 자로 손바닥을
때렸죠. 지금 생각하면 웃겨요. 초등학교 3학년 짜리가 2학년 짜리 성적 떨어졌다고 혼내다니. ㅋㅋ

3시간 정도를 이렇게 더 끓여주면 말 그대로 우윳빛으로 뽀얗게 국물이 우러 나와요.
정말 제대로 된 국물 때깔이 나죠? 키*아*님 좋은 도가니 감사합니다. ^^
동생에 대한 저의 보살핌이 어느 정도였나 하면요, 제가 초등학교 때 중공기 한번 넘어 왔잖아요.
전쟁 난다고 난리였죠. 아빠는 군으로 급히 복귀 하시고, 동생은 밖에 있었는데, 전쟁 나는 것 보다
이대로 동생 못 만날까봐 그게 제일 무섭더라구요. 걔는 내가 지켜줘야 하는데, 피난 가다가 잃어
버리면 안되는데... 하구. 지금 생각하면 좀 웃겨요.

마트표 꽃게라 암게인데도 알도 별로 없죠. 수산시장 아줌마 말씀이 암게는 10월 중순 이후에나 알이
꽉 찬다고. 이번에 2kg 담고, 다음엔 추석 지나서 담아야겠어요.
수술로 인한 동생의 비극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어요.
제 동생이 엄마의 재능을 이어 받아 디자이너 거든요. 정말 재능이 특출 나서 미술학원 한번 안
다니고도 디자이너로서 출중한 능력을 보였어요. 학교의 추천으로 대기업에 특채로
최종 합격 통지를 받고 신체 검사를 했답니다.

쓰읍. 간장물이 잘 다려져서 맛은 좋더구만요.
그런데, 심장 수술 병력이 문제가 된 거죠. 워낙 고되게 일 시키는 곳으로 유명하잖아요. 아무 문제
없다는 병원의 소견서를 받아 오라고 해서 엄마는 서울대학병원에 사정해서 수십년 전 진료 카드를
다 뒤졌어요. 자기 일인듯 안타까워 하며 하루 종일 함께 진료 카드를 뒤져준 당시 의사 분들 정말
고마웠죠.

전날 두번째 끓여 놓은 도가니를 밤새 식혀 놨더니 또 기름이 떠요.
소견서를 제출했지만 결과는 합격 취소였답니다. 동생 보다 엄마가 더 비통해 하셨어요. 태어나기
전 엄마 배속에서 생긴 병 때문에 아들 앞길 막았다고. 얼마나 마음 아파 하시던지...

이렇게 이쁠 수가! 국물은 또 얼마나 걸죽한지. 정말 몸보신 제대로 될 듯.
25살 꽃다운 나이에 동생을 낳아, 그 후로 7년 간을 아픈 아들 업고 다니던 엄마를 생각하니 또
눈시울이 붉어지네요... 동생이 조금만 걸어도 숨이 가빠 제대로 걷지도 못했거든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항상 하얀 얼굴로 엄마 등에 업혀 있거나 안겨 있던 동생 모습이 떠올라요.

지퍼백에 넣어.
지금은 어떠냐구요? 우리 집에서 키도 제일 크고, 디자이너라 맨날 밤 새면서도 끄덕 없고, 술도
잘 마시고... ㅎㅎ 훤칠하고 길쭉 길쭉해서 제 이상형이에요. ^^ 유지태 필 난다는. (돌 날아온다~)

냉동실 맨 아래칸에 차곡 차곡. 국물은 저렇게 눕혀서 얼린 후 나중에 좀 얼면 옆에 차곡 차곡
쌓아두면 돼요. 혼자 넓은 집 차지하고 있던 멸치 육수가 셋방살이 신세가 됐네요. 흐흐
엄마 돌아가셨을 때, 동생이 제일 아파했던 것 같아요. 자기는 엄마 고생만 시키고, 효도 한번
못해 봤다고. 누나는 칭찬 받는 딸이었지만, 자기는 평생 걱정만 끼친 아들이었다고...

얼은 거 냄비에 쏙 빠뜨려 팔팔 끓인 후 사태+도가니 넣고 파 송송 뿌려 주면 이렇게 도가니탕이
완성됩니다.
바보, 건강히 잘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효도인데... 그죠?

한 입 드세요~ 읍, 침 넘어 간다.
쓰고 보니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나중에 제가 좀 더 삶의 연륜이 생기면 엄마 이야기를 글로 다
써보려고 해요. 어린 시절에도 남다른 아픔이 있으셨고... 어쩌면 엄마가 일찍 돌아가신 게 살아온
삶이 남들보다 너무 고돼서, 그래서 더 빨리 쉬시고 싶으셨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토록 많은 사랑을 쏟아 부어 애지중지 잘키운 딸의 삶 속에서 어차피 늘 살아 계실테니, 엄마는
그렇게 가장 행복한 때에 쉬고 싶으셨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