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와... 호박 속 긁는 거 장난 아니에요. 진짜 팔 빠지는 줄 알았어요.
3분의 1 쯤 긁어 놓고는 눈물이 나더라구요. 내가 이 짓을 왜 시작 했을꼬 싶어서...
지난 주에는 빵 반죽 하느라 녹초가 되고, 이제는 호박 속 긁느라... 불쌍한 나의 오른팔.

1등 공신 채칼이에요. 손맛을 중히 여기는 탓에 채칼 잘 안 쓰는데, 일산 가면서 이제 좀
편하게 살아보자 싶어 과감히 구입했어요. 일산 간 첫 주말 마트에 들러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사고 싶은 게 어찌나 많던지... 여기서 저의 두배로 행복해지는 쇼핑 노하우 공개.
사고 싶은 건 고민하지 않고 카트에 넣는다. 돌아다니며 구입한 물건으로 할 일들을 상상하며
행복해 한다. 카트가 가득 찬다. 대충 계산해 보니 수십만원은 나올 것 같다. 그러면 가장 필요
없을 것 같은 물건 부터 하나씩 뺀다. 만원, 2만원... 돈 버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매장을 빙빙 돌며 하나씩 내려 놓을수록 내 지갑이 무거워지는 것 같아 뿌듯하다.
그날도 그릇이며, 베이킹 도구며 이것저것 마구 골라담다 보니 30만원이 넘어 버렸어요.
하나씩 내려 놓고 끝까지 살아남은 건 달랑 저 채칼 하나. 카트 끌고 계산하기 머쓱하더라구요.^^;
그래도 저게 만원이 훌쩍 넘는 양날 채칼이에요. 일제더라구요.

박박 긁은 호박에 찹쌀가루+맵쌀가루를 1:1 비율로 섞어 소금을 살짝 넣고 섞어줘요.
호박에서 물이 아주 많이 나오기 때문에 물은 생략.

동글 동글 부쳐주기. 호박이 너무 부드러워서 모양 내기가 쉽지 않아요.
많이 부르니까 한쪽 면이 바짝 익었을 때 뒤집어 줘요.

씹을 것도 없이 입안에서 쫀득 쫀득 녹아 내려요. 남편이 너무 맛있다고 감탄. ^^

손톱 때문에 당분간 요리를 자제하기로 결심 했으나 호박 때문에 요리 본능 부활.
마트에 갔더니 두부 코너 아줌마가 1개 사면 하나 더 주는 행사가 어제까지였는데, 하나 숨겨
놨다며 두부를 내밀어요. 제 귀가 원래 얇은 편이 아닌데 왜 장보러 가면 그리 팔랑 거리는지
모르겠어요. ^^; 두부 한모를 깍뚝 썰어 케찹 조림하기로 결정.
이거 엄마가 어렸을 때 도시락 반찬으로 자주 싸주셨던 건데...

노릇노릇 지져줘요. 바싹 지져줘야 식어도 쫀득쫀득한 상태가 유지돼요.
케찹 + 설탕 + 간장 약간 넣어 조려 주면 끝. 맛을 보니 엄마가 해주던 그 맛 비슷한 맛이 나네요...
엄마가 요리를 너무너무 잘하셨거든요. 옷도 잘 만드시고, 이것저것 솜씨가 좋으셨어요...
살림 하다 보면 틈틈이 엄마 생각이 배어 들어요.
이젠 돌아가신지 5년이 되어가서 요리하다 주방에 쪼그려 앉아 우는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한참을 또 그렇게 우느라 사진은 없어요. ^^;

훌훌 털고 일어나 감자 볶음을 위해 감자 채썰기. 감자를 채썬 후 그냥 볶으면 전분 때문에 들러
붙어 떡이 돼요. 결혼 초에 감자 볶음 하다가 너무 당황해 꾹꾹 눌러 감자전으로 탈바꿈 시켰던
기억이... ^^; 채썬 감자를 물에 씻어 전분을 빼고 물기가 빠지도록 놔둬요.

스팸을 먼저 볶고. 주로 햄이랑 같이 볶는데, 명절 때 선물 받은 참치캔이랑 스팸이 아직 감당
못할 만큼 쌓여 있어 스팸으로. 스팸은 볶을 때 부스러져서 별로예요.

아, 색깔 이쁘죠? 스팸이 좀 짜니까 소금은 생략.

이리하여 이번 주도 밑반찬 3종 세트 탄생! 이제 겨우 수요일인데, 저게 다 바닥 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