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한약 체질이긴 한가봐요.
감기 때문에 양약 한 알 먹고는 거의 인사불성이었는데,
어제 한의원에서 지어온 탕약 몇첩에 산제 몇봉 타먹고는, 오늘 반짝 합니다.
더이상 재채기도 안나오고, 눈물도 안나오고, 콧물도 들어갔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수돗물도 잘 나오고 있고,
10시 예약되어있는 치과에 가느라 일찌감치 현관문을 나서보니, 춥지도 않고...아주 살만합니다.
지난주 폭설이 내렸을 때, 집에 갇혀있는 동안 읽으려고 책 몇권을 주문했는데,
배송이 일요일날에나 되었어요.
어제는 그중 한권을 잡고 읽었는데, 책 속에 샌드위치가 자주 등장하는거에요,
그걸 읽노라니까, 먹고 싶다는 생각은 없는데, 어찌나 만들고 싶은지요.
그래서, 치과 치료를 마치고, 광화문의 한 제과점에서 샌드위치용 빵을 사들고 들어와서 샌드위치를 만들었습니다.
제가 늘상 끼우는 양상추, 토마토, 치즈, 순살햄, 이렇게 넣었어요.
스프레드는, 시판 머스터드 중에 오이피클이 섞인 것이 있어요. 그걸 발랐습니다.
그래놓고...저는 안 먹었습니다...만들기만 하고 싶었거든요.
치과에 다녀오면서 교보문고에도 들렀습니다.
교보문고에 가면, 요리책 코너에 가서 새로나온 책들이며, 관심있는 책들이며 한참 보고 오는데요,
오늘 가보니까, 경기탓인지 1만원이 훌쩍 넘는 요리책값 부담스러워하는 독자들을 위해서,
아주 얄팍한 요리책들이 많이 나와있었습니다.
두툼한 요리책들을 다시 편집해서 만든 포켓사이즈로 주제별로 다양하게 나와있는데,
값도 부담없는 2천5백원선이었어요.
경기침체가 이렇게 요리책의 유행까지 바꿔놓는구나 싶으니까, 그리 마음은 개운치않았습니다.
게다가,
서점에 있는 그 수백종의 요리책에,
나도 몇권 보태 시장을 어지럽혔었구나, 싶은 것이...좀 그랬습니다.
돌아오는 버스, 승객이라고는 저를 포함해서 달랑 세명인 버스 안에서,
문득 그동안 나는 왜 요리책을 냈던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나는 요리책을 통해 뭘 얘기하고 싶었던 걸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제가 제 책의 독자들에게 하고 싶었던 얘기는,
뭐 몇스푼에 뭐 몇컵을 넣은 요리법이 아니라, 음식을 만드는 기본을 얘기하고 싶었던 거에요.
그 음식은 왜 그 양념으로 간해야하는지,
그 재료는 왜 그런 손질법을 써야하는지,
그 요리는 왜 그런 불에서 익혀야하는지,
왜, 왜, 왜, 그 이유를 설명하고 싶었던 건데, 제가 아는 대로 전달하고 싶었던 건데,
요리책을 여섯권이나 내고난 지금 생각해보니까, 하나도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아서,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얼굴이 홧홧해졌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제 요리법이 굉장히 쉽다고 생각했는데, 그 역시 오만이 아니었는지 반성도 됐구요.
참 새삼스러운 반성이죠, 책을 그렇게 여러권 출간해서, 그렇게 많이 팔아놓고...
그냥 오늘...제 마음이 그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