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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짭짤 고소한 김혜경의 사는 이야기, 요리이야기.

힘들었지만 개운한 하루!

| 조회수 : 11,540 | 추천수 : 151
작성일 : 2008-02-05 20:54:37


아~~ 오늘 진짜 많은 일을 했습니다~~

며칠전부터, 아랫집에 물이 샌대요.
며칠전 제가 없는 사이 관리사무소 직원이 보고 갔다고 하는 데 그 후 아뭇 소리 없길래,
해결을 봤는 줄 알았는데, 어제부터는 물이 똑똑 하고 규칙적으로 떨어진다는 거에요.
얼른 내려가보니,  3년전에 새던, 딱 그자리에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거에요.
죄송하다고 하고, 부랴부랴  기술자 아저씨를 불러 오늘 아침 9시부터 작업하기로 했습니다.
누수탐지기까지 동원해서, 온수관 냉수관 등등 찾다가, 보일러로 들어가는 냉수파이프에서 새는 걸 발견했어요.

아침 9시부터 기술자 아저씨 왔다갔다 하면서 일을 하는데...
소파에 앉아서  TV를 볼 수도 없고, 서재에 들어와 컴퓨터 앞에 앉아있을 수도 없고,
해서..
전을 부치기 시작했습니다.

전...내일 동서가 오고 나면 부쳐도 되지만..그게 참 그렇습니다...
저희 kimys, 8남매의 맏이로, 위로 남자형제가 주루룩 다섯, 그 아래 여동생들이 셋입니다.
동서들이 넷이나 있다고는 하지만,
바로 아랫동서는 사정이 있어서 몇년째 명절에 오지 못하고 있고,
셋째네는....시동생이 일찍 세상을 떠서, 동서와 조카들은 명절 당일 오후에나 옵니다.
그리고 막내동서는..마침 일본 출장중....
우리 시어머니, "며느리 많다고 해도 일할 사람이 없다"고 늘 탄식이십니다.

그런데 말이죠...참 그런 것이...
동서들이 여럿 모여서 일하면, "동서 이거 해줘", "동서 저거 해야해"하고  일을 나눠서 할 수 있는데..
달랑 동서 하나만 오니까...뭘 자꾸 시킬 수가 없어요..시키기 미안한 거 있죠?

게다가 몇주 전에 있었던 제사를 앞두고,
뜬금없이 저희 어머니께서,
제가 준비한 제수용 생선이 늘 상했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 동서에게 준비시켜야겠다고 하시는 거에요. 그 동서네가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근처거든요.
하느라고 했는데..제가 준비한 생선이 ' 늘 상했다'고 하셔서..기분이 썩 좋았던 건 아니지만..그렇게 하시라고 했어요.
제가 준비한 것이 맘에 안드셨다면...바꿔봐야지 어쩌겠어요.
해서 지난 제사때 동서가 집에서 생선들이며, 낙지며 꼬막이며 준비해왔었습니다.

이번에도...동서보고 준비해오라고 했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생선샀다가, '그거 봐라, 가락동 애가 사온건 싱싱하고 맛있는데, 니가 산 건 이렇다..' 이런 말 듣게되면..
김새잖아요..^^;;

생선 준비 시키는 바람에 더더욱 동서에게 일을 시키기 미안합니다.
그래서, 제가 혼자 가스불에 프라이팬 두개 놓고, 전 다 부쳤습니다.
생선전, 버섯전, 녹두전, 두부적, 동그랑땡...

전감을 약한 불에 올려놓고, 사이사이,
침대커버랑 이불커버 벗겨 빨고, 해묵히기 싫어서 일상적인 빨래도 삶아빨고...세탁기 3번 돌렸어요...
전부치면서 나오는 큰 그릇들 설거지도 말끔히 마쳐 제자리에 넣어주고,
청소기 돌리고, 심지어 식초물까지 넣어 물청소로봇청소기까지 돌리고,
오늘 오후부터 재활용쓰레기 버리는 날이라,
지난 한주동안 모은 엄청난 양의 쓰레기 내다버리고...(아무래도 명절에는 스티로폼박스가 많이 생기잖아요..)
내일부터 이틀동안 음식물쓰레기 버리지 못한다고 해서, 음식쓰레기도 내다버리고...
진짜 바빴습니다.
두세가지 일을 동시해냈는데...힘들기는 커녕...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우선은 물 샌거...
명절날 그랬으면...기술자 부르기도 어려웠을 테고...
바로 고치지 못해서 아랫층 사시는 분들께 물 새는 설날을 맞도록 했으면 너무 미안했을텐데..
다행스럽게도, 명절전에 고칠 수 있어서 좋았구요.

또 종이박스니 스티로폼박스니 빈병이니 해서 재활용쓰레기 때문에 정신없었는데..
말끔하게 치워서 기분 좋았구요.
전을 부치는 짬짬이 빨래까지 해널어서 좋았어요.

그리고..오늘 제가 조금 움직여둬서,
내일 동서가 왔을 때 동서가 중노동에 시달리지 않고, 쉬엄쉬엄할 수 있어서 좋구요.
세상일이 마음 먹기 나름이라고...결코, 일을 조금 한 건 아닌데...힘들지않고, 오히려 개운해서 기분이 좋아요.

그런데...제가 감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저처럼 살지는 마시라는 것입니다.
저희 네째동서는...제가 이렇게 미리 일을 해둬서..자신이 조금 편하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런건 아닌 것 같아요.
상대방을 배려해서 내가 조금 힘들더라도 내가 조금더 일하고, 내가 조금 손해라도 감수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더라는 거죠.
'너는 손이 빠르잖아' '요리하는 거 좋아서 한거잖아' '니 마음 편하고자 한건데, 웬 생색?'이러는 사람도 많다는 겁니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쌍방통행이어야지 일방통행이어서는...곤란하죠....
내가 조금 양보하고, 내가 더 배려하고 하는 것도...상대에 따라서 해야하는 것 같아요.
전에는....그냥 내가 참고 말지, 내가 하고 말지...이랬는데..생각이 바뀌어가는 것이 좀 서글프긴 하지만....

이제 내일부터, 설연휴입니다.
우리 모두들, 부디..무사히..아무 일없이...설명절을 보내고, 이 자리에 다시 모였으면 좋겠습니다....아자아자!!
1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부라보콘
    '08.2.5 9:05 PM

    수고하셨습니다 박수 짝짝짝

  • 2. 똥강아지
    '08.2.5 9:06 PM

    사람맘이 다 제맘같지가 않더라구요.. 그럴때 참 서글프죠..
    저두 형님이 기름튀는거 무섭다해서 명절때 전부치는건 제가 많이 했는데, 어느순간부터는 완전히 저혼자만 하게 되더라구요..

    올해도 역시 저혼자 쓸쓸히 베란다에서 전을 부치고 있겠죠..

  • 3. 부라보콘
    '08.2.5 9:09 PM

    일등에 연연하느라 너무 짧게 첫 댓글을 달았어요 ㅎㅎ
    아랫동서의 마음까지 헤아리시면서 일 하셨군요
    맏며느리의 넓은 마음이 글속에서 잘 느껴집니다
    저는 제사도 안지내고 일도 크게 없는 막내 며느리지만
    큰댁의 큰 형님 볼때마다 존경심이 불끈 불끈
    설 연휴 잘 보내시고 온가족이 모여서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 4. 하미의꿈
    '08.2.5 9:41 PM

    숨이 차도록 일을 하루종일 하셨군요 나는 종일 만두속 한가지 해놓고도 힘들다고 벌렁 누웠는데요 ㅎㅎㅎ 그래도 기분이 좋으셨다니 다 맘먹기 인것 같아요 설명절 잘보내시구요 또 맛갈스런 수첩 기대할게요

  • 5. 비타민
    '08.2.5 10:37 PM

    시어른모시는 맏며느리들보면 고개가 절로 숙여진답니다 저는막내라 큰부담은없지만 이상하게 형님눈치를 보게됩니다 늦게 도착해 왠만한 차례준비 다해놓으신걸보면 더욱더 미안하고 ..
    그렇다고 내가도착해하겠노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맏이는맏이대로 막내는막내라서 ..언제쯤 이런 애매한관계가 온전해질수있는건지...명절지나서 모두들 힘들었지만 개운한날!!이였다고 기지개 쭉~ 펴고 만납시다

  • 6. ice
    '08.2.5 10:40 PM

    대~~애~~~단하십니다...
    역시 주부 90단입니다 ..ㅎㅎ
    저는 언제 그 경지에 다다르려나 ~~ ^^ 까마득..합니다.
    혜경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 하시길 바랄께요..
    저두 오늘 시엄니랑 만두 200개 빚고 왔더니 어꺠가 뻐근...ㅋ

  • 7. 퍼렁별꼬야
    '08.2.5 11:36 PM

    지금 저도 두 마음이 왔다갔다했는데..공감 백배입니다. 다같이 모이는 명절인데 맏이라 다하고 막내라 덜하고 (바뀐집도 있지만) ..그러는게 싫네요. 서로 아끼는 맘으로 조금씩 힘을 합치면 다 편한하고 즐거운 명절이 될텐데...
    매년 약식에 음식을 서너가지이상 싸들고 시댁에 가는데 이번설은 내가 다 준비하라고 하는 시어머니나 그런말을 듣고도 아무말도 없는 동서나....서운합니다. 내 한몸 희생해서 온 가족이 기뻐하고 좋아하면 힘들어도 재미있었는데 ... 스스로 맘 먹고 하는거랑 시켜서 하는게 참 다르네요.

  • 8. 늘보
    '08.2.6 12:19 AM

    전 밴댕인가봐요...
    왜 선생님 일 하신거 보다, 시어머님 말씀이 가슴에 박히는 지...
    제사상에 올린 생선이 상했다니... 애 쓰시는 거 다 보셨을텐데...
    저도 맏며느리입니다. 그냥 선생님 입장이 제 입장이다 생각하면서 글을 읽어서 그런가봐요...
    맏며느리 참 힘듭니다. 같은 일을 해도 표도 안 나고...
    둘째가 하면 "장하다" "기특하다"할 일을
    맏이는 "당연하다" 좀 모자라면 "맏이가 그러면 돼냐..."

    전 그릇이 작아서 맏며느리로는 영 불합격인데
    어쩌다 맏며늘이 됐는지....

    선생님 너무 애 쓰셨어요. 제 마음도 가뿐하네요...
    저도 세탁기 여러 번 돌리고 물 마구 틀어놓고 큰 빨래 손으로 헹구고
    젖은 옷 갈아입고 샤워하면 너무 개운해요.
    특히 여름에 빠삭하니 마른 빨래를 보면 더 좋구요.

  • 9. chatenay
    '08.2.6 1:53 AM

    맞아요~왜 내가 하기싫으면 남도 하기싫다는걸 모를까요?
    형님네가 유학인지,이민인지모를 곳으로 떠난지 5년...저희시댁은 시어머니는 거의안 움직이시고 저 혼자 움직이지요~올해는 시이모님께서 좀 도와 주시겠지만...
    몇년전 시부모님들께서 구정에 성지순례가셨던 때가 그립네요~참 좋았는뎅....
    이번에는 시고모님,시작은아버님댁도 오신다는데...저도 분가해 돌아와 쉴 곳이 있다는걸 감사하며 힘내 봅니다!!아자~~!!*^^*

  • 10. 쿵쿵
    '08.2.6 8:42 AM

    시어머님의 말씀이 당장은 서운하시겠지만.
    시어머니께서 큰며느리 애쓰는거 아니까 일을 분담시켜주신건 아닐까요.

    후후
    저는 돌아가신 시아버지께서 명절에 작은애 너는(저말입니다.) 고기랑 생선을 맡고
    나머진 큰애가 해라 하시더라구요.
    그땐 왜 아버지가 저러시나 서운했는데 세월지나니 참으로 편합니다.
    명절때마다 머 준비하냐고 신경쓸것 없이 고기 양념하고, 국거리사고, 생선사면 끝이니까요.

    물론 모여서 전도 만들고, 만두도 빚기는 하는데 그래도 맘이 참 편합니다.

    어머니께서 교통정리해주신건 아닐까요...ㅋㅋ

  • 11. silvia
    '08.2.6 4:08 PM

    아~ 많은 일을 하셨군요. 뿌듯~~하셨겠어요.
    저두 오늘은 샘처럼 많은 일을 좀 해야 할 거 같아요. 밀린 집안 일에 구석구석 손봐야 하는 일이
    많은데....

    한국은 이제 설 준비로 분주하겠어요. 여긴 설도 없어서 외롭지만 ... 그래두 식구들과 분위기는
    내볼까~한답니다.
    어찌~ 그렇게 여러가지 일을 같이 잘 하시는지... 부럽사와요.

  • 12. smileann
    '08.2.6 8:32 PM

    저는 손위형님 4분 계시는 5형제 집안인데도,
    (2분 형님은 외국에 계시고)
    설 추석, 언제든 막내인 저희집으로 다 오시고, 음식 의논 아무도 안합니다.
    오로지 제가 알아서 합니다.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통행이라는 말...
    정말 공감합니다.
    나이가 저랑 많이 차이나시는 형님들인데도,
    입 꼭 다물고, 나타나시는 형님들...

    막내아들 골라 골라 왔는데...ㅎㅎㅎ

    선생님, 82가족 여러분 복 많이 받으세요.
    많이 베풀 수 있는 사람이 결국 복 많이 받는다 믿습니다~!!! ^^

  • 13. cindy
    '08.2.7 10:21 AM

    82님들, 정말 존경합니다. 막내이신데도 음식준비 다하시는 분도 계시고, 아랫동서들 계신데도 맏며늘이란 이유만으로 모든걸 다 감내하시는 분들도..모두모두 존경합니다. 힘내시고, 한분도 병나지 마시고 구정 담날 뵈요=^^= 빠샤!!!!!!!

  • 14. 행복해
    '08.2.7 10:44 AM

    선생님도... 참 힘든 날들이 많으셨겠구나!!

    반찬 태업 이야기며... 오늘 이야기에서... 내 곁에 가까운 친구 얘기를 듣는 듯..
    실감나고 공감가는 얘기들이에요.
    이 많은 일들을... 붕붕 날라다니면서 해냈을 선생님을 생각하니 맘이 짠 하네요...
    수고 정말 많으셨어요

    일방통행... 참 어렵죠...사람맘이.. 내맘같지 않다는 것...
    지혜롭고 따스하신 분이라.. 넉넉히 잘 이겨내오신 것 같아요.

    지나온 날들보다 더 행복하고 감사한 일들로 풍성하세요.

  • 15. 레몬사탕
    '08.2.8 1:15 AM

    참 착한 맏며느리세요~~

    전 오늘도 시댁식구들과 2박3일간의 일정을 빠빠이하면서..
    '난 참 아직도 인간되려면 멀었구나..' 많이 반성했어요..

    지방사시는 형님은 늘 설당일날이나 오시니..어머니 혼자 다 하시는데..
    작년..올해는 저도 아기핑계로 암것도 한것도 없으면서
    혼자서 궁시렁 궁시렁...어머니한테 타박(?)이나 하고...
    떡국 국물내면서 다시다 때문에 ^^;; (외식할때는 많이도 먹을텐데..왜 그리
    민감하게 굴게 될까요? 다시다 시러요 ㅋ)

    오후늦게 친정가서 이모한테 얘기하니..
    "너같은 며느리 나라면 미울거같다" 이러시더라구요..
    우어어~ 잘해주실때 저도 잘해야되는데..왜 이리 싫으면 싫은티가 바로 나는지..ㅠ.ㅠ

    저도 선생님처럼 참하고 착한 그런 예쁜 며느리이고 싶어요~~~~
    그나마 막내며느리라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ㅠ.ㅠ

  • 16. 세라피나
    '08.2.8 1:32 AM

    맞습니다....... 정말 더 어릴적엔 몰랐는데 조금 크니까 더 그런 것 같아요.
    전엔 그런 일방통행에 정말 상처 많이 받고.... ...복수심마저 품었던
    혈기 좋은 때가 있었으나 이제는 그려려니 하고
    그런 사람과 안그런 사람을 구분해 사귈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선생님 정말 대단하세요...
    전 맨날 약한 불에 올려놓고 요리하면서 딴일 짬짬히 했다가.
    도리에 딴일에 너무 열중에서 태우기 쉽상이거든요.
    글 읽는 제가 다 개운해지고 기분 좋아지네요.

  • 17. 깊은바다
    '08.2.8 10:38 AM

    맏며느리는 하늘이 내린다고 했어요.
    선생님 글 읽으면서, 정말 탄복하다 갑니다.
    저도 맏며느리인데, 맏며느리 역할 잘 못하는...
    꼴난 맏며느리인데...
    늘 좋은 글, 이 메마른 21세기 한국 사회 아줌마들에게 경종을 땡땡 울려주시는 말씀들
    넘 감사해요.
    더 부지런히 살아야겠어요.

  • 18. 박현정
    '08.2.9 11:55 PM

    아 저도 선생님처럼 이것 저것 해둬야 겠어요.
    일을 하나 하기 시작하면 다른 일도 하는김에 하자' 이런 생각에 더욱 부지런 해지는데
    안하고 내버려 두면 아무것도 안하게 되더라구요.
    누수된 것도 잘 찾으셨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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