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 만들기를 즐기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물론 요리하는 스타일이 워낙 다양해서, 몇몇 부류로만 나눌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굳이 구별을 해본다면, 레시피 추종형과 레시피 무시형, 그리고 중간형 등으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요리를 하기에 앞서 레시피를 분석하고, 조리 순서를 외우며, 레시피에 있는 재료가 단 하나라도 없으면 음식을 만들지 못하는,
레시피 추종형이 의외로 많은 것 같아요.
반면에 레시피 같은 건 아예 외울 생각도 안하고, 재료는 손에 집히는 대로 쓰고, 양념도 생각나는 대로 넣는,
그냥 손가는 대로, 마음가는 대로 만드는 부류가 있죠.
제가 바로 여기에 속합니다.
(예전에 어느 분이 제 요리스타일을 퍼지형이라고 해주셨는데...퍼지형..너무 맘에 듭니다.)
냉장고 열어서, 눈에 띄는 대로, 손에 집히는 대로 꺼내서 넣고, 양념도 그날 기분에 따라서 대강 대충!!
글을 써야하기 때문에 요즘은 계량을 열심히 하기도 하지만,
원래는 간을 봐가면서 그냥 잡히는 대로 넣어 만드는 것이 제 스타일이었댔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건..
제 경우, 뭐 몇큰술 뭐 몇작은술 이렇게 계량을 해가면서 만드는 것보다, 그냥 막 집어넣는 것이 훨씬 맛있다는 겁니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계량을 해서, 레시피를 올릴 때는 계량 자체가 너무 까다롭지 않게 느껴지도록 조율을 좀 합니다.
예를 들어, 간장을 1큰술에다가 ⅓큰술도 채 안되게 조금더 넣어야 제 맛이 나지만....레시피를 쓸 때는 그냥 1큰술이라고 씁니다.
레시피에 1큰술이라고 되어있는 건 '아, 나도 한번 해볼 수 있겠다!' 생각하지만,
1과몇분의몇 큰술, 뭐 이렇게 복잡하게 되어있는 건...계량만으로도 머리가 아파서...지레 요리를 포기하는 일도 생길거에요.
또 가능하면 들어가는 양념들의 양을 같이 한다든가, 1:2:1 뭐 이런식으로 간결하게 정리하기도 합니다.
조금더 민감하게 양을 조절해야 맛이 나지만...계량이 어렵고, 외우기 어렵도록 하면..하고 싶지 않잖아요.
요리라는 건 우선 만드는 사람이 즐거워야 하는 것인데 말이죠.
그래서 제가 맨날 강조하는 것....'계량스푼 대신 자신의 혀를 믿으라'는 거죠..
왜 이렇게 계량에 대해서 장황하게 늘어놓느냐하면요..오늘..그야말로 손가는 대로 음식을 했습니다.
희망수첩에 정확한 레시피를 올려야한다는 부담감이 있는 날에는 정확하게 재서 음식을 하지만,
오늘은..그냥, 막, 생각나는 대로, 마음가는 대로 하지 싶었거든요.
묵무침이나 묵국수같은 레시피를 필요로 하는 분들이 없을테니까요..모두들 하실 줄 아는 거니까...
그래서 그냥 만들었는데, 결과적으로,
집에서 쑨 도토리묵으로 도토리묵무침과 따끈한 묵국수를 했는데..두가지가 다 성공적이었습니다.
문제는 뭘 넣었는지..생각도 안난다는...^^;;

묵무침에는 쑥갓을 꼭 넣고 싶었으나 집에는 없는 관계로 오이와 파 마늘을 넣었어요.
오이는 반개, 파는 반대 정도 넣었는데 마늘은 얼마나 넣었는지 도통 기억이 안나요.
간은 맛간장으로 하다가 모자란 듯 해서 간장을 넣었고, 들기름과 들깨가루를 넣었는데...대충 넣느라..얼마나 넣었는지...
그밖에 후추를 넣었는지 안넣었는지도 모르겠고...

묵국수도 대충 멸치육수를 뜨겁게 낸 다음 묵과 김치무침을 얹고 국물을 부은 후 김가루를 올렸는데.
국물의 간을 국간장과 소금으로 했는데..얼마나 했는지 도무지 기억도 나지않고,
그밖에는 또 뭘 넣는지 모르겠어요.
간 봐가면서 그때 그때 넣고 싶은 거 넣었거든요.
이 두가지 묵 음식이 너무 맛있다는 시어머님의 칭찬...아..쑥스러워라...
점심에 해먹은 낙지볶음 역시, 양념장을 만들어 뒀다가 넣는 평소의 방식과는 달리,
그냥 양념병을 꺼내서 대충 넣어서 볶았는데...매운 정도며, 달달한 정도가 딱 맞은 거에요. 이럴 수가...
가끔은 말이죠...이렇게 되는 대로, 기분 내키는 대로 음식을 막 해보세요.
그냥 혀만 믿고, 마구 만든 음식이 맛있다면...음식을 만든 그 즐거움이 배가 된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