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바라보니 그 높이가 장난이 아닌, 산맥이 끊없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가장 멀리 보이는 산의 정상은 하얀눈까지 이고 있었습니다.
"경치 끝내주는데...그런데 혹시 여보, 운전해서 저 산들을 넘어야하는 건 아니겠지!!"
이러면서 출발했는데...916번이었는지, 918번인지..정확하지는 않은데..암튼 정말 경치는 너무 좋았습니다.
길도 붐비지 않고, 경치 너무 좋고, 가다보니 봉화 청량산..뭐 이런 안내판도 있어서...
잠시 놀다갈까도 생각했는데, 해가 너무 짧아 아쉽지만 그냥 지나쳤습니다.
한참가다보니 갈림길이 나오고 한쪽은 덕구온천, 한쪽은 백암온천이라 써있어서, 망설임없이 백암온천 쪽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가도가도 백암온천은 보이지 않고, 길에 차도 없고, 사람은 커녕도 인가도 잘 보이지 않고...
그러다 밭에서 배추를 뽑고있는 분들을 만났는데 어찌나 반갑던지...
"이 길로 가면 백암 나와요??"
"네, 쭉 가세요.."
전, 10,20분이면 가는 곳인줄 알았어요.
집에 돌아와서 우리나라 전체 지도책을 보니까...제가 운전한 거리가 장난이 아니었네요..^^;;
봉화에서 백암이, 서울에서 일산가는 정도로만 알았으니...
[소백준령을 넘어 도착한 백암온천] |
아주 구불구불한 길을 하염없이 하염없이 올라갔습니다.
경관이 너무 아름다워, 잠시 차를 세우고 사진이라도 찍고 싶었지만 좁은 길에 마땅히 차 세워둘 곳도 없고...
88번 지방도로를 하염없이 가다보니...
아...출발하면서 저 멀리 눈을 이고 있던 그 산, 설마 내가 저기까지 운전하고 올라가야하는 건 아니겠지 했던..바로 그 산...
그 산이 바로 옆에 있는 거에요. 눈 덮인 그 산 정상에는...천문대도 있는 것 같았어요...
정말 천문대였는지..아님 군사시설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도가도 백암은 보이질 않아, 슬슬 조바심이 날 무렵, 표시판에 '온정'이라는 지명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명에 온(溫)자가 붙어있으면 대부분 온천이 나오는 곳이잖아요..
이제야 됐다 싶대요.
"여보, 우리가 무지 높은 산길까지 올라왔던 모양이네 "
"그러게...그래도 당신 이번이 아니면 언제 이런 고산준령(高山峻嶺)을 운전해서 넘어보겠어..."
"맞지...그런데 눈만 오면 산간 지방 교통 두절이라더니 정말 실감나요..이렇게 험한 길, 게다가 차까지 잘 다니지 않는 길 눈오면 그냥 얼어붙어 통행할 수 없을 것 같은데.."
귀가 멍했다 뚫리고, 또 멍했다 뚫리기는 그 몇번인지...
그래도 멀리 보이는 설산(雪山)과 아직 남은 단풍과 쭉쭉 뻗은 침엽수 구경하면서 오느라 힘든줄도 몰랐습니다.
[빨랫줄에 매달려 우리를 반기던 복어] |
백암에 도착해서, 우선 저녁을 먹기로 했습니다.
원래 아침은 잘 안먹어, 아침은 건너뛰었고,
먹은 거라곤 점심에 먹은 묵조밥과 태평초, 그리고 차안에서 먹은 사과 한조각, 유기공방에서 마신 커피 한잔이 고작..
서울 근교에는 산중에 카페도 잘 있더만..이렇게 인적이 드물고 산세가 험한 곳에...찻집이나 음식점이 있을 턱이 없죠...
백암에서 뭘 먹을까..고민하다가...그냥 만만하게 산채백반을 먹기로 했습니다.
더덕무침이 맛있어서..허겁지겁 밥 한그릇 다 비우고는 숙소를 찾아나섰는데, 인터넷 되는 방이 없는 거에요, 여기저기 돌아다녀봐도...
게중에 깨끗해보이는 스프링스호텔이라는 곳엘 들어갔어요.
방값은 4만5천원.평일이라 할인해주는 거래요.
전날 풍기의 모텔은 난방을 너무 덥게 해줘서..자면서 괴로웠는데..여기는 일단 실내온도가 딱 알맞아 좋았어요.
숙소 정하고, 가방 올려놓기가 무섭게 호텔 내의 사우나로 직행했습니다.
아..물이 어찌나 좋은지....
단체관광오신 우리 어머니 또래의 아주머니 수십명이 들어와서, 제가 가져다 놓은 의자며 대아 집어가기 전까지는 정말 너무 좋았습니다.
단체관광 오신 아주머니들, 어찌나 시끄럽고...또 정신을 빼놓으시는지..그래도..우리 엄마 여행 다니면 이러시겠지..생각하니까..
저절로 미소가 나오대요...^^
[대(竹)가 많아서..죽변이래요...] |
백암온천의 물은 어찌나 좋은지...금방 제 살결이 대리석처럼 매끄러워지는 것 같고, 얼굴도 하얘지는 것 같아서..
아주 므흣했습니다.
백암 물 그냥 두고 오는 게 아까워서.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한번 객실 욕조에 물을 받아 30분 이상 푹 담갔습니다.
전날 그렇게 험한 길 오래 운전했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았던 건...백암의 물 탓이겠죠??
백암에서 평해쪽으로 나와, 7번 국도를 따라 울진을 향해 달렸습니다.
아침을 안먹었으니까..커피라도 한잔 마시자고 들른 망양휴게소..
아...지금도...그 바다를 봤을 때 가슴이 뻥 뚫어지는 듯한 그 기분...그걸 생각하니까..벅차오르네요...
망 망 대 해...그 단어외에 아주 생각도 나지 않았고..그리고 바다를 보면서..지구가 둥글다는 걸 처음 느꼈습니다.
바다를 본 게 처음이 아니고, 동해바다는 물론이고, 태평양 대서양 지중해 등등 바다를 많이 봤음에도,
여태까지 수평선은 말 그대로 수평이라고 생각했는데...
망양휴게소에서 본 바다는 둥그스름한 곡선 이었습니다!!!
[경매에 부쳐진 새우와 소라] |
7번 도로를 따라서, 죽변의 어부현종님 댁에 도착했습니다.
양비님이 정성껏 마련한 점심(먹느라..사진은 한 커트 밖에 못 찍었다는..ㅠㅠ)을 맛있게 먹고,
드라마 '폭풍 속으로' 세트장과 어판장엘 갔습니다.
딴 때같으면 생선이 많을 때인데...바람이 불어서 조업을 못해서, 생선이 없다고..
그래도 나무판 사이에 숫자를 적어 입찰하는 재미난 구경을 하고, 성류굴도 갔습니다.
성류굴에서는..."멋있다" "대단하다"..뭐 이런 말 밖에는 할 수 없었습니다.
성류굴에서 나와, 같이 덕구온천 가시자고 하는 현종님부부의 간곡한 권유를 뿌리쳤습니다.
저희가 오래 머물면 머물 수록 폐를 끼치게 될 것 같아서요.
성류굴에서 돌아오면서, 댁 앞에 내려드려고 했더니, 그러면 좀더 올라가서 해신당 구경이라도 같이 하자고 하셔서,
삼척에 있는 해신당 구경을 했답니다.
해신당은 아까운 나이에 목숨을 잃은 처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한 전각이 있는 곳으로,
요즘 사람들이 거기에 좀 민망한 민속품들을 모아 전시하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 현종님 내외와 작별하고...저희는 좀더 북쪽으로 올라왔습니다.
죽변의 사진은 여기에 더 있습니다.
[ http://www.82cook.com/zb41/zboard.php?id=etc&page=2&sn1=&divpage=5&sn=off&ss=... ]
[촛대바위] |
추암이 아름답다는 말은 너무 많이 들었는데..이번 기회에 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서, 서둘러 길을 나선 거죠.
해가 거의 질 무렵에 도착한 추암은 정말 소문대로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이곳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면...정말...대단한 행운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마도 일기예보에 내일 날씨가 맑다고 했다면, 거기서 하루 묵었을 지도 몰라요..그런데 다음날은 흐리고 비온다 하여...
오기 싫은데...더욱 오래 있고 싶었는데...또 떠나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강릉을 향해오면서...정동진을 들러가야겠다 싶어서,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라는 옥계에서부터 정동진까지의 해안도로를 찾아들었는데..
ㅠㅠ, 그만 해가 져버려서...들리는 파도소리와 어렴풋하게 보이는 바위며, 바다모습으로...그 경관을 미루어 짐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바다에 취하다!] |
토요일 밤의 정동진은....아주 화려했습니다.
수많은 숙박시설과 음식점들, 차들, 사람들...
저녁이나 먹자고, 정동진의 초당두부집에서 순두부를 먹고 숙소를 잡으려고 하니...8만원도 달라고 하고, 5만원도 달라고 하고...
무엇보다 젊음의 열기가 넘치는 듯한데...어째 우리 부부와는 좀 거리가 있는 듯 해서, 경포대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차분한 경포호수] |
정동진이 젊음으로 왁자지껄한 반면, 경포대는 고즈넉했습니다.
경포대 들어서자 마자, 좀 깔끔해보이는 모텔로 들어갔습니다.
이제 거의 막바지에 이른 여행, 어쩌면 좋을까...궁리에, 궁리를 거듭했죠.
"낼 아침, 다시 정동진으로 가서, 구경하고 그 해안도로 다시 달려서 옥계로 가자, 거기서 동해고속도로 타고 영동고속도로로 가면 될 것 같아요."
"그러세요..사모님 맘대로 하세요..."
이랬는데...아침에 생각이 또 바뀌었어요.
정동진은 스쳐지나왔으니까, 봤다고 치고...
그리고...떨치고 나오기가 어렵지..이렇게 한번 나와보니까....집을 벗어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은 것 같았어요.
시간 맞춰서 출근하고 퇴근하는 직장을 다니는 것도 아닌데,언제 평일날 날잡아서 오면, 언제든 다시 올 수 있을 듯 하여...
계획을 아침에 바꾸었습니다..무계획 여행은...이래서 좋은 것 같아요...^^
무계획 여행기 마지막회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