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에 나온 한 아이가 "이 담에 커서 아이스크림 푸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는 걸 봤습니다.
그걸 보니까...문득, 딸아이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제 기억으로는...딸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때까지, 그러니까 일곱살이 될 때까지,
특별히 장래의 희망이 없었습니다.
저도 뭘 물어보지 않았구요.
제가 대학에서 뭘 전공했는 줄 아세요?? 교육학이었답니다.
대학시절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은 어설픈 교육학도 였으면서도,
아이만큼은 방임형도, 억압형도 아닌 민주형으로 키워보겠다고..
제딴에는 꽤나 노력을 했습니다.
아이가 먼저 밝히기 전에 '이담에 커서 뭐가 될래?''이담에 커서 뭐가 되거라' 이러면 아이가 민주적으로 크는데 부담이 될까봐...
일곱살이 되도록 장래의 희망같은 것은 물어볼 생각도 못했습니다.
아이가 일곱살이던 5월의 어느날...유치원에서 시장놀이를 했습니다.
머릿수건이랑 앞치마랑..그리고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았지만 아무튼 시장놀이에 필요한 뭔가를 준비해서 보냈습니다.
퇴근해서 들어가보니..시장놀이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는 흥분상태였습니다.
" 재밌었어? 그래, 시장에서 뭘 팔았니?"했더니, 아이가 대뜸,
" 엄마, 저 이담에 커서 시장에서 무랑 배추랑 팔고 싶어요"하는 거에요.
그날 시장놀이에서 어떤 남자아이랑 배추랑 무 같은 채소를 팔았던 모양인데, 굉장히 인상적이었었나봐요.
물건과 돈이 교환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경험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물건과 바꿔진 그 돈을 만지는 것이 재미있었나봐요.
"그래 그러렴. 이담에 커서 무랑 배추랑 팔아"
한동안 아이의 장래희망은 '시장에서 무랑 배추 파는 사람'이었습니다.
몇년이 지났는데, 아이가 느닷없이 이담에 커서 하고 싶은 일이 바뀌었다는 거에요.
"뭐가 하고 싶은데??"
"머리 만지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려서부터 머리에 퍼머하는 것을 좋아하던, 그래서 일년에 두어번씩 퍼머를 하던 딸아이,
미용실에서 일하는 언니들이 굉장히 좋아보였던 모양이에요.
"그래, 이담에 머리 만지는 사람 해."
그렇게 또 몇년이 지났는데....이번에는 글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해요. 작가도 아니고 그냥 글 쓰는 사람...
이번에도 그렇게 하라고 하니까 금세 의사가 되겠다는 거에요. 글도 쓰고 병도 고치는...
그다음 희망은 아기엄마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그 다음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때가 아마도 중학교때 쯤이었을 거에요.
고등학교에 가서 딸 아이의 희망은 '아무거나 돈 잘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딸아이가....지금은 보험사의 회계팀에서 매일매일 숫자랑 싸우면서 살고 있습니다.
딸아이를 키우면서 직업에 대한 바램은 단 하나..'승진 스트레스가 없는 직업을 택해줬으면...'하는 것이었습니다.
기왕 열심히 공부한 거...한번쯤 공부를 더해서...뭔가 시험을 한번 더 봐서...
승진같은 거 신경 안써도 되는 직업을 해줬으면 하는 것이 엄마된 입장에서 제 바램이었는데...
차마, 더 공부하라고는 못하겠더라구요. 제가 공부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아이가 공부하는 것이지....
몇년간 더 공부해서 이담에 잘 사는 것도 사는 방법의 하나이겠지만, 지금 한창 이쁠 나이에 재밌게 사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공부하라고 못했습니다.
지난 겨울, 그 추운 날들에 지하철 타고 동동거리며 출퇴근하는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서,
"추운데 회사 다니느라 힘들지?"했더니,
"아니, 괜찮아. 엄마도 추울 때 회사 다녔잖아" 하네요.
맞아요..저도 그랬죠...추울 때면 발이 시려 동동거리면서 20년 넘게 회사 다녔죠...
저도 그랬지만, 자식이 그러고 다니는 건 생각만 해도 왜 이리 아린지...
3월말 결산 법인인 딸 아이의 회사...이제 곧 무시무시한 야근이 시작되는 모양입니다.
20대 중반인, 완벽한 성인인, 더이상 부모의 보호를 필요로 하지않는, 딸아이가 격무에 시달리는 것이 왜 이리 마음 쓰이는지..
저도 어쩔 수없는... 자식걱정에 시름 덜 날 없는 한국의 엄마인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