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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짭짤 고소한 김혜경의 사는 이야기, 요리이야기.

딸 아이의 장래 희망

| 조회수 : 13,776 | 추천수 : 76
작성일 : 2006-04-03 23:07:31
며칠 전 TV를 보는데...
TV에 나온 한 아이가 "이 담에 커서 아이스크림 푸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는 걸 봤습니다.
그걸 보니까...문득, 딸아이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제 기억으로는...딸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때까지, 그러니까 일곱살이 될 때까지,
특별히 장래의 희망이 없었습니다.
저도 뭘 물어보지 않았구요.

제가 대학에서 뭘 전공했는 줄 아세요?? 교육학이었답니다.
대학시절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은 어설픈 교육학도 였으면서도,
아이만큼은 방임형도, 억압형도 아닌 민주형으로 키워보겠다고..
제딴에는 꽤나 노력을 했습니다.
아이가 먼저 밝히기 전에 '이담에 커서 뭐가 될래?''이담에 커서 뭐가 되거라' 이러면 아이가 민주적으로 크는데 부담이 될까봐...
일곱살이 되도록 장래의 희망같은 것은 물어볼 생각도 못했습니다.

아이가 일곱살이던 5월의 어느날...유치원에서 시장놀이를 했습니다.
머릿수건이랑 앞치마랑..그리고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았지만 아무튼 시장놀이에 필요한 뭔가를 준비해서 보냈습니다.
퇴근해서 들어가보니..시장놀이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는 흥분상태였습니다.
" 재밌었어? 그래, 시장에서 뭘 팔았니?"했더니, 아이가 대뜸,
" 엄마, 저 이담에 커서 시장에서 무랑 배추랑 팔고 싶어요"하는 거에요.
그날 시장놀이에서 어떤 남자아이랑 배추랑 무 같은 채소를 팔았던 모양인데, 굉장히 인상적이었었나봐요.
물건과 돈이 교환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경험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물건과 바꿔진 그 돈을 만지는 것이 재미있었나봐요.
"그래 그러렴. 이담에 커서 무랑 배추랑 팔아"
한동안 아이의 장래희망은 '시장에서 무랑 배추 파는 사람'이었습니다.

몇년이 지났는데, 아이가 느닷없이 이담에 커서 하고 싶은 일이 바뀌었다는 거에요.
"뭐가 하고 싶은데??"
"머리 만지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려서부터 머리에 퍼머하는 것을 좋아하던, 그래서 일년에 두어번씩 퍼머를 하던 딸아이,
미용실에서 일하는 언니들이 굉장히 좋아보였던 모양이에요.
"그래, 이담에 머리 만지는 사람 해."

그렇게 또 몇년이 지났는데....이번에는 글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해요. 작가도 아니고 그냥 글 쓰는 사람...
이번에도 그렇게 하라고 하니까 금세 의사가 되겠다는 거에요. 글도 쓰고 병도 고치는...
그다음 희망은 아기엄마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그 다음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때가 아마도 중학교때 쯤이었을 거에요.
고등학교에 가서 딸 아이의 희망은 '아무거나 돈 잘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딸아이가....지금은 보험사의 회계팀에서 매일매일 숫자랑 싸우면서 살고 있습니다.

딸아이를 키우면서 직업에 대한 바램은 단 하나..'승진 스트레스가 없는 직업을 택해줬으면...'하는 것이었습니다.
기왕 열심히 공부한 거...한번쯤 공부를 더해서...뭔가 시험을 한번 더 봐서...
승진같은 거 신경 안써도 되는 직업을 해줬으면 하는 것이 엄마된 입장에서 제 바램이었는데...
차마, 더 공부하라고는 못하겠더라구요. 제가 공부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아이가 공부하는 것이지....
몇년간 더 공부해서 이담에 잘 사는 것도 사는 방법의 하나이겠지만, 지금 한창 이쁠 나이에 재밌게 사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공부하라고 못했습니다.

지난 겨울, 그 추운 날들에 지하철 타고 동동거리며 출퇴근하는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서,
"추운데 회사 다니느라 힘들지?"했더니,
"아니, 괜찮아. 엄마도 추울 때 회사 다녔잖아" 하네요.
맞아요..저도 그랬죠...추울 때면 발이 시려 동동거리면서 20년 넘게 회사 다녔죠...
저도 그랬지만, 자식이 그러고 다니는 건 생각만 해도 왜 이리 아린지...

3월말 결산 법인인 딸 아이의 회사...이제 곧 무시무시한 야근이 시작되는 모양입니다.
20대 중반인, 완벽한 성인인, 더이상 부모의 보호를 필요로 하지않는,  딸아이가 격무에 시달리는 것이 왜 이리 마음 쓰이는지..
저도 어쩔 수없는... 자식걱정에 시름 덜 날 없는 한국의 엄마인 모양입니다.
2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사라락
    '06.4.3 11:09 PM

    20대 중반은 한참 힘들 때죠. 저도 그 나이이구요. 모두 화이팅

  • 2. 클라우디아
    '06.4.3 11:18 PM

    항상 딸옆에 서계시는 샌님의 모습을 보기 좋습니다. 엄마야말로 딸의 동지이자 가장 믿을 수 있는 아군이 아닐런지요...

  • 3. 김혜란
    '06.4.3 11:19 PM

    엄마의 따뜻한 마음에 짠합니다. 참 내가 2등이라니...

  • 4. 꿀벌
    '06.4.3 11:20 PM

    저도 한아이의 엄마가 되어서야 엄마마음을 아주 조금 알것같아요
    혜경님..따님 이땅의 모든 엄마와 딸들 화이팅!

  • 5. 오데뜨
    '06.4.3 11:23 PM

    좋은 대학만 가면 다 해결날 거처럼 고등학교 내내 맘 조리다가 이젠 대학3년생!!
    이젠 걱정없이 취업해야할텐데......벌써부터 걱정되는 거 있지요.

    성년이 된 아이지만 정말 자식 걱정은 끝이 없는 것 같아요.
    이 땅의 어머니들의 모습은 대동소이하나 봅니다.

  • 6. 행복한 우리집
    '06.4.3 11:43 PM

    엄마의 딸 사랑이 찐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제 밑의 막내 여동생이 맨날 안스러워요. 그나마 많은(?) 나이에 외국계 회사에 취직해 다니고
    있는걸 기뻐해야하는 처지인데도, 맨날 야근에, 격무에 시달려 위장병 생긴 동생이 안스러워서
    집에 잘 도착했나 맨날 전화해봅니다.
    제가 친정엄마같지요.ㅠㅠ

  • 7. appletree
    '06.4.3 11:47 PM

    순위권 안에 들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글을 안남길 수가 없내요. 항상 선생님글 잘 읽고 있습니다. 82를 들어오면 항상 사람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 저처럼 사람과 접촉이 거의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큰 기쁨이에요...따님걱정 하시는 선생님글 읽으니 서울계신 울엄마가 많이 보고싶어 집니다. 저도 아이낳고 제일 미안했던 사람이 엄마였습니다. 정말 엄마마음은 엄마가 되어봐야만 알 수 있나봐요...

  • 8. 다빈모
    '06.4.4 12:08 AM

    저는 마흔 하나에 아기엄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아기는 30개월이 되었죠. 딸이구요. 선생님의 그 아리다는 표현을 이제는 이해하는, 그러나 제대로 엄마노릇을 하고 있는지 늘 의문이 드는 늙은 엄마랍니다. 우리딸도 선생님 따님처럼 예쁘게 잘 자라주기 빌고 또 빌어봅니다.

  • 9. 럭셔리 부엌데기
    '06.4.4 12:13 AM

    울 엄마도 그러하셨겠죠....
    특수한 직업상 새벽이면 눈꼽띠고 밥도 못먹고 출근하기 바빴고, 밤이면 초죽음이 되어서 퉁퉁 부은 다리로 들어와 겨우 한술뜨고 잠자리만 찾던....저의 직장생활을 보시던 엄마의 마음도 아리셨겠죠..
    그래도 옆에 엄마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고, 엄마의 따뜻한 밥 한공기가 힘든걸 잊게도 해주셨어요.
    결혼을 하고 집에서 애만 키우고 있는 지금에 와서 되돌아보니 힘들고 괴로웠지만, 엄마의 응원이 있었던 그때가 행복했던것 같습니다.

  • 10. 버섯댁
    '06.4.4 1:27 AM

    저희엄만. 안정적이고 돈잘주는 그런회사를 가길 희망하십니다. 아직도 바라지요.
    하지만 제가 자유로운 직업이 좋더군요. 어릴적부터 꿈이 없던 저였지만.. 이상하게 혼자 스스로 무언갈 해보고싶단 생각을 자꾸하게됩니다. 저희엄마는 제가 더 안정적이게 살길 원하시기때문이겠죠. ^^

  • 11. 레먼라임
    '06.4.4 1:35 AM

    따님이 참 밝고 예뻐요.
    생각이 바르게 되어 있어서, 더 돋보이는 것 같아요.
    민주형 교육방식...생각을 해보았어요.
    저는 이제 만6세인 딸에게 꿈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장래의 꿈을
    결정, 요구(?) 하고 있읍니다. 그런다고 그 희망사항대로 되는 것도 아닌데...
    어린아이가 괜시리 부담 갖었을 것을 생각하니 미안하네요.
    저도 아주 중요한 것을 배우고 갑니다. 늘 감사하게 생각해요.

  • 12. misty
    '06.4.4 2:06 AM

    3살된(한국나이 5살) 제 딸아이의 장래희망은 'postman' 이었습니다.
    어느날 뜬금없이 자기는 '포스트맨'이 되고 싶다고 하더군요.
    한동안 그러더니, 며칠전에는 'builder' 가 되고 싶다고 하네요.
    위에 글을 읽다보니 제 딸의 장래희망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궁금해지네요.
    꿈이 현실에 부딪혀 좌절되는 일 없이 자신이 원하는 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 찾아서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 13. 시리
    '06.4.4 3:56 AM

    아이에게 넌 커서 어떠 어떠한 사람이 되라고 말하기 전에...
    제가 먼저 변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작은 것들부터 바꿔 보는 중이에요.
    그런데... 좋은 엄마가 되는 길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
    수도 없이 후회하고 다시 다짐하는 과정들을 반복하면서 아이와 함께 커가는 느낌이 들어요. ^^

  • 14. 두민맘
    '06.4.4 8:42 AM

    진짜 좋은 엄마되기는 참 어려워요...
    제딸은 11살인데 그애를 보면서 '우리엄마도 저러셨겠구나!'하고 느낄때가
    한두번이 아니에요...
    성격 더러운게(?) 왜그리 저랑 똑같은지^^
    오늘은 울엄마께 전화한통 해봐야겠어요~~

  • 15. 민석마미
    '06.4.4 9:07 AM

    사람들 사이 따님 모습 정말 이뽀여 엄마모습과 아빠모습은 반반씩 쏙~
    귀티도 좔좔 ~ 어느백마탄 왕자님을 만날까 심히 궁금해요~

  • 16. 행복녀
    '06.4.4 9:18 AM

    저역시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무엇이 되어라하는 말을 한마디도 안했어요, 초등학교 입학하고 어느날 선생님이 장래희망에 대해 한사람씩 발표를 하는데, 남자는 대부분 경찰, 소방관, 등등~~
    여자는 선생님, 간호사등등....그런데 우리 아들은 키가제일 작아서 맨앞에 앉았는데, 소방관이 아버지 직업은 온데 간데 없이~~농구선수가 되겠데요 ~~헐...생각지도 않았어여, 그동안 많은 변화속에, 또 앞으로도 많이 변하겠지요, 물론 생각, 선택의 폭이 작아지겠지만요~~선생님처럼, 예쁜따님이 없어서 요즘은 쬐금 아쉬워요~~

  • 17. 야난
    '06.4.4 9:23 AM

    친구가 딸애에게
    "넌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이랬다는데, 친구가 말한 [훌륭한 사람]이
    어떤 기준인지, 어떤 조건들을 갖춘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가 이 말을 잊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
    "**야, 넌 꼭 훌륭한 사람이 될거야!"

  • 18. candy
    '06.4.4 9:33 AM

    제 아이는 커서 "형아"가 되겠답니다. 6세 아이의 정말 솔직한 꿈이죠?...ㅎㅎ

  • 19. 칠리칠리
    '06.4.4 9:47 AM

    보험회사 회계가 아주 어렵다던데.. 따님이 실력있나보네요 ^^
    예~전에 쓰신 희첩 읽었습니다..
    만약에 따님이 승진 스트레스 없이 일할 수 있도록 공부를 더 해서 얻어지는 바로 그 자격증이 있었다면,
    무시무시한 야근이 일상화되어 있었을 거에요..

    딸을 안스러워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지네요..
    근데 정작 딸 입장에서는 힘이 들더라도 '다들 하는 일인데 뭐' 하고..
    엄마가 안스러워하고 걱정을 해도, 좀 심드렁해지고... 그렇더라구요 ^^

  • 20. 땡굴이
    '06.4.4 10:55 AM

    샘님의 싸이트가 정감이 가구, 인기가 있는 이유를 생각해봤지요...
    직장생활도 해보셨구, 자식도 키워보셨구, 부모님도 모시구 사시구,
    남편 내조도 하시구,
    여러 인생경험이 많아서 인 것 같아요,,,,
    아마도, 따님도 샘님 못지 않은 좋은 사람이 될려구 여러 경험을 하시는 중일 거예요.(땡굴생각)

  • 21. 수아
    '06.4.4 10:58 AM

    샘글읽고 엄마생각나서 로긴했어요~
    결혼하고 애까지 낳고 사는 다 큰 딸 야근할때마다 저희엄만 아무리 늦어도 집에 들러가라며 간식거리니 손수 닳인 보약이며 챙겨주시거든요.물론 집이 가까우니 가능하기도 하지만..
    샘 따님 홧팅이여요 근데 정말 많이 힘들겠어요. 저도 회계파튼데 12월결산업무 이제야 마무리되가거든요--;

  • 22. 방울
    '06.4.4 11:41 AM

    5살 울아들 장래희망은 우체부아저씨입니다.
    왜냐고 물어보니까 편지를 배달해줘서 아저씨가 참 착하답니다.
    요녀석 키우면서 3남매 키우신 친정엄마 생각이 많이 납니다.
    아이 하나키우는데도 이렇게 힘드는데 셋이나 홀로 키우신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조금은 짐작이 가네요.
    엄마 욕심에 아이가 조금 더 편하고 일한만큼 보수도 넉넉한 직업을 가졌으면 하지만 그래도 아이가 좋아하고 만족감을 느끼는 직업이 최고이겠지요?

  • 23. 세아이맘
    '06.4.4 11:43 AM

    아이셋에 직장다니는 딸 걱정에 여태 엄마는 무엇을 만들어 가져오십니다.

    사십대 후반의딸걱정에 정말 엄마생각만하면 눈물이납니다

    제모습을 보고 엄마는 가슴이 얼마나아리셨을까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뛰어다니는 딸을보시면서...

  • 24. 제주바다
    '06.4.4 10:39 PM

    4월 25일까지는...야근 ㅇㅋ..
    중요한거는 일을 즐기는것도...

  • 25. 오키프
    '06.4.5 10:33 AM

    제가 아이를 키우면서도 예전에 우리 엄마가 어떠셨겠구나 하는 생각은 홀라당 잊고
    나만 힘들게 애 키우는것 같고 아이가 내 맘을 몰라주는구나 싶기도 하고...
    예전에 울 엄마가 어떤 맘이셨겠구나 하고 잠시 생각해봅니다.

  • 26. okbudget
    '06.4.5 11:41 AM

    중학생 딸아이 기르면서 매일생각합니다
    난 자라면서 어떠했는지~
    좀더 공부해서 엄마기쁘게해주는 딸할껄 그랬다는 아쉬움이 너무큽니다
    우리딸은 넘 기쁘게해주지만,너무열심히사는딸이 안스럽습니다
    샘따님,넘밝고 이쁘네요 샘과 친정어머님과의 관계도 부러웠는데~

  • 27. 강아지똥
    '06.4.5 12:20 PM

    자식을 낳아보니 이제서야....
    자식넷을 낳아 육아에 지금껏 손이 마를새 없이
    밥벌이 하시는 엄말 생각하면 마음이 아립니다.

  • 28. 블랙커피
    '06.4.7 9:47 AM

    내 딸아이는 못 만드는 사람, 머리 만지는 사람 하더니 지금은 춤추는 사람이래요. ^^ 아무거나 돈 많이 버는 사람.... 인상적이네요.

  • 29. 흰나리
    '06.4.14 1:14 PM

    언제나 엄마와 딸의 얘긴 가슴에 잔잔한 뭔가가 일어납니다.
    선생님께서 따님을 사랑하는 맘이 그대로 전해지는 맘 시린 따뜻한 얘기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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