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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왕성에는 달력에 음력이 나와있지 않아서 정확하게 월요일이 설인지 화요일인지도 잘 몰랐어요 :-)
한국 인터넷을 찾아봐도 설날 전후로 공휴일이 정해져 있으니 정확한 날을 알아내기가 어렵더군요.
거기에 더해서 명왕성과 시차까지 고려해야 하니...
이러한 전차로 그냥 시간 남는 주말에 뭘 좀 만들어 먹자! 하고 결심했던 겁니다.
약밥은 찹쌀만으로 만드는데 최소한 여섯 시간 정도 충분히 물에 불렸다가 그 다음에는 소쿠리에 받혀서 물기를 쫙 빼주어야 한대요.
분량은 찹쌀 네 컵 이었습니다.
약밥에 들어갈 부재료로는 대추와 밤이 대표적인데 명왕성에서 대추는 구하기가 힘드니, 대신에 건포도를 넣고, 밤은 먹기 좋게 익혀서 까서 포장해서 파는 걸 구입했어요.
그 밖에는 호두와 잣을 넣었어요.
인스턴트팟에 충분히 불려서 건진 찹쌀 네 컵, 각종 견과류는 손톱크기 정도로 작게 썰어서 대략 두 컵 정도 분량이 되게 넣었어요.
참! 잣은 지금 넣지 말고, 밥이 다 익은 후에 넣으라고 하더군요.
이유는 저도 잘 몰라요 :-)
아마도 쉽게 뭉게질 우려가 있어서일까요...?
그 다음은 밥물을 준비하는데, 찹쌀 네 컵이면 물은 세 컵이 들어갑니다.
거기에 흑설탕 두 큰술, 꿀 두 큰술, 간장 두 큰 술, 참기름 한 큰술, 계피가루 조금...
넣어서 물에 잘 녹인 다음에 솥에 부어줍니다.
10분간 인스턴트팟으로 고압 요리를 선택하면 끝!
압력으로 요리하는 시간은 10분이지만 솥 안의 압력이 저절로 다 빠질 때 까지 기다리면 거의 30여분이 걸려요.
김이 다 빠진 솥뚜껑을 열고 아직 뜨거운 약밥을 주걱으로 떠서 네모난 그릇에 퍼담습니다.
참, 이 때 잣도 넣어서 섞어주어요.
이렇게 담아두면 약밥이 식으면서 네모난 모양이 되어서 칼로 잘라서 먹기 좋게 됩니다.
다음은 식혜를 만들어 볼까요?
엿기름 가루를 찬물에 풀어서 덩어리가 다 풀어지도록 잘 저어줍니다.
한 시간 정도 가만히 두면 앙금은 가라앉고 윗물이 맑아져요.
그러면 인스턴트팟이나 보온밥솥 혹은 슬로우쿠커 등의 기구에 밥을 넣고 엿기름 가루 윗물을 부어서 7-9시간 보온 상태로 둡니다.
가라앉은 앙금이 흘러 들어가면 식혜 색깔이 검어지니, 살살 조심조심 윗물을 부어주고 한나절 보온상태로 두면 엿기름 속의 효소가 밥알 속의 탄수화물을 당으로 분해시켜 밥알은 쪼그라들고 물은 단맛을 내게 됩니다.
10시간이 넘도록 보온에 두면 과발효가 되니 적절한 시간에 보온을 중지하고 팔팔 끓여야 해요.
이 때 단 맛을 더해주기 위해서 설탕을 조금 더 넣습니다.
저희집은 초딩 아이들이 있으니 설탕을 넉넉하게 넣었어요.
맛을 봐가면서 원하는 만큼 넣으면 됩니다.
약밥과 식혜를 순전히 82쿡에 사진 올리려고 이렇게 담아보았어요 :-)
(난 언제쯤 82쿡 언냐들 처럼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될까요? ㅠ.ㅠ)
이 날이 아마도 설날 당일이었던가봐요.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는데 이런 사진이 카카오톡으로 날아왔어요.
현관문을 확인하시오! 라는 메세지와 함께 말이죠.
문 앞 바닥에는 남편이 주문한 것으로 보이는 아마존 물건이 있는데 - 그건 별 새삼스러울 일이 아니고 - 문 손잡이에 걸린 귀여운 미키마우스 쇼핑백이 문자의 주인공이 저지른 일 같아요 ㅎㅎㅎ
저녁 수업을 마치고 늦은 귀가를 해보니 남편과 아이들이 쇼핑백 안에 든 것을 꺼내보았더군요.
너무 예쁘고 앙증맞은 약과와 조청에 절인 생강 (오른쪽 귀퉁이에 살짝 보이시죠?)
약과는 저희 남편이 무척 좋아해서 제가 몇 번이나 만들어 보려고 마음먹었다가, 그 어마무시한 조리과정에 질려서 아직 한 번도 시도는 해보지 못한 음식입니다.
찹쌀을 반죽해서 모양내서 튀겨서 조청에 담궜다가...
그 와중에 견과류로 장식을 얹으라질 않나...
도저히 제 솜씨로는 만들 엄두가 나지 않더라구요.
그런 귀한 음식이 현관문에 걸려 있는 살기 좋은 우리 명왕성!
쇼핑백 큰 거 보셨죠?
그 안에는 이런 것들이 더 들어있었어요.
집에서 손수 만든 단팥빵과 식빵 - 탈을 쓴 알고보니 카스테라... (ㅋㅋㅋ)
비싼 초코렛 한 박스...
다정한 손글씨로 신년축하 카드까지...
이 모든 것이 바로 두콩이 님의 짓(!) 이었어요.
이리 고마울 수가...
나는 딱히 잘 해준 것도 없는데...
감동받고 고민하고 하다가
저도 똑같이 갚아주기로 했어요.
왜 누가 싸우면 옆에서 이렇게 말하면서 말리잖아요?
"야, 참아, 참아! 안참으면 너도 똑같은 사람밖에 안돼!"
ㅎㅎㅎ
저는 참지 않고 똑같은 사람이 되려고 똑같이 되갚아주기로 결심했어요!
허나...
손글씨를 정성스럽게 쓰기에는 아이들 아침 먹이고 도시락 싸느라 너무 바빠서 그냥 인터넷으로 찾은 그림 하나 붙이고 언능 타이핑한 쪽지...
(게다가 제 컴퓨터에는 예쁜 한글 글씨체가 없어서 저리 꼰대스러운 명조체! 으아~~~)
단촐하게 담은 것이라곤 약밥 한 덩이와 식혜 조금 뿐...
아...
저는 똑같이 갚아주려 해도 그럴 수준이 못되는 명왕성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ㅠ.ㅠ
그래도 너무 낙심하지 말고 방법만은 똑같이 :-)
아침에 저희 아이들 학교 데려다주고 출근하면서 들렀더니 마침 아이들 등교시켜주고 장이라도 보러 갔는지 집에 아무도 없더만요.
그래서 문 앞에 쇼핑백을 놓고 사진을 찍어서 카카오톡으로 보냈어요.
귀하도 현관문을 잘 살펴 보시오!
하고요...
ㅋㅋㅋ
올 한 해 이 집에도 행복한 웃음 소리가 언제나 창문 밖으로 넘쳐나라고 마음으로 빌기도 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