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년대에 태어난 세대는 저마다 미제에 대한 추억이 있다 . 지금처럼 수입과 유통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에 , 미군 PX 를 통해 흘러나온 미국산 상품이 은밀하게 거래 되었는데 , 동네마다 방문판매 형태로 큰 가방 들고 다니며 물건을 파는 ‘ 미제 아줌마 ’ 가 있었다 .
좀 더 다양한 상품을 사려면 남대문 수입상가가 있었으나 , 당시 젊은 아기 엄마들이 드나들기에는 교통편이 불편해서 , 미제아줌마나 동네 미제잡화상에서 미국 상품에 대한 욕구를 충족할 수 있었다 .
여자아이들은 어린 시절 머리에 꽂았던 ‘ 구디핀 ’ 이나 머리방울로 , 남자아이들은 스팸이나 ‘ 동킹콩 ’ 게임기 ( 이건 일본산이지만 ) 로 , 엄마들은 냄비나 화장품 , 아빠들은 깡통 후르츠 칵테일과 레이지레몬으로 만든 칵테일로 , 미제가 주는 여유로움과 풍요로움을 느꼈으리라 .
좀 먹고 살만한 집이라면 엄마가 직접 해주는 이유식 대신 , 거버 이유식을 먹였던 시절이었다 . 간식으로 이따금 미군 씨레이션을 먹기도 했는데 , 두툼한 비닐을 뜯고 초코케익이라도 나오면 기분이 좋았더랬다 .
어린 시절에 둘째 이모부가 워낙 부자로 사셔서 , 그 넓은 ‘ 양옥집 ’ 에 놀러가면 , 이모는 나와 동생에게 미제 과자를 듬뿍 주셨다 . 이모집 거실장에는 미니어처 양주가 수 백개가 진열되어 있었고 , 그 옆에는 빨간 체리병조림이 있었다 . 이모의 화장대에는 색색의 레브론 립스틱과 메니큐어가 미제의 위용을 자랑하며 사열했다 . 그 집에 가면 부내나는 인테리어에 미제 소시지를 즐기며 자본주의의 맛을 어린 나이에도 느꼈던거 같다 .
90 년대 중반에 신촌에 있던 그레이스 백화점 지하 1 층에는 이 미제잡화상들이 줄지어 입점했었다 . 학교 수업 끝나고 지하철을 타려면 반드시 지나가야하는 길목에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상품들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 짝사랑하던 오빠가 좋아하던 랑콤의 ‘ 트레조 ’ 향수 ( 이건 프랑스제 ) 를 뿌리면 나 좀 봐주려나 .. 해서 샀던 곳도 , 예뻐지려는 욕망이 가장 컸던 20 대 초반에 필요로하는 화장품들을 구입한 곳도 바로 그레이스 백화점 지하 미제골목이었다 .
카츄사로 복무중인 선배가 사주는 미트볼만 잔뜩 토핑된 피자도 , 상큼한 스트로베리 마가리타도 미제에 관한 달콤한 기억이다 .
미제에 대한 선망은 풍요로웠던 순간의 추억이다 .
콘킹 소시지나 스팸 , 돌 파인애플 통조림도 , 이제는 저가상품으로 인식된 레브론 화장품도 몸에 좋을리도 없건만 이상하게 미제에 대해선 거부감은 커녕 반가운 마음만 든다 .
그래서 , 코스트코에 가게 되면 정우성을 실물로 영접한 사람들처럼 , 아무 저항 없이 지갑을 열어 마음껏 미제를 퍼담게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
오늘 저녁은 이 미제선망의 정점에 있는 음식을 해보았다 . 저번 하와이 여행에서 사온 맥코믹 칠리 가루에 소고기를 듬뿍 넣고 , 홀토마토와 키드니빈스를 넣어 조리한 후 칠리라이스를 해먹었다 .
재료 ; 갈아놓은 소고기 550g( 원 레서피는 450 이나 아들들 땜에 100 그람 더 넣었음 ), 다진 양파 두 개 분 , 다진 마늘 1Ts, 고추 다진거 약간 ( 생략 가능 ), 홀토마토나 다이스드 토마토 450g, 키드니빈스 450g, 맥코믹 칠리 시즈닝 믹스 ( 국내에서도 검색하면 구입 가능 , 남대문 수입상가에서도 예전에 구입한 적 있음 )
기름을 두르고 달군 냄비에 양파를 볶는다 . 양파가 반투명해지면 , 소고기를 같이 볶는다 .
고기가 익으면 토마토와 키드니빈스 , 칠리시즈닝 , 고추 , 마늘을 넣고 끓인다 .
끓고 나면 약불로 5 분 정도 더 끓이고 밥에 얹어 먹는다 . 간단 !!!
미제는 한식처럼 다듬고 손질할 필요도 없으니 더욱 사랑할 수 밖에 .
* 남대문 수입상가 E 동 , 연희동 사러가 쇼핑센터 1 층에 가면 아직도 이 추억을 마주 할 수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