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얼굴에 늘어난 주름이나 떨어지는 체력에서 느껴지지 않는다.
요즘 아줌마들은 좋은 화장품으로 평소에 부지런히 관리를 해주는 것도 한몫하는 데다 다들 운동을 조금씩이라도 하고 있으니 중년이라고 중년 티가 나는 사람도 별로 많지 않은 듯..
가까이 있는 글씨를 읽으려면 조금 멀리 떨어뜨려 보아야 하는 정도의 수고로움으로는 나이 듦을 느끼기엔 역부족이다.
그런데, 이 나이 듦은 혀에서 오는 것 같다. 어릴 때부터 편식이 심해 가리는 음식이 참 많았는데 나이 들수록 산나물이라든지, 시래기라든지 하는 할머니들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이상하게 먹고 싶어 진다.
고마운 분이 늙은 호박을 한 덩이 주셨는데 죽으로만 해 먹기에는 양이 많아서 뭘 하나 고민을 했다.
그때 불현듯 생각난 늙은 호박전.
예전 다니던 회사의 우리 부서 본부장님이 가끔 점심 회식에 데려가 주시던 안동국시집. 콩가루를 넣고 반죽한 국수라 고소한 맛이 있지만 끈기가 부족해 툭툭 잘 끊어지던 국수. 거창한 양념이나 고명 없이 담백한 사골육수에 부추김치와 먹던 슴슴한 음식. 그 집에 가면 꼭 같이 주문해서 먹던 늙은 호박전.
전은 짭짤한 간장에 바삭한 맛으로 먹는데 늙은 호박전은 달큰하면서 부드러워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디저트라고 할 수도 없고, 반찬이라고도로 할 수 없는 어색한 맛. 그런데, 비가 오면 이상하게 생각나는 그 슴슴한 맛.
안동국시처럼 화장 안 한 여인의 민낯 같은 그 수수한 호박전의 매력이라니.
경상도 음식 맛없다고 한결같이 이야기를 하는데, 그 슴슴함을 맛보면 그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다들 한껏 멋 부린 모임에 혼자 낡은 청바지에 흰 티를 입고 빛나는 사람, 그런 사람 같은 경상도 음식.
비가 오니 늙은 호박을 잡아 한 번 부쳐봅시다.
재료 : 늙은 호박, 밀가루, 튀김가루(부침가루도 됨), 소금, 설탕(호박이 달아서 생략했지만 넣는 레시피가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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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호박을 잘 씻어서 도마에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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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박을 잘 씻어 반을 가른 후에, 초대형 숟가락으로 긁어낸다. 일반 수저도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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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무거운 식도로 자르면 잘 잘라진다. 껍질이 딱딱해서 과도로 벗기다 그냥 중식도로 깎아냈음. 필러로 하는 분들도 있던데 워낙 껍질이 단단해서 그냥 칼로 벗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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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손질을 마친 후 먹을 만큼만 두고 냉동실로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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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채 썬 호박 색상이 가을 은행잎 같다. 여기에 소금으로 밑간을 한다. 대충 반수저 뿌려 놓고 10분 정도 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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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물기가 촉촉이 생기면 버리지 말고 거기에 밀가루와 부침가루를 적당히 섞는다. 물은 붓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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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 정도의 반죽이면 적당하다. 물은 호박 상태에 따라 넣기도 하고 안 넣기도 하는데, 이 정도 점도를 만들기 위해 나는 약간 물을 넣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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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잘 달궈진 팬에 기름을 충분히! 두른다. 여러분~ 부침개는 기름 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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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도 부쳐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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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도 한 판 부쳐보았습니다.
아이들은 먹지 않겠다고 해서 앞집에 한 장 가져다 주려 했는데, 2호가 맛을 보더니 눈이 커지고 1호도 덤벼서 결국 늙은 호박의 40%를 부쳐 먹었답니다.
은은한 달콤함, 설컹한 호박의 소박한 맛, 할매의 손맛이 나는 늙은 호박전을 한 번 부쳐보세요. 막걸리는 옵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