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쓰럽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순간 솟구치는 열불에 빽~ 소리라도 질러주고 싶고…….
그 나이 때 나도 그랬지만 청소년기 아이를 더구나 휴일에 깨우는 건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하는 것 같다.
하나 가지고도 나는 이렇게 여러 감정이 오가는데 어머니는 셋씩이나 어찌 깨우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어머니 마음으로 K를 깨워보았으나 못 일어나더라.



어수리나물과 고춧잎 무침, 쌀로 만들었다는 고기 맛 주물럭.
어수리나물 향도 좋았지만 제철이 아닌데도 나온 고춧잎 고추장무침도 입맛을 돌게 했다.
올해 텃밭 농사에선 고춧잎도 좀 따먹어야겠다.

결국 K를 위해 준비했으나 K 없는 아침을 H씨와 둘이 먹고 나는 도서관에 갔다.
그깟 잠을 못 이겨 끙끙대는 게 마뜩찮아 그냥 둘까했지만
그래도 늦게 일어나 허둥대다 스스로 자책하며 혹여 상처 입을까 자리 잡아주러 도서관에 갔다.
9시가 넘으니 급격히 빈자리가 줄더니 10시쯤엔 대기자가 100명을 넘더라.
요즘 아이들 참 공부 열심히 하는 것 같다.
가져간 책 보고 있는데 11시나 되어 전화 왔다. 일어나 씻고 있으니 오라고.
그렇게 11시 넘어 K는 도서관에 가고 H씨와 나는 주말농장 텃밭에 갔다.
거름도 주고 감자 심을 밭이랑도 만들었다. 내친김에 좀 이르지만 상추씨도 뿌렸다.
늦은 아침 탓에 점심은 됐고 5시쯤 와서 저녁 먹고 기숙사 간다는 녀석에게 맞춰
이른 아침을 먹은 우리도 점심은 건너뛰고 저녁 준비를 했다.



전날 마트서 좀 물이 안 좋은 천 원짜리 부추 한 단 사다 만든 부추 3종 세트.
부추겉절이, 부추 부침개, K를 위한 특별식 부추불고기 - 불고기용 소고기를 애호박과 후추만 뿌려 굽고
부추 겉절이와 내었다. 오랜만의 고기라서 그런지 ‘맛있다’며 부추까지 다 먹었다.

고구마는 피자용 치즈 뿌려 구웠다.

H씨와 나는 아침에 먹고 남은 나물들 몰아넣고 돌솥 아닌 스텐냄비비빔밥.
묵은 김치 썰어 넣고 밥, 나물을 얹어 중불에서 달달달 달궈 냄비 째 놓고 비볐다.

진정한 비빔밥의 종결자, 저 누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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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치거나, 혹은 부치지 못한 편지> --- 참는다는 건.
K에게
“하기 싫은 무언가를 할지 말지 고민하고 미적거리는 걸 털어내기가 쉽지 않은 일이긴 한데 어쩌겠니?
미적거리고 고민한다고 해결될 게 아니라면 그냥 해야지.”
일요일 못 일어나는 널 보며 드는 생각이었어. 사실 더 자게 놔두고 싶었지만
늦게 일어나면 너 스스로 기분만 나쁘고 꿀꿀한 기분으로 지낼게 뻔한데 그냥 둘 수가 없더라.
K야
언젠가 얘기한 것처럼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야.
참는다는 것도 그래. 선택하는 거야.
잠이 쏟아지거나 일어나긴 해야 하는데 일어나긴 싫을 때,
좀이 쑤시고 지겹고 힘들고 때론 고통스럽기 까지 할 때,
‘내가 이런 상태에 있구나.’ ‘선택의 순간이구나.’ 하고 바로 선택해 버리는 거야.
정 선택 할 수 없다면 동전 던지기도 괜찮아.
비단 잠뿐 아니라 살다보면 그런 순간들이 있거든
힘들고 고통스럽고 피하고 싶고 때론 욕심에 빠지는 순간.
참는다는 건 ‘내가 그런 상태구나.’ 선택의 순간임을 알아차리는 거다.
온갖 욕구들로부터 순간순간 선택하는 과정, 알아차리는 과정이야.
고3, 네 말대로 체력은 저질이고 할 건 많고
게다가 그만 하고 싶은 생각과 환경까지 온갖 상황이 널 괴롭힐 거야.
딱히 고3때뿐 아니라 인생 살면서 그런 순간임을 알아차리고 선택하는 걸 익히면 많은 도움이 될 거야.
물론 그것도 연습하지 않으면 그냥 괴롭고 힘들어 할 줄 만 알지
순식간에 선택해 버리고 떨치기는 쉽지 않아.
잠에서 깨는 것부터 연습해 보렴. 일어나기로 한 시간에 그냥 일어나기.
오늘도 행복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