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피 먹고 싶다는 H씨 말에,
“가위, 바위, 보?” 하며 주먹 쥔 손을 K 앞으로 쭉 내밀었다.
동그랗게 눈을 뜬 K는 “난 안 먹어.”라며 헤실헤실 웃는다.
‘자기 시키지 말라’ 는 뜻인 줄 알지만 모른 척 뻗은 손을 거두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넌 아침 준비 안했잖아”라는 H씨 말에 “알았어.” 선선히 대답하고
빈 그릇 개수대에 가져가더니 ‘(모두) 커피?’하고 주문까지 받는다.
“아빠는 진하게 엄마는 연하게”하는 주문이 끝나고
K가 내려온 아메리카노 두 잔.
말린고구마줄기와 시금치, 마늘순무침, 김으로 식사를 끝내고
햇살가득한 거실에서 커피를 마셨다.
느릿느릿 독서실 갈 채비하는 K에게, “태백산맥은 다 읽었니?” 묻자 “아직” 한다.
바닥에 태백산맥 마지막 권 책날개가 100여 페이지 남아에 접혀있다.


개학을 앞둔 K에게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 12권 전집을 선물했다.
작년 추석 지나고 태백산맥 10권을 주며 ‘틈틈이 읽어라’ 했더니,
당부를 아주 잊지는 않았는지 그래도 5개월여 만에 마지막 권을 보고 있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이렇게 3부작은 이미 고전의 반열에 든 책이라고 생각해.
1학기 중에 아리랑 읽고 여름방학과 2학기 때 한강 읽으면 수능 전에 다 볼 수 있을 거야,”
“그럼 훌륭한 고3을 보내게 되는 거지. 어때?”라고 하자. 알았다 대답한다.
내친김에 대학 때 한 번 더 읽고 나중에 서른 넘어서 한 번 더 읽어보라고 하자
헤헤 거리며 이것도 ‘알았다.’는 시늉을 한다.
‘웬일이래? 늘 싫어, 왜를 달고 살더니’ 하며 살짝 놀리고 싶었으나 꾹 눌러 참았다.
문학이나 역사가 인간과 삶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통찰력을 키운다면 조정래의 3부작은
소설로서 개별군상을, 역사로서 삶을 보고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작품이란 평은 하지 않았다.
스스로 보고 느끼고 깨달아야 하는 즐거움이기에. 깨달음이 없다면 그저 그런 대하소설일 뿐 일 테니…….
“뒤로 갈수록 슬프지 않아?”라는 말에
“처음부터 슬펐어!” 한다.
“그래 슬픈 역사지.”라고만 하고 말았다.


양념간장에 머무린 마늘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