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월 대보름,
내겐 아버지 생신으로 기억되는 날이다.
그 까닭인지 우리 집 정월대보름 아침상은 연중 가장 화려했다.
정월 대보름,
출근해 열어본 첫 메일이 부고였다.
회사 후배의 부친상이다.
드라마에나 있음직한 사연을 지닌 녀석이다.
부인이 임신 중에 쓰러져
뇌수술을 했고 손발에 마비가 와 거동을 못했었다.
그나마 천만다행으로 아이는 3개월 후 건강하게 태어났다.
‘그만그만해요 그래도 좀 나아져요.’ 부인의 안부를 물으면 늘 같은 대답을 하던,
아들 크는 게 젤 신기하고 좋다는 녀석.
명절 때 부모님께 죄송한 거 빼곤 괜찮다며 씩씩해 하던 녀석.
오늘 내일, 한동안 많이 울겠다. 시름하나 더하겠구나 싶다.
이제 녀석도 대보름이면 아버지 생각을 더 하겠구나 싶다.
우리 집 대보름은 호두와 땅콩 같은 부럼도 아니고
오곡밥, 나물밥상도 아닌 참기름에 재 구운 김쌈과 콩나물냉채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형편에 따라 부럼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했으며
오곡은 사곡이기도 삼곡이기도 하다 그냥 찰밥이기도 했었고 나물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찌된 연유인지 어머닌 대보름 아침 첫 밥술은 꼭 김에 싸먹고 밥 먹으라 하셨다.
콩나물냉채는 설에 못 본 아버지 형제들이 오시면 내 놓고 더러 싸주기도 했던 음식인 까닭에 오래 기억하나보다.
‘이번 간단히 콩나물냉채라도 조금 할까!’ 고민하던 대보름 아침은,
정작 당일엔 잊고 생고구마 한쪽과 메밀차로 대신했다.
그래도 우연인지 땅콩과 검은콩 한줌이 부럼을 대신한다.
아버님 돌아가시고 대보름은 대보름이 아니게 되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그냥 지나치는 많은 날들 중 하나가 되었다.
올해처럼 주중엔 더더욱 혼자 먹는 아침이니 더 그러하다.
출근 전까지 까맣게 잊고 있어 H씨와 K의 아침은 어땠는지 물어보지도 못했다.

호박고구마, 따뜻한 느낌 탓일까? 가족을 생각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