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람이 옷사이로 파고 들어와 참 춥더군요.
낮에 도서관 가는 길에 카메라 들고 나갔어요. 며칠 전 막내가 그러더라구요..
엄마 요즘 아파트 주변이 참 이뻐요.. 심심하면 나가서 걷고 그러세요. 아마도 요즘 엄마 심정을 눈치채고 그러듯이~
춥지만 두툼하게 옷을 껴입고 저희 집 바로 옆에만 나가도 가을의 끝자락임을......

아파트 현관에 노란 국화...
역시 국화는 노란색에 제격인 것 같아요.
첨에 서정주 시인이 왜 국화를 누님같은 꽃이라 했는지 모르겠더니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요.....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서 서고 보니
왜 시인이 누님같은 꽃이라 불렀는지를...


그렇게 누님같은 꽃을 바라보면서 저물어가는 가을이....
그리고 떠나버린 누군가가 참 그립습니다.

아파트 현관 바로 옆에 감나무 한 그루가 있는 걸 처음 봤어요.
요즘..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나가는 우리네 삶...
비가 오는지.... 내 집 앞 자연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고 무얼 보고 사는 것인지....
문 앞만 나가도 이렇게 눈 부신 아름다움이 우리를 향해 손짓하고 있는데도 말이죠....

어제 부는 바람을 따라..... 얼마 남지 않은 나뭇잎은...초연히 그 몸을 내어주고...
빈 가지엔 미처 채우지 못한 희망들만 무수히 남겨진 듯~

바람을 따라 바닥에 뒹구는 낙엽들~
떠나 버린 바로 그 곳에서...... 조용하게...그렇지만 아름답게...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를 건네고 있더라구요.


푸른 솔과 단풍..그리고 앙상한 나무가 모여앉아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함께 살아야 하는 삶에 대하여~



차가운 바람에 손이 곱아 자꾸 움츠려들었지만...
그 어떤 힘에 이끌려 낙엽을 줍기 시작했죠.

빨갛고 노란 잎들..
큼직한 잎, 작고 보드라운 잎, 그리고 퇴색이 되어가는 잎들까지도 눈물이 나도록 소중하게 느껴졌거든요.

저마다의 의미를 제게 소곤소곤 속삭여 알려주고 싶어하는 것 같았어요.


자연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앞에서 사람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임을... 온 몸으로 깨우친 한해였습니다.
그걸 가르쳐 준 2010년이 시린 바람으로 끝자락을 향해 갑니다.

무엇이건 꽉꽉 채우고도 성이 차질 않아서..... 미어터지도록 채우는 이 탐욕스러운 일상속에서
낙엽, 그리고 공원의 빈 벤치는....
우리에게 삶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잘 비우는 것임을 일러주는 듯 합니다.

그 짧은 산책을 통해
마음이 잠시 평온해짐을 느낍니다.
역시 자연은 좋은 친구입니다. 우리가 함께 하고자 한다면 언제든지~


그리곤 도서관에 가서 따뜻한 햇볕 가까이 자리를 잡고....
책을 읽다 잠시 졸다...그리곤 다시 책을 보다 집에 돌아 오니 언제나 같은 일상들이 절 기다립니다.
저녁 준비, 그리고 아이 태워오기....
요즘 자는 시간이 일정치 않습니다.
어떨 땐 통 잠을 잘 수 없기도 하고..또 어떨 땐 내처 잠이 빠져 혼절한 사람마냥 자기도 하고....
어제는 일찍 잤는데도 불구하고 아침 여섯시에 겨우 일어났습니다.
근데도 더 피곤한 걸 보면 참 이상하죠?
아침 준비에 마음이 바빠집니다..
순두부랑 우거지로 순두부찜 한가지를 해 놓고...
대구탕도 끓입니다.
요즘 시원한 대구탕이 참 좋더라구요.


식탁에서 먹다남은 김치 자투리는 한데 따로 모아두었다가 김치국이나 김치찌개를 끓이거나 김치전을 구워먹는데
오늘은 김치를 밑에 깔고 고등어를 올려서 지졌습니다.


시원한 대구탕.....
살이 어찌나 부드러운지 몰라요.

어제는 소고기에 찹쌀을 묻혀서 구운 소고기찹쌀구이를 해주었는데...
오늘은 돼지고기 고추장 양념한 불고기를 가지고 찹쌀에 묻혀 구워 보았어요.
이틀 전의 얘가....

이렇게 변한 거죠..
완전 다른 느낌이죠?

양상치, 오이맛고추, 빨간 파프리카..오늘의 채소군단...
참 사랑스러운 백조접시에 담겨지니 더욱 이뻐보입니다.
이 접시 탐내시는 분들 간혹 계셔서 어디서 사냐고 물어보시는데...
남편 러시아 출장길에 사온 그릇인지라.... 정확한 출처는 잘 모릅니다.
아마도 이쁜 그릇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서 러시아 어느 거리에선가..샀을... 그 마음만 정확하게 기억하거든요... ㅎㅎㅎ

감자 한 개, 마늘 3쪽, 청-홍고추랑 함께 간장에 조리고....

학교 갈 시간이 바쁜 막내가 수저통에서 수저를 꺼내는 손길이 분주합니다.


굴무침은 너무 짜게 간하면서 좋지 않으므로 싱겁게 간해서 얼릉 먹고 치워야 하므로
요새 매일 밥상에 빠짐없이 등장합니다.

얼갈이를 삶은 우거지를 밑간양념해서 달달 볶다가... 순두부 넣고..... 끓인 후에...간을 하고...
거의 다 되어갈 무렵에... 계란 한개를 풀어 줄알치듯 위에 올린 순두부우거지찜입니다..
물은 하나도 안 넣었지만 순두부 자체에서 나온 물이 있어 타질 않고 찜을 만들 수 있지요.. 다만 불을 약하게 해야겠죠?

늘 식탁에 등장하는 국물 떠 먹는 개인 미니 볼접시~


이렇게 아침 밥상을 끝내고....
막내를 태워다 주고 볼 일보러 가겠다던 남편의 전화가 울리고...
나갈 준비를 하고 기다리라고....
조조 영화를 보여주겠답니다.
그렇게 해서 조조로 하비의 마지막 로맨스를 보았습니다. 남편 손잡고 영화관에 가서...
되도록이면 표시내지 않으려고 해도 이렇듯 가족은 눈빛만 봐도...표정만 봐도 그 속내를 훤히 들킬수밖에는 없는 그런 거인가봐요.
남편도 요즘의 제가 많이 걸렸던가봅니다.
얼마전에 읽은 신경숙씨의 소설...지금 우리 곁에 누가 있는 걸까요란 소설이 떠오릅니다.
삼십대 부부가 돌도 채 지나지 않은 어린 딸을 보내고 힘들어하는 이야기였어요. 같이 다니던 부부동반 모임에도 각각 나가고, 아내는 아이를 그렇게 떠나보내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회사 다니고 승진을 하고..모임에 나가는 남편을 견딜수 없어 각방을 쓰며 헤어싶어 했던 아내의 이야기... 그 아내도 별로 좋아하지도 않던 산을 다니며 차라리 추락되거나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딸아이가 떠나던 그날도 아마 눈이 왔었다고..
어느 눈 오던 날 밤...남편이 부르는 소리에 잠에 깨어 부부는 문 두드리는 소리로... 다시 욕조에 물 소리로 ... 깨어나고 자기를 반복하다 아이를 떠나보낸 날임을 기억해내고 남편은 남편대로 힘들어하느라 오히려 내색하지 않고 지냈음을 알고 화해를 하죠.
그리고 그 날 밤 부부는 아이를 떠나보내고 처음으로 같이 잠자리에 들어요.
그리곤 새 생명이 다시 찾아옴을 알게 되지요...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이 참 아팠어요.
큰 아이를 그렇게 보내곤 남편에게 다들 저에게 잘해주라고 그랬다나봐요.
하지만 한편 생각하면... 남자들이 더 아픔이 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요. 눈물을 보이면 안된다고 키워졌던 옛날의 남자들은 더욱더~~ 그런 상황에서 남편이나 아내나.. 어떤 아픔이 더 클지 어떻게 가늠한 수 있을까요?
그래서....사실 더 이야기를 못하겠어요... 솔직하게 속내를 꺼내 놓으면 더 힘들어질까봐서~~
남편은 늘상 바쁜 사람예요. 아이 셋을 키울 동안 유치원, 학교 행사에 제대로 온 적 별로 없을 만큼 바쁘고 일 욕심도 엄청난 사람인지라 어떨 땐 남편이 없는 듯한 착각에 빠질 때조차 있을 정도로 그렇게 삼십년을 함께 살았죠.
어떨 땐 제가 그렇게 농담을 할 때도 있어요.
아마 당신은 내가 응급상황이 발생해서 병원에 실려가.... 부인 위급상황인데요..하면서 병원에서 전화가 오면..아마 이렇게 말할 걸? 제가 좀 바쁩니다..그러니 조금만 기달려달라고 해주세요....
그런 남편..사실 오늘도 무척 바쁜 것 같았어요.
영화관에 사실.... 별반 관람객이 없어 망정이지.... 영화보는 내내 급한 업무 전화가 계속 울리는 듯....
나갔다 들어왔다를 몇번이나 반복했어요.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상황이 되면 화가 났어요.
결혼 기념일 어디 좋은 데 가서 외식하러 가기도 해놓고도.... 한 시간..두 시간 약속시간을 변경하고...
어디 같이 여행가기로 한 날도 그런 식일 때가 많아서 기다리다 심통이 나고 결국엔 기껏 좋은 데 가서 싸운 사람처럼 말 한 마디 안하고 꾸역꾸역 밥만 먹고 온 적도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다 감사해요. 바쁜데도 불구하고 마음 써주는 것이.. 안쓰럽고 고마울 뿐이에요.
영화를 그렇게 어렵사리 같이 보고.... 남편은 절 보고 머리하고 들어오라고 제가 다니는 미용실에 내려주고 일보러 갔어요.
머리 안해도 된다고 하니깐.... 굳이 하고 오라면서 돈 건네 주면서 말이죠.
근데 머리 안 했어요.
파마하고 머리 손질하는 돈..참 아깝고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더라구요.
그리고 집 근처에 있는 카페거리를 혼자 걸어다녔어요. 슬렁슬렁~~

카페 거리에도 가을이 무르익고 있더군요.
이 카페 거리에도 온통 아이와의 추억이 많아요....
친구처럼 같이 수다떨고 맛집 다니고 그러는 것 무척 즐거워했던 아이랑 함께 자주 쏘다니던 그 곳에
저 혼자 그 아이를 그리워하면서 저 집에선 그 아이가 이런 말을 했지... 이건 다른 사람들 맛있다고 해서 왔더니 별로네..
하면서 조잘거리던~~~


때론 그 추억들이 너무 마음이 아파서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하지만....
그렇지만 잊지는 않을 거에요.. 추억속에서 어쩜 우린 더 서로 애틋할 수도 있을테니까요.

가족들끼리도... 애써 그 추억을 외면하고
그 아이의 이야기를 꺼내면 힘들어하기 보담... 함께 웃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언제까지나 그 아이의 엄마인채로 말이죠.

머리도 하지 않고 돌아오는 길에 탄천 산책로를 따라 집까지 한시간 가량 걸어왔어요.

이 길도 분당 정자동으로 수지로..... 죽전으로 해서...
올 한해...참 많이도 걸어다니던 길이에요.
그 아이를 중환자실에 눕혀 놓고 막막한 마음에 무작정 걷기 시작해서...
그 아이를 보내고 나서도 한동안 이 길을 매일 매일 걷고 또 걸으면서 생각도 정리하고 마음도 정리하고 그랬거든요.


아무렇게나 피어난 이름없는 들꽃들...

작고 사소한 풀 포기 하나이지만...
절 위로해주고 다시 힘을 내라고 해주던 위대한 친구들이었죠.













그렇게 한 시간을 걷다보니.... 이상하게 다시 살아갈 힘이 생기는 것도 같아요.
집에 거의 다 왔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