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구마 많이 캤어?”
“한 박스쯤요.”
“올핸 고구마 알이 많이 안 찼데...” 주말농장 주인과의 대화다.
이른 봄에 상추와 시금치 씨를 흩뿌려 한 차례 갈아 먹은, 텃밭 한 두럭에 5월 중순 고구마를 심었었다.
고구마는, 장마 시작 후부터 여름 내 고구마 순 잘라다 김치도 담고 볶아먹고 지져먹고 무쳐 먹었던
고마운 식재료다.
“이건 좀 크네.”
“여기도 있네.”
“올 핸 고구마들이 다 똑바로 길게 서 있어.”
“그러게 땅이 그런 건지.”
“애~ 호미에 찍혔잖아. 조심해요.”
H씨와 이런 얘기들을 주고받으며 한 두럭의 고구마를 캤다. 커다란 과일 상자로 하나쯤 된다.
예년에 비해 크기도 좀 작고 소출이 많지 않다.
한쪽에 걷어낸 고구마 줄기도 잔뜩 꺾었다. 삶아 건조기에 말릴 생각이다.

“주말농장 아줌마는 00씨가 많이 어린 줄 아나봐?”
걷어온 것들 정리하고 있는데 H씨 말한다.
고구마 많이 캤냐고 반말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그냥 그러려니 해.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억울하지 않아요?”
“뭐 별로. 그래도 나보다 많잖아. 어리지 않은 게 다행이죠.”
작은 체구에 짧은 머리, 언뜻 보면 어려 보이는 얼굴 탓에 종종 당하는 일이다.
왜 반말이냐고 싸울 수도 없고 나이를 이마에 새기고 다니는 것도 아니기에 ‘그러려니!’ 하기도 하지만
사회적 지위나 나이에 나타나는 존댓말의 가부장성을 더 거부하기에 아무 감정 없이 넘어가곤 한다.
유별나게 존대가 많은 우리말은 잘 쓰면 사람에 대한 예의와 존중으로 비추지만
잘못하면 권위적이고 재수 없는 꼴이기 십상이다.
요즘 드는 생각은 말이란 건, 그저 순한 말이 능사가 아니라 순하게 들을 줄도 알아야 하는 것 같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들으라고
“말이 짧다고 고까워하지도 말고 귀에 거슬린다고 노여워 말고
그저 그러려니 걸러듣고 새겨들어야 귀가 순해진다.” 했으니…….
#1 고구마 샐러드라고 해야 하나



단호박 쪄서 으깬 것과 새순 무침, 삶은 달걀에 생고구마 썰어서 샐러드 한 접시 담고
여름에 절인 깻잎과 고등어 찜에 김치도 한접시 담아내니 밥상이 좌청룡 우백호 안부럽다.
먹다 남은 두부부침은 고추장풀어 지졌다. 살짝 부추까지 얹으니 재활용인지 아무도 눈치 못챘다.
#2 고구마 튀김과 고구마 줄기 말린 것과 무침




#3
대추, 고구마 넣고 현미밥 짓고
호박나물 한 젓가락 얹어 양념간장에 비빌비빌 해서 한 숟가락 뚝!



#4
기분 좋게 비워진 그릇들

어쩌면 세상사 귀가 순해야 입도 순해지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조로하는 갑다. 벌써 귀가 순해지려 하니 ㅋㅋ
하긴 순해져야 할게 어디 귀와 입만 이겠나. 눈은 어떻고. 코인들 빠질쏘냐.
눈코입귀가 모두 순해지면 저렇게 깨끗이 비운 그릇처럼 사는 게 담백해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