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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고구마 이야기 - " 내 귀가 순해져요 "

| 조회수 : 9,497 | 추천수 : 92
작성일 : 2010-10-27 17:17:05


“고구마 많이 캤어?”
“한 박스쯤요.”
“올핸 고구마 알이 많이 안 찼데...” 주말농장 주인과의 대화다.

이른 봄에 상추와 시금치 씨를 흩뿌려 한 차례 갈아 먹은, 텃밭 한 두럭에 5월 중순 고구마를 심었었다.
고구마는, 장마 시작 후부터 여름 내 고구마 순 잘라다 김치도 담고 볶아먹고 지져먹고 무쳐 먹었던
고마운 식재료다.

“이건 좀 크네.”
“여기도 있네.”
“올 핸 고구마들이 다 똑바로 길게 서 있어.”
“그러게 땅이 그런 건지.”
“애~ 호미에 찍혔잖아. 조심해요.”

H씨와 이런 얘기들을 주고받으며 한 두럭의 고구마를 캤다. 커다란 과일 상자로 하나쯤 된다.
예년에 비해 크기도 좀 작고 소출이 많지 않다.
한쪽에 걷어낸 고구마 줄기도 잔뜩 꺾었다. 삶아 건조기에 말릴 생각이다.




“주말농장 아줌마는 00씨가 많이 어린 줄 아나봐?”
걷어온 것들 정리하고 있는데 H씨 말한다.
고구마 많이 캤냐고 반말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그냥 그러려니 해.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억울하지 않아요?”
“뭐 별로. 그래도 나보다 많잖아. 어리지 않은 게 다행이죠.”

작은 체구에 짧은 머리, 언뜻 보면 어려 보이는 얼굴 탓에 종종 당하는 일이다.
왜 반말이냐고 싸울 수도 없고 나이를 이마에 새기고 다니는 것도 아니기에  ‘그러려니!’ 하기도 하지만
사회적 지위나 나이에 나타나는 존댓말의 가부장성을 더 거부하기에 아무 감정 없이 넘어가곤 한다.

유별나게 존대가 많은 우리말은 잘 쓰면 사람에 대한 예의와 존중으로 비추지만
잘못하면 권위적이고 재수 없는 꼴이기 십상이다.

요즘 드는 생각은 말이란 건, 그저 순한 말이 능사가 아니라 순하게 들을 줄도 알아야 하는 것 같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들으라고

“말이 짧다고 고까워하지도 말고 귀에 거슬린다고 노여워 말고
그저 그러려니 걸러듣고 새겨들어야 귀가 순해진다.” 했으니…….


#1 고구마 샐러드라고 해야 하나







단호박 쪄서 으깬 것과 새순 무침, 삶은 달걀에 생고구마 썰어서 샐러드 한 접시 담고
여름에 절인 깻잎과 고등어 찜에 김치도 한접시 담아내니 밥상이 좌청룡 우백호 안부럽다.
먹다 남은 두부부침은 고추장풀어 지졌다. 살짝 부추까지 얹으니 재활용인지 아무도 눈치 못챘다.


#2 고구마 튀김과 고구마 줄기 말린 것과 무침










#3
대추, 고구마 넣고 현미밥 짓고
호박나물 한 젓가락 얹어 양념간장에 비빌비빌 해서 한 숟가락 뚝!








#4
기분 좋게 비워진 그릇들




어쩌면 세상사 귀가 순해야 입도 순해지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조로하는 갑다. 벌써 귀가 순해지려 하니 ㅋㅋ
하긴 순해져야 할게 어디 귀와 입만 이겠나. 눈은 어떻고. 코인들 빠질쏘냐.
눈코입귀가 모두 순해지면 저렇게 깨끗이 비운 그릇처럼 사는 게 담백해지려나…….

1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하이루
    '10.10.27 7:20 PM

    식사전이라... 더 배고파 지네요..
    사진 너무 예뻐요~

  • 2. cozette
    '10.10.27 7:45 PM

    빈그릇이 꼭 발우공양을 끝낸 그릇들 같네요.^^
    언어에서의 존대법만 어려운 것이 아니지요.
    저는 예전에 시댁 행사 있었을 때, 행사 끝나고 사촌큰아주버님 댁에서 다 같이 식사를 하는데 사촌 큰형님과 작은형님 사이에 낑겨 앉게 되었어요. 사촌 큰아주버님께서 수고했다며 술을 따라주셨는데 글쎄 고개를 요쪽으로 돌리면 큰형님께서 앉아계시고 또 저쪽으로 돌리면 작은형님이 앉아계시고... 대체 고개를 어찌 해서 그 술잔을 들이켜야 하는지 참 난감하더군요. 결국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정면을 보며(어느쪽으로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술을 마셔버렸지요.-..-

    우리의 귀, 입과 더불어 존대법 자체도 좀 순해졌으면 좋겠습니다.^^;;

  • 3. 오후에
    '10.10.27 9:54 PM

    하이루님//저녁식사가 늦나봅니다. 저녁드셨습니까? 즐거운 식사 되셨길....
    cozette님//존대법도 좀 순해졌으면 한다는 말씀 공감*100 입니다.

  • 4. 카라멜
    '10.10.28 2:13 AM

    오후에님!튀김하는 방법 좀 전수해 주세요.너무 맛있게 보여요^^미리 감사드립니다.

  • 5. 오후에
    '10.10.28 3:37 AM

    카라멜님//그냥 고구마에 튀김반죽입혀 튀긴거랍니다. 특별한 방법은 없어요. 금방한 튀김은 다 맛있지 않을까 합니다.

  • 6. annabell
    '10.10.28 4:37 AM

    맛난 고구마가 없는 이곳.
    맛있는 한국 고구마 넘 넘 먹고 싶어요.

  • 7. 쎄뇨라팍
    '10.10.28 9:59 AM

    ^^

    오후에님!!!~
    정말 음식수필집 생각해보시어요,,
    음식을 통하여 삶을 되집어 주는 묘한 기운이 있으시다니깐요 ㅎㅎ
    무릉도원이 따로 없으신 듯..^^

  • 8. 곧미녀
    '10.10.28 12:50 PM

    ^^..제 남편도 얼마전에 배달된 고구마 박스를 무겁게 들고 아파트 입구로 들어가는 차에
    엘레베이터에 타고 계신 아주머니께서 "천천히와 라고 반말을 하셔서 잘 못 들었는가 했데요.
    엘레베이터에 타고나니 "버튼 안누르고 모해?"라고 다시 반말을 하셔서.

    학생인줄로 착각하셨나 보다고...기분 좋은 일이였다고 웃더라구요.

    오후에 님도 너무 젋어보이는 얼굴을 가지셨나봐요..^^

  • 9. 옥수수콩
    '10.10.28 2:23 PM

    전 누가 악의없이 반말하면 오히려 기분 좋던데....
    이제 찐짜 나이 먹었나봐요,,,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어려만 보일 수 있다면야 까짓 반말쯤은...ㅎㅎ
    항상 좋은 글, 사진 잘 보고 있습니다.
    고구마 줄기 무침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음식인데....맛있어 보여요^^

  • 10. 단추
    '10.10.28 6:53 PM

    오후에님...
    진심으로 음식 수필집 한권 내시길 권해요.
    이 글 보니 제 마음이 순해져요.

  • 11. 미남과야녀
    '10.10.28 8:43 PM - 삭제된댓글

    잔잔하고 아름다운 수필집을 읽는것 같애요.
    음식만큼이나 꺌끔한 글, 고맙습니다. ^^

  • 12. 부관훼리
    '10.10.29 1:39 AM

    주말농장보니까 정말 부럽네요...
    꽃밭부셔서 ㅋ 만든 우리텃밭하고는 비교가 안된다는... ㅠㅠ

    저희도 농장하고싶은데 역시 주택가에 살면 어쩔수없이 멀리 나갈수밖에 없는것 같네요.
    복숭아나무도 심고싶은데 꿈이 너무 큰듯..? ㅎㅎ

  • 13. 오후에
    '10.10.29 9:42 AM

    annabell님//어디신데 맛난 고구마 없다하시는지... 고구마가 아예 없다는 곳은 아니죠. 설음중에 젤 서러운게 먹고 싶은 거 못 먹는 거라는데. 토닥토닥! 위로해드립니다. 다른 맛난 것 많이 드시고 좋은 주말 되세요

    쎄뇨라팍님//항상 좋게 보아주셔서 감사해요. 제 글의 묘한 기운? 이라 하시니 그게 뭔지는 저도 궁금 ㅎㅎ. 아무튼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곧미녀님//젊어 보이지 않는데요. 그냥 대충하고 다녀서 그런가봐요. 저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남편분과 비슷한 경험 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나중에 그 분 많이 민망하셨을 듯... ㅎㅎ

    옥수수콩님//악의 없는 반말 기분 나쁘진 않죠. 때에 따란 친긴해보이기도 하고. 근데 본인은 그렇게 받아들여도 옆에 있는 사람은 다르게 보기도 하는 것 같더라구요.

    단추님//마음이 순해지셨다니 제가 고맙습니다.

    미남과야녀//음식과 글을 깔끔하다 해주시니 제가 감사드려야죠. 좋은 주말 되세요

    부관훼리님//ㅋㅋ 비교하고 부러워마라는 글 올리고 와보니 이런 댓글이....
    님 글 언제나 잘보고 있습니다. 저도 단감과 대추나무를 마당에 심다는 꿈이 있답니다.
    언젠가 그날이 오리니... 꿈꾸자고요. 맘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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