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일날 미역국은 어머니가 드셔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게 낳느라고 힘드셨던 분은 어머닌데 왜 당사자가 먹나 몰라”
신혼 때던가, 생일 미역국을 보면 이런 얘기를 하곤 했다.
생일이면 선물은 못해도 미역국과 아침밥은 했다.
집에 없던 한 해를 빼곤 거르지 않은 것 같다.
올해도 미역국을 끓였다.
부쩍 체력이 달린다는 말이 생각나
한 해 건강하게 나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팥 넣고 찰밥을 지었다.
내게 팥이 들어간 찹쌀밥은
어린 시절, 생일이면 시루팥떡 다음으로 챙겨주시던 어머니의 선물이었다.
형편이 되시면 팥 시루떡을 해주셨고
시루팥떡 없이 찰밥만 먹던 해는 그만그만한 해였었고 이도 건너뛰면…….
시루떡을 하실 때 어머니는 꼭 밤을 새셨다.
연탄아궁이의 커다란 양은솥에 얹은 떡시루로 밤새 김을 올리시고
시루번을 갈아 붙이시며 부엌을 들락거리시던 그 시절 어머니의 시름을 난 다 알지 못한다.
‘생일 떡은 칼로 자르는 것 아니’라며 그 뜨거운 떡을 맨손으로 드러내시던 어머니 손만을 기억할 뿐.
행여 설익을까! 마음 졸이던 시루떡이 다 익은 새벽녘이면
어머닌 그 떡과 물 한 대접 올리고 홀로 조용히 치성을 드리시곤 하셨다.
봄에 태어난 탓인지 나는 가을 생인 형에 비해 차남이라는 것 말고도 계절적 불리함으로
떡과 찰밥을 건너 뛴 경우가 많았던 것 같고 철없이 이걸 어머니께 툴툴거렸던 기억도 있다.
그래도 생일상이라 반찬 두어 가지 더했다.

순백의 무나물을 기대했으나 깜빡하고 불 줄이는 걸 잊어 조금 태웠다.
태운 걸 가려 볼까 하고 실고추 넣고 푹 익혔더니 붉은 물이 살짝 들어 저 모양이 되었다.


요즘 자주 해먹는 호박나물과 무청 우거지 된장지짐



들기름에 두부 노릇노릇 부쳐내며 양송이 버섯도 몇 개 넣었다
새순과 부추 샐러드, 올리브와 발사믹, 간장으로 소스를 만들었다.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표고버섯

찰밥과 미역국, 오늘의 주인공인데 돌미역이라 색이 좀 거칠고 미역국엔 고기 한 점 없다.
함께 산 세월만큼 우리집 미역국도 변해 왔다.
처음엔 소고기가 들어갔었고 그러다 간간히 가자미 같은 생선이 들어가기도 했고
지금처럼 들기름에 볶은 미역만 넣고 끓이는지는 10여년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