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라 그런지 해도 길다. 퇴근시간인데도 아직 해가 한창이다. 더위도 여전하다.
더위에 식욕도 없다. ‘더운데 저녁엔 뭘 먹나.’ ‘내일 금요일이니 뭘 새로 만들기도 그렇고…….’
겨우 서쪽에 걸린 듯 한 햇볕 받아가며 걷는데 시외버스 휙 지나가는 게 보인다.
갑자기 분당 집에 가고 싶어졌다.
이리 더운 여름 날, 냉장고에 갓 꺼낸 시원한 커피나 미숫가루 또는 냉국을 건내며 환하게 웃는 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꽤나 행복한 퇴근 길일게다. 나도 그런 때가 있긴 했다.
애가 크고 맞벌이 하면서 없어진 풍경이지만. 그런 행복이 없어진게 딱히 맞벌이나 아이 때문만은 아니다.
우선은 늘 술 먹거나 늦게 귀가하는 내 탓이 크고 다음은 뭐 서로 ‘나도 더워 기력 없는데 언제 너 챙기랴’겠지…….
‘애 챙기기도 버거울 테고.’
1시간 30분여 흘러 성남 터미널에 내렸다. 휴대폰 꺼내 보니 40분 전쯤 ‘퇴근한다.’는 문자와 있더라.
저녁전이겠다 싶어 전화했다. “뭐 하냐.” 물으니 오늘 수업이 많았다며
“지치고 기운 없어 그냥 누워 있다.” 한다. “저녁 같이 먹자.” 말하고 부지런히 집으로 향했다.
설거지 하며 H씨 나를 맞는다. “힘들다며?” 물으니 “국수라도 먹으려면 치워야지” 한다. 밥이 없다.
배고프진 않은데 내가 국수 먹으면 좀 거들 테니, 자기는 청소하고 나는 비빔국수 준비하잖다.

국수 삶을 물 올려놓고 양념장 만들고 커다란 접시에 먹다 남은 부지갱이나물, 콩나물 냉채,
무말랭이 무침을 돌려가며 담았다. 아침에 꺼내 먹고 그냥 놔둬 많이 신내를 풍기는 열무김치도 올렸다.
마침 텃밭서 잘라온 ‘두메부추’ 있기에 이것도 한주먹 잘라 얹었다. 기운내라고.
상추도 찢어 얹고 나니 쟁반국수 흉내는 냈다.
아직 초여름 더위라, 얼음까지 올릴 건 없을 것 같아 그냥 양념장에 비벼 마주 앉아 먹었다.

5시 알람이 울리고 일어났는데 좀 멍하다. 날은 여전히 덥다.
밥부터 앉히려 쌀 씻는데 개수대 끝자락에 달팽이 한 마리 보인다.
‘어디서 왔을까?’ ‘어제 씻은 상추에서 떨어졌나! 그럼 며칠 냉장고에 들어 있었다는 얘긴데 참 장한 놈이다.’
아파트 밖으로 던지려고 집어 드는데 달팽이집이 버석거린다. 밑으로 던지지 못하겠다.
창문열고 벽에 살짝 올려놨다. ‘기운내서 땅으로 돌아가거라.’
밥 앉히고 두부 반모 꺼내 들기름 두르고 노릇노릇 부쳤다.
딱 한 가지 두부부침에 양념간장 뿌려 탁자에 올려놓고 나왔다. “아침 잘 먹었고 고마워요.” 문자왔다.
아무래도 올 여름은 꽤나 더울 모양이다.
부디 부엌에서 불과 씨름하는 사람 따로, 먹는 사람 따로, 음식 때문에 짜증나는 일이 덜하길 바랄 뿐이다.
먹자고 하는 건지 살자고 먹는 건진 모르겠지만, 짜증내자고 하는 게 아니니 짜증내면서 까지 할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