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이틀간 연무현상이 참 심했어요.
밖엘 나가도 청명한 가을하늘은 커녕, 가슴이 답답해지는 탁한 공기.
파란 가을하늘이 그리운데, 그리고 가을은 참 짧은데
내일, 토요일 비 오고 나면 0도로 기온이 떨어진다잖아요.
가서 하느님 좀 괴롭혀드리고 올까요?
제가 가서 3일만 떠들어도 알았다며 너 시끄럽다며 쟤 좀 어떻게 해 보라며
하늘 맑게 해 주실 것 같은데..
근데!!
제가 하늘 가면 안되잖아요;;
생각해보니, 3일간이라도
1. 집이 아주 더러워질거고
2. 신랑이 뱀처럼 벗어놓은 허물이 집안 여기저기..(아시죠? 옷을 뱀 허물벗듯~)
3. 설거지...라면 설거지만 쌓여있고!
4. 분명 마누라 없다고 집에서 담배도 피울거야!
아..안되겠네요 -_-;;;
제가요, 살림 솜씨가 야무지진 못해요.
그런데다가 생각함과 동시에 실행이 되는..이른바 뇌-신체 아우토반 구조 라서요
사고를 아주 종종, 매우 종종 칩니다.
꽂히면, 해야하는거죠.
호기심 많고 기동력 최고인 오형의 특성이 아주 뼛속까지 베어있어서
못하면 병나요. 궁금한거 생겨도 병나구요. 할 말 참으면 변비도 생겨요^^;
아가씨땐 왜 그리 시골 큰집에 가기 싫었는지..
어른들이 " 야, 너 시집가면 몇년에 한번은 갈 수 있을까 한다..틈 날때 다녀라" 라고 하셔도
그저 명절 이틀 전부터 꽤병에 돌입했어요.
그래야 명절 음식 치르고 상 물리고 몸살났다고 하기 좋거든요.
근데, 결혼하고 나니..
어머
진짜 그렇게 되더라구요. 친정이나 가까운 고모와는 왕래가 있어도
시골 큰댁엔 명절에도 못갔어요. 연휴도 짧았지만, 정말 뭔가..벽이 생긴달까요.
맘에 담아두고 찜찜해하다가 신랑한테 얘기했더니
바로 돌아오는 쉬는 날 가자고 하더라구요. 이긍 이쁜것.
그래서 다녀왔어요. 조카사위 왔다고 비싼 장어도 사주시고, 이것저것 싸 주셨어요.
그 중에..
호박! 늙은호박.
젤 크고 이쁜건 거실에 장식하라 주시고, 저런걸 두개 더 주셨는데..
젤 작은놈이라도 얼마나 큰지 개수대에 꽉 차더라구요.
늙은호박을 향해 육두문자 삼 십 번 날리고서야 반을 가를 수 있었어요.
손으로 후비후비 통통한 씨들 골라서 씻어 말려요.
나중에 혼자 뒤에서 호박씨 까려구요.
공격적인 포즈로 숟가락을 부여잡고 닥닥 박을 긁기 시작해요.
나쁜노마, 주는대로 감사히 먹어! 허물 좀 벗지마! 아이스크림 막대는 쓰레기통에 버려!
라고...대꾸없는 상대(물론 호박이죠)에게 괜한 화를 내면서요.
호박고지 만든다고 돌려깎다가 손가락 돌려깎을 뻔 했어요; 휴- 만만한 작업이 아니네요.
이때부터.."내가 이걸 왜 시작했을까, 걍 엄마나 갖다 드리고 얻어먹을껄"하기 시작해요.
반 통으론 잘 삶아서 퓨레를 만들어놓아요. 파운드케이크나 죽 먹고싶을때 아주 요긴하니까요.
1회분씩 소분해서 냉동실에 쟁여요. 이런거 쟁여놓을 때 마다..제 중부지방에도 뭔가가 쟁여지는거죠..ㅠㅠ
호박 살 조금 남겨서 1센치정도로 깍뚝썰기 했어요. 머핀이나 쿠키, 케이크에 응용 해 보려구요.
요것도 이대로 냉동실에 쟁여요.
마침 빻아다 놓은 쌀가루가 한 컵 남았길래, 호박죽 조금 끓였어요.
아..달달하니 맛나다+ㅁ+ 근데, 이건 저만 먹어요. 신랑은 이런 은근한맛을 안좋아해요.
이런 과격한 양반 같으니! 그러니 성격도 그렇게 과격하지!
...생각해보니 그렇다고 해서 제 성격이 은근한 건 아니네요..아놔~
산을 끼고 큰댁이 있어서 큰댁 산에서 나는 밤이며 도토리를 많이 얻을 수 있거든요.
밤 한가득 주셨길래 삶아놨다가..뭔가 골똘히 생각할 일 있을때 깠어요.
그냥 생각만 하는것보다, 호두속껍질을 벗긴다던지 마늘을 깐다던지 밤을 깐다던지 하면
생각도 빨리 정리되고, 잡다한 일들도 은근 쉽게 마쳐지거든요.
이거..만년초보1님 주특기 맞죠?ㅎㅎㅎ
백태 사다놓은것이 있어서 콩자반 했어요.
콩자반을 서리태로 주로 하지만, 백태를 자반으로 하면 참 맛있고 색도 예뻐요.
두유가, 가임기 여성에겐 특히 좋다잖아요. 뭐라더라..착상이 잘 된댔나??암튼요.
그리고, 지친 간 건강에도 참 좋아요. 콩단백이요.
게다가 다이어트 하는사람한텐 완전 좋은 식품이잖아요.
근데 시판두유,거의 95%가 수입콩쓰고, 그마저도 대두 자체는 얼마 안들어간 첨가물 투성이더라구요.
재료를 괜히 유심히 봤지..
또 제 일복을 제가 만들어요. 백태 하루 불려서 한참 뭉근히 삶아서 한컵씩 소분해서 냉동실에 쟁이고
소금만 조금넣고 물 넣어 한참을 갈아줘요.
이렇게 병에 담아놓고, 하루에 한잔씩 남편과 함께 나눠 마셔요.
저는 그냥 플레인으로. 콩 싫어하는 남편은 우유에 섞어서 꿀이나 올리고당 타서요.
불리고 삶고 갈고 하는 과정들이 은근히 신경을 써 줘야 하는 일들이라
또 제 몸을 성가시게 해요.
아, 근데요..
밤과 두유, 고구마를 자주 먹어서 그런가..요새..가스가...흐흐
가스가 자주 나오시는데, 뭣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둘둘치킨 냄새가 나요.
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신랑이, "어디서 자꾸 치킨냄새가 나" 라고 하네요.
소리없이 처리하려고 힘들였던 저는 피식 웃었어요. 진짜 치킨냄새라서요;
생강 채썰어 설탕+꿀or조청에 절여요.
신랑이, 시아빠를 닮아서 기관지가 예민하거든요.
연애할땐 자긴 슈퍼맨이라더니, 슈퍼맨이 환절기에 코 훌쩍이고 잔기침 하는건
결혼하고 알았네요. (뭔 슈퍼맨이 하자가 있냐..반품할까?)
요건 대추랑 생강 1:1로 섞어서 설탕에 재웠어요.
번갈아서 먹이려구요.
생강 잡은길에 수정과도 끓여놔요.
출근할 때, 패트병에 담아 건강음료를 들려보내요. 기관지때문에 은근히 신경써가면서요.
신랑이 시아빠께 물려받은것처럼..나도 울아빠한테 받은 안좋은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어요.
아주 약한 살성, 너무 건조한 손발, 지독히 둔한 술 해독능력..어쩜 그런건 쏙 빼닮았어요. 신기하게요.
그런데, 울아빠..제게 좋은것도 너무 많이 주셨어요.
빠른일처리, 능구렁이같은 임기웅변, 잔재주 그런거요.
에궁-
성격이 참 급하셨는데..뭐가 급하다고 그렇게 빨리 하늘로 가셨나 몰라요.
대학 마치는건 보고 가야지, 하셨는데..4학년 2학기 시작할때 가셨어요. 급한양반.
4년만 더 사셨어도, 큰딸 시집갈 때 손은 잡아보셨을거아녜요.
그래도 늘 감사해요.
잘 키워주셔서, 올바른 길로 늘 이끌어주셔서요.
제가 살림 참하게 잘 한다고 칭찬을 많이 해 주셨는데요, 이것보세요. 저 안그래요!히히;;
냉장고 맨 윗칸엔
홍삼액기스, 미리 내려놓은 에스프레소, 집에서 만든 잼들과
절여놓은 차들, 그리고 신랑 출근길에 들려보낼 건강음료를 또!! 쟁여요.
냉동실에 호박퓨레들도 잘 쟁여 놓았구요.
그리고 제 부끄러운 양념들을 좀 보여드릴께요.
늘어놓는 걸 어려서부터 유난히 좋아했어요.
요리할때, 각종 스파이스들과 재료들이 늘어져있어야 해요.
엄마가 볼때마다 한숨쉬고 가는 제 가스렌지 옆 양념마을입니다!
정리 달인분들 이거 보시면
정리하고 싶어서 손발이 꼬물꼬물 하시겠지만..
저는 이렇게 늘어놔야 맘이 뿌듯하고, 쓰기에도 편해요.
언제쯤 저도
깔끔하고 야무지게 살림을 할 수 있을까나요?
가야 할 길이 구백만리네요.
내일은 비가 온대요. 밤에요.
그 비 맞으면 골룸처럼 머리카락 몇 올 안남을지도 몰라요.
다들, 집에 일찍 귀가하셔서
맛난 것 해 드세요^^
아참, 귀여운 엘모양님!
콩그레츌레이션!!!!!!!!!!!!!!!!!!!!!!!!!!!!!!!!!
글고 순덕어머님.
순덕이의 "엄마가 섬그늘에" 82쿡에도 함 쏴 주세요!흐흐
울 엘모양님 그런거 많이 보셔야한다구용^^
그럼, 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모든 레시피는 http://blog.naver.com/prettysun007 메 블로그에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