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습 레스토랑의 주요 일과 중 하나가 게살 파내기예요.
메뉴 중에 게 살을 발라내서 파와 기름에 살짝 무치고, 내장으로는 육수를 내고,
마늘 수프를 굳힌 큐브를 곁들이는 요리가 있어요.
조심스럽게 게를 조각내서 살을 구석구석 빼내고,
혹시나 껍질이나 뼛조각이 들어가지 않았는지 꼼꼼히 잘 살펴야 합니다. 눈으로도, 손으로도요.
금방 삶아낸 하얗고 탱탱한 게 살을 만지기만 하고, 그대로 입에 넣지 못하는 건 일종의 수련과도 같아요.
흑.
물론,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재빨리 한 점 먹기도 하지만 영 성에 안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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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나이인데도 나보다 요리 경력은 한참 많고, 두 아이의 아빠이니 인생 경력도 많은
사수가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한가할 때 새우, 게, 조개 등 뭐든지 싱싱한 해산물을 사다가 요리해서 화이트 와인이랑 먹어.
이보다 더한 즐거움이 없다고.
말하면서 황홀해하는 표정이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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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연유로, 쉬는 날 아침이 되자마자 시장에 나갔습니다.
수족관 한 켠에서 얌전히 놀고 있던 게(바스크어로는 Txangurro, 스페인어로는 Buey del Mar)를 한 마리 사고,
이탈리안 파슬리(Perejil)도 한 움큼 거저 달라고 합니다.
여기선 처음 발견한 크레송(Berro)이랑 토마토, 피망도 한 개씩 사고,
슈퍼에서 저렴이 Rueda 와인도 한 병 사고(요리에도 써야 하니까 막 이럼서 ㅎㅎ),
룰루랄라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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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요리의 기본은 Mise-en-place.
각종 재료량 집기를 펼쳐놓고,
팟캐스트 띄워놓고 요리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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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세바스티안 식 게 요리
Txangurro a la donostiarra
<재료>
게 한마리(800g)
물 2L(소금 4T)
양파 1개
파 1대
피망 반개
토마토 1개
화이트 와인 1/4컵
빵가루 2T
버터 1T
파슬리 약간
올리브유 2T
소금, 후추
<과정>
1. 냄비에 물이 끓어오르면 소금 넣고, 게를 12분 삶는다. (게야, 미안해, 고마워하며 맛있게 먹을게 ㅠ.ㅠ)
2. 게를 삶는 동안 양파랑, 파, 피망 촵촵 다져주기.
다리를 먼저 떼내고 배 부분의 껍질을 떼어 낸다.
몸통은 칼로 조각을 내고, 다리는 칼등으로 부수어가면서 구석구석의 살을 이쑤시개나 포크 등으로 파낸다.
배 안의 내장과 육즙도 따로 보관해둔다.
* 아래 동영상 참조.
7. 맛의 포인트인 내장은 버리지 말고 꼭 모아두기.
이어 발라둔 게살 넣고, 화이트 와인 넣고 알콜기와 신맛이 날아가도록 충분히 졸인다.
마지막에 내장과 육즙을 넣고 잠시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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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삶아 먹어도 맛있는 게를 굳이 이렇게 까지 요리할 필요가 있을까 하면서도,
또 이렇게 요리해 놓으니 뿌듯합니다~
게살과 내장이 혼합되고, 볶은 야채의 맛이 더해지니까 더 섬세하고 풍부한 맛이 나는 듯 해요.
게 손질 하는 부분만 참아내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요리였습니다.
룸메이트들은 다 요리사들이라 주말에도 일하러 나가서
저 혼자 이렇게 처묵처묵.
웬지 처량한 마무리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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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건 덤으로 먼저 먹은 크레송 샐러드예요.
봄나물 먹는 기분 내려고요.
쌉쌀한 향내가 너무 좋네요.^^
82쿡 언니들도 상큼한 봄맞이 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