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3년 전쯤이었나……. 30대 후반에 들어선 후배가 업무 얘기 중에 ‘헐~’ ‘대박’이란 단어를 쓰는 것을 보고
‘이게 인터넷과 10대만 쓰는 말이 아니고 광범위하게 유행어로 자리 잡았나 보다’ 여기고 말았던 적이 있다.
사실 그 때까지 K 또래 말고 실제 대화에서 사용하는 사람은 최소 내 주변에는 없었던 듯하다.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대박’이란 말을 한 모양이다.
언뜻 지나가듯 본 영상에서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을 듣고 참 놀랐다.
‘아 이제 60이 넘은 대통령도 공식석상에서 쓰는 말이 되었구나.’ 하고.
흥부전에서나 들을 수 있던 대박, 복권쯤 당첨되는 횡재수에 썼던 말 같은데,
의미가 참 많이 확장되고 쓰임도 빠르게 늘어난 말이다.
그런데 ‘통일은 대박’이란 대통령의 말을 들으며 스치듯 ‘그 양반 참 젊은 애들 말은 잘 배우네.’하면서도
‘말에는 지켜야 할 원칙이나 품위가 없었나’ 등 여러 생각이 이어졌다.
‘통일이 대박’이라니? 그러니까 경제적으로 흥부네 큰 박 쪼개는 것 같은, 로또 정도 된다는 거잖아.
그런데 그동안 왜 그리 경색되었던 거야. 그동안 복권도 안사고 로또를 바랐던 걸까?
제비다리도 안 고쳐주고 박씨 물어 오길 기다렸던 거야? 라는 마음도 일고.
조선일보 6일자 대문 걸렸던 ‘통일비용 겁내지만 혜택이 배(倍)로 크다. 통일이 미래다’는 기사도 떠올랐다.
조선일보 기사를 보며 ‘뜬금없이 통일을 왜 조선일보가…….’
‘올해는 남북관계가 화두가 될라나 보네. 지자체 선거 앞두고 해빙무드로 가자는 건가?’ 했었는데.
이후 진행이 참 흥미롭다. 내가 보기엔 이게 ‘대박’이다.
김장하며 말려 두었던 시래기를 물에 불렸다. 푹 삶아 찬물에 잘 씻어 다진 마늘과 들기름,
간장으로 간 해 한나절쯤 재 둔 시래기를 다시마 물에 끓였다. 마지막에 딱 고춧가루와 파만 넣고 한소끔 더 끓였다.
국물은 담백하고 시래기는 달큼했다.
소주 한 잔 더하면 까칠함을 달래기에 안성맞춤이다.
#2
K가 어느 날 물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가장 큰 차이가 뭐야?”라고.
“글쎄, 대북정책 정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 왜?” 라고 대답했더니,
K가 “오~ 어떻게 알았어? 난 민주주의라고 했는데 아니래. ㅠ.ㅠ”라고 하더라.
“아마 그 교수님 입장에서는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정책 때문에 그랬을 거야.
네 답이 아주 틀린 건 아니지만 교수님이 묻고 싶었던 건 아닌 거지.”
오랜만에 집에 온 K와 치킨에 맥주 한 잔 기울이며 나눴던 12월의 대화다.
8시 20분 조조할인으로 변호인을 보고와 끓인 떡국 무말랭이와 깍두기가 ‘떡국 한 그릇 더’를 불렀다.
사진으로 보니 상큼한 1월 1일, 새해 출발이 좋다. 조조영화 보고 떡국까지 배불리 먹었으니
소소한 기쁨이 많기를 우리 모두에게, 소심하게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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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에게
영화 ‘변호인’을 보았다. 3년 전쯤 ‘부러진 화살’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그보다 더 오래전 ‘전태일 평전’을 책으로 보았다.
내가 본 두 개의 영화와 1권의 책엔 변호사라는 직업이 관여되어 있다.
전태일 평전은 조영래 변호사라는 분이 쓰셨고 그로인해 ‘전태일’이라는 분을 지금 우리가 알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 6~70년대 노동과 삶을 이해하게 되었다.
‘부러진 화살’은 부조리한 법정에 대한 고발보다 2001년 대우차 정리해고 과정에 경찰의 폭력에 맞섰던
변호사 박훈이라는 인물로 화제가 되기도 했던 영화다. 요즘 상영하는 ‘변호인’이야 잘 알 테고.
영화 ‘변호인’을 보고 마지막에 ‘너무 너무 화가 났었다’는 말을 엄마에게 전해 들었다.
네가 보고 느꼈던 게 어떤 것인지 좀 더 들어봐야겠지만, 인물 보다 사건과 시대를 보라는 말을 해주고 싶구나.
‘부러진 화살’이든 ‘전태일 평전’이든 ‘변호인’이든 등장인물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선과 악만 있을 뿐,
법의 부조리나 유신시대와 민주주의, 지식인의 선택, 인권,
그 시절 노동과 삶 같은 것들을 사유할 기회를 놓쳐 버리지 않을까?
인물에 대한 호불호와 이미지만으로 무언가를 판단하지 말고 사건과 시대상황을 보고 늘 사유해야 한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저항과 이타적 삶을 사는 훌륭한 분들은 많다.
그들 모두를 기억하고 역사에 남기는 건 특정 직업 또는 누군가를 영웅시하거나 특별한 이미지로 만드는 게 아니라
시대와 사건을 보고 난 후 그들의 선택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 사유하는 거란다.
어린 시절 너에게 위인전을 딱히 권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해할 수 있겠니?
사람은 늘 변하는 존재다. 우리는 종종 예전과 정 반대의 행동, 의견을 말하는 사람들을 본다.
정치인이나 유명인은 말 할 것 없고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때론 변절이라 욕을 먹는 경우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치부되는 경우도 있고
오히려 변하지 않은 사람을 시대에 뒤떨어 졌다(철이 없다) 거꾸로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에 앞서 사건과 시대를 봐야 하는 이유다. 사건과 시대를 봐야 개별 삶을 볼 수 있다.
K야
‘통일은 대박’이라는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보고 나는 참 불편했다.
사실 표현의 간결성, 대중성은 칭찬하고 싶다.
하지만 ‘대박’이란 단어 뒤엔 과정이 없다는 면에서 아주 불편하고 불쾌했으며 우려가 앞섰다.
대박이란 단어는 본래 과정 따위를 담기에는 많이 부족한 말이다.
그래도 대통령이 썼던 이유는 우리 맘속 깊이 자리 잡은 욕망에 가장 부합하는 단어여서일거다.
돈, 출세와 같은 욕망에 부합하는. 통일은 ‘남는 장사’라는 이미지로만 프레임과 욕망을 선점한 거라 볼 수 있다.
이런 선점이 필요한 이유는 정치일정과 지형에서 찾아야 할 테고.
사람과 말, 사건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건 어느 하나에 방점을 찍어 나머지를 선택하지 않는 거다.
영화든 책이든 신문기사든 정치인의 발언이든 ‘왜’라는 질문을 잊지 마렴.
어제보다 날이 꽤 춥다.
사랑하는 딸
옷 든든히 입고 오늘도 행복하렴.
톳과 강냉이를 넣고 지은 밥이다.
낱낱으론 잘 안 먹게 되지만 밥을 지어 양념간장에 비벼 곧잘 먹는 조합이다.
말리고 거두고 물에 불리고 삶고 양념해 재워두고, 수고로움과 기다림 끝에 마주하게 된,
국물 넉넉한 시래기는 뜨끈하고 시원하다. 달았다. 강냉이톳밥과 잘 어울렸다.